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속으로] 지방대 출신 청년의 별난 창업

중앙일보 2015.07.04 00:19 종합 16면 지면보기
박세상 불가능공장 대표가 전주 한옥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오목대에 올라 한복 자락을 펼쳐 보였다. 그는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개발해 전주 한옥마을의 풍경을 바꿨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실패의 반대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장관 표창 회사 1억 빚져 정리 …‘한복 데이’로 우뚝



 한 청년의 질문에 기자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성공?”이란 뻔한 답에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실천하기만 하면 실패는 없으니까요.”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았던 건 답변 태도가 사뭇 진지해서였다. 청년의 이름은 박세상(30). 세상을 바꾸겠다며 대학 3학년 때 이름을 두병에서 세상으로 바꿨다. 이름 덕분인지 그는 학교 앞 상권을 바꾸고, 전주 한옥마을의 풍경을 바꿨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던 기형도 시인의 시 제목처럼 그의 역사는 질투에서 시작했다. 충남대에 다니던 그는 휴학 중 서울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홍대 앞’으로 통하는 문화공간을 접하고 질투심을 느꼈다. 복학을 해서도 주말이면 홍대 앞에 가서 놀다 오곤 했다. 그러다 ‘나는 이렇게 놀고 오면 그만이지만 다른 지방 대학생들은 어떻게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 앞을 홍대 앞처럼 바꾸면 더 많은 사람이 대학의 낭만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2009년 그는 충남대 인근 상권인 궁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상인들을 설득해 쿠폰을 발행했다. 한 가게에서 음식을 먹으면 다른 가게의 할인권을 주는 ‘품앗이 쿠폰’이었다. 기숙사에서 궁동까지 오는 셔틀버스를 만들어 밤 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이 궁동에서 놀 수 있게 했다. 인근의 대형 주차장과 협의해 상인과 주차장 주인이 절반씩 지불하는 형태의 무료 주차장도 만들었다. 여기에 대학생 공연 등 길거리 문화행사를 기획했다.



1년 만에 죽어가던 상권이 살아났다. 대학 3학년 때인 2010년, 그는 궁동 살리기 프로젝트를 함께한 친구들과 아이엠궁이란 예비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그러다 1년쯤 지났을까. 곧 한계가 드러났다. 횡령하는 이가 생기는가 하면 가치관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는 직원도 있었다. 수익 모델이라곤 버스사업비, 문화공연 기획으로 얻는 게 전부였다. 이 때문에 1년 동안 1억원가량의 빚이 쌓였다. 그는 돈이 되는 사업은 직원에게 떼어주고 사업체를 정리했다.



 하지만 이 경험으로 그는 돈을 주고도 못 살 깨달음을 얻었다.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겉멋만 잔뜩 든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엠궁을 운영할 때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식사하고, 장관 표창도 받았다. 온갖 정부 기관에서 사무실로 ‘견학’을 오는가 하면, 다른 지방의 대학 상권을 살려 달라는 러브콜이 쇄도했다. 그야말로 둥둥 떠다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한번 망하고 나니 그를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의 냉정함을 그때야 알았다.



지난달 박 대표의 강의를 들은 경남 하동 중앙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2일 전주 한옥마을로 견학 왔다. 학생들이 연예인이라도 본 듯 박 대표에게 몰려들어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그러던 때 고향인 전주의 한 공무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주의 한옥마을을 활성화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별도의 지원비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단비를 만난 기분이었다.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한달음에 전주의 한옥마을로 갔다. 4년 전 당시의 한옥마을은 길거리 음식을 먹는 것 외엔 딱히 즐길거리가 없었다. 상권을 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걸 그는 궁동을 살려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한옥마을을 한옥마을답게 하는 건 한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복 데이’라는 축제를 기획했다. 한복을 입고 클럽 파티를 한다는 야심 찬 기획이었다.



하지만 출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당시만 해도 한복을 빌리는 대여료가 하루 15만원에 달했다. 거기다 몇백 명이 입을 한복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30여 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전주시내 한복집을 돌면서 협찬을 받거나 기부를 받았다. 그렇게 첫해 행사를 치르고 나자 이듬해부턴 입소문이 나면서 1000여 명이 몰렸다.



지난해부턴 5개 도시로 행사를 확대하고, 올해부턴 한 달에 한 번으로 횟수를 늘렸다. 소셜쇼핑 사이트와 연계해 3만원짜리 티켓을 구매하면 서울~전주 간 왕복 교통비와 한복 대여료, 클럽 입장권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했다. 한복을 입는 젊은 층이 늘어나자 꼭 한복 데이가 아니어도 한옥마을에 와서 한복을 빌려 입는 이가 많아졌다. 처음 시작할 때 1곳에 불과하던 한복 대여점은 주변 상인들이 가세하면서 현재 20여 곳으로 늘어났다. 그는 한복 대여소와 함께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도 운영 중이다. 모두 한복 데이 축제를 기획했던 이들과 함께 만든 ‘불가능공장’이 벌이는 사업들이다.



 그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올가을부턴 ‘한복길’을 개장할 예정이다. 또 한복 데이를 해외로도 확장할 계획이다. 지난해 그는 한복 두 벌을 배낭에 넣고 뉴욕으로 가 한 달을 머물렀다. 한인이 운영하는 부동산으로 가서 지역의 각종 단체장들의 연락처를 받아 일일이 찾아가 만났다. 언제든 뉴욕 한복판에서 한복을 입고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고 온 것이다.



“어떠한 방법이든 가능성을 찾아보는 한 실패는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인력으로 해결하면 됩니다. 인건비가 없으면 ‘똘끼’ 있는 청년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자발성입니다. 4년 전 아르바이트비를 줄 테니 한복 좀 입고 돌아다녀 달라고 해도 안 돌아다녔을 사람들이 지금은 제 돈 주고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을 돌아다니게 된 것처럼요.” 그의 ‘불가능공장(Impossible factory)’ 영어 표기가 ‘I’m possible(나는 가능하다)’인 이유다.





[S BOX] 사랑길·우정길·먹빵길 … 올가을 ‘한복길’도 개장



박세상 불가능공장 대표가 개발한 한복길은 올가을 공식 개장한다. 한복길은 전주 한옥마을 내에서 한복을 입고 먹고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이은 것이다. 이 길은 올해 한국관광공사의 ‘창조관광벤처상’을 수상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다. 박 대표는 제주의 ‘올레길’처럼 전주 한옥마을 구석구석에 위치한 역사·문화 자원을 연결해 테마별로 코스를 만들었다. 사진길·사랑길·우정길·먹빵길·전통문화길·조선캐릭터놀이길 등이다. 사진길은 ‘사진발’ 잘 받는 코스로 구성됐다. 경기전→향교→오목대→벽화마을→600년 은행나무→전동성당을 잇는 길이다. 사랑길은 사랑나무 소원 빌기→향교 사랑벽화→전통체험(사랑의 팔찌)→사주→캐리커처→사랑의 노리개 달기 등으로 이어진다. 한복은 한옥마을 내 대여소에서 대여가 가능하다. 임금옷·내시옷·기생옷 등 종류가 다양해 원하는 콘셉트에 맞게 한복을 빌려 입으면 된다. 대여료는 1시간30분에 5000원, 4시간에 1만원 선이다. 박 대표는 “젊은 층에게 한복은 패션이자 개성 표현의 수단, 이색 경험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며 “한복길이 개발되면 전주 한옥마을은 1년 365일 한복을 즐기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