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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법정 세우라는 여론, 검거 실패 내가 책임질 수밖에 … 특수수사는 적 만드는 과정, 쌓은 업보 덜려고 봉사”

중앙일보 2015.07.04 00:20 종합 16면 지면보기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
수백만원의 사기를 당한 피해자의 경찰 제출용 진정서 작성. 검찰의 대표적 특수통으로 불리던 최재경(52) 전 인천지검장이 변호사로서 시작한 일이다. 수임료는 받지 않았다. 지난 5월부터 법률구조공단의 무료 법률상담을 하다 만난 피해자의 사정이 딱해 거들게 된 일이라고 한다.


무료 법률상담하는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

 최 전 지검장은 “불가에선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보시가 된다(和顔施)고 말한다”며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법률로 봉사할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를 지휘하다 6월 12일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변시체가 유 전 회장 시신임이 확인되자 그해 7월 22일 검거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26년간 검사로서 대검 수사기획관·중수부장 등을 거치며 현대차 비자금, 론스타 사건 등 굵직한 수사를 많이 해 ‘최고의 칼잡이’로 불렸다. 지난 1일 서울 삼성동 변호사사무실 근처 커피숍에서 만난 최 전 지검장은 “법률구조공단 활동 소개에 중점을 두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인터뷰에 들어갔다.



 -사직 후 10개월 만에 변호사 등록을 했다.



 “세월호 사건(지난해 4월 16일)이 발생한 지 1년은 지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전관예우 논란도 빚고 싶지 않았다.”



 -대기업과 대형 로펌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는데.



 (손사래를 치며) “노 코멘트.”



 -사건은 거의 맡지 않는다고 들었다.



“수사를 오래 하다 보니 눈에 밟히는 후배가 많다. 그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도울 명분이 있는 사건이라면 맡을 생각이다.”



 -무료 법률상담에서 만난 사람들은.



 “100만~200만원의 임금을 떼인 근로자, 남편 몰래 계를 하다 곗돈을 떼이고 전전긍긍하는 아주머니 등이 기억난다. 대개 수십만원이나 수백만원 때문에 찾아오는 분들이다. 하지만 그게 전 재산이고 지금이 인생의 최대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다.”



 ‘유병언 사건’ 얘기를 슬쩍 끄집어냈다. 유 전 회장의 생전 폐쇄회로TV(CCTV) 영상이 공개돼 화제가 된 터였다. 부드럽던 그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2012년 중수부 폐지 문제로 검찰총장과 맞설 때도 거둬들였던 사직 의사를 왜 밀고 나갔나.



 “절제·정성·침묵·책임이 검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겨 왔다. 고위직이라면 잘잘못과 관계없이 책임져야 할 때가 있다. 지금 수사해도 그만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당시에 유병언을 산 채로 법정에 세우라는 국민적 요구가 있었다. 수사팀을 70여 일간 집에도 못 가게 한 것도 그래서였다. 수사를 계속해야 하는데 악화된 여론을 돌파하려면 누군가 책임져야 했다.”



 -당시 검찰이 유 전 회장 시체를 숨겼다는 의혹이 지금도 있다.



“의미 있는 주장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유병언이 운전기사와 떨어져 홀로 도망하다 숨을 거뒀다. 변시체가 냉동고에 있던 40여 일 동안 우리는 금수원 측이 조직적으로 도피시키고 있다고 보고 전국을 다 뒤졌다. 금수원 측은 검찰이 유병언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했다. 당시 금수원 측에서 우리 쪽에 사람을 보내 유병언을 숨겼는지 탐색하기도 했다. 그때서야 양쪽에 유병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약속대로 무료 상담 이야기로 돌아왔다.



-‘칼잡이’가 봉사라니 좀 어색하다.



 “수사, 특히 특수수사는 적을 만드는 과정이다. 피의자도 자기 나름의 세력이 있어 어떤 형태로든 반격을 가하고 검사도 상처를 입는다. 주고받는 상처를 줄이려고 상대방 말을 충분히 듣고 인격적 대우를 하려고 애쓰지만 업보를 쌓게 되는 건 필연이다. 간혹 피의자의 가정이 파괴되고, 당사자가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자선과 기도, 독서가 운명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봉사는 그동안 쌓은 업보를 더는 일이다. 성당에서 기도도 한다.”



 현재 법률구조공단의 무료 법률상담에는 백종수(55) 전 부산지검장, 조용무(73) 전 대전지법 원장, 이기중(62) 전 부산고법 원장, 박흥대(61) 전 부산고법 원장, 전도영(76) 전 광주지법 원장, 강신중(54) 전 광주가정법원장 등 법조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퇴임 후 2년여 동안 계속해 왔던 무료 법률상담 활동을 지난달 25일 마쳤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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