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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아이들은 왜 한 명이 울면 다 따라 울까

중앙일보 2015.07.04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모두 한 방향으로 향할 때, 홀로 다른 쪽을 바라볼 수 있는가. 심리학자 솔로몬 아시의 ‘동조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이 틀렸다 하더라도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맞추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집단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사람은 전체의 4분의 1 정도였다. [그림 어크로스]


타인의 영향력

마이클 본드 지음

윤희경 옮김, 어크로스

384쪽, 1만7000원




동양고전 『소학(小學)』에 ‘봉생마중 불부자직(蓬生麻中 不扶自直) 백사재니 불염자오(白沙在泥 不染自汚) 근묵자흑 근주자적(近墨者黑 近朱者赤) 거필택린 취필유덕(居必擇隣 就必有德)’이라는 구절이 있다. ‘마밭에 난 쑥은 세우지 않아도 곧게 서고, 흰 모래도 진흙을 만나면 물들이지 않아도 더러워진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지고 빨간 주사를 가까이 하면 붉어진다. 살 곳을 고를 때는 반드시 이웃을 살펴 반드시 덕이 있는 사람 쪽으로 가라’는 뜻이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주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은 한 명이 울면 나머지가 따라 우는 경우가 많다. 어른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향점이 다른 정치인들도 서로 싸우면서 오히려 닮아가지 않는가.



 영국 사회심리학자인 지은이는 ‘나는 과연 내 의지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를 화두로 삼았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부터 투표하고 투자하고, 심지어 시위를 벌이고 테러에 가담하고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치는 일까지 모두 타인의 영향이나 집단심리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국 엑서터대 사회심리학 교수인 마크 레빈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에게 팀의 미덕을 생각하게 한 뒤 부상 당한 낯선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맨유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도와줄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세 배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복 검증을 위해 전반적인 축구팬을 떠올리게 했더니 낯선 사람이 축구 클럽 셔츠를 입었다면 누구든 기꺼이 도와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변적이거나 일시적일 수는 있어도 집단 정체성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지은이는 인간의 집단성향이 진화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적과 친구를 구분하는 능력은 생존에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사는 ‘부족 성향’이 신체에 생리적으로 새겨져 있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은 경쟁 행동을 촉진하며,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은 자기 집단에 대한 애착을 유도한다. 이 때문에 집단성향은 사회적 네트워킹에 대한 인간 본연의 갈증을 유발한다. 동시에 외로움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타인의 존재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부재는 더욱 험악한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 지은이의 지적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20세기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은 대부분 집단행동이었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용기를 얻는다. 군대에서는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친 전우애가 수적 열세에도 승리를 이끈 경우가 수두룩하다. 세계 대전에서는 평소에는 전투에서 뒷전으로 물러나기 일쑤였던 말썽 병사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전공을 세워 최고훈장 수훈자가 되기도 한다.



 연대의식은 스포츠 경기에서도 극적인 드라마를 만든다. 한국 월드컵 4강신화의 원동력을 설명할 수도 있겠다. 극한 환경에서 이뤄진 탐험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집단심리는 격동의 역사에서 흔히 발견된다.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은 1871년 민중봉기인 ‘파리코뮨’ 사건을 목격하면서 상호최면작용, 익명성, 집단심리 등 군중의 무서움을 다룬 ‘군중심리’라는 논문을 썼다. 지은이는 레닌·스탈린·히틀러·무솔리니가 바로 이를 활용해 전체주의 사회를 유지했다고 지적한다.



 이런 집단심리를 공익을 위해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로, 영국 정부는 소득세 미납자들에게 “대다수 국민은 제때에 세금을 납부한다”라고 강조하는 편지를 보냄으로써 납세율을 20% 정도 높였다고 한다. 이를 심리학에선 ‘넛지 전략’이라 부른다.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란 의미다.



 이를 잘 활용하면 치안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영국 심리학자 클리퍼드 스톳은 『축구 폭력행위, 치안유지, 그리고 영국병』이라는 책에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악명 높은 잉글랜드 훌리건을 다루는 방법을 제시했다. 치안당국이 잉글랜드 축구팬이 아닌 소수의 폭력적인 인물만 표적으로 삼아야 폭력이 집단심리로 번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예로, 스코틀랜드 축구팬도 잉글랜드 축구팬 못지 않게 경기장에서 술을 많이 마시지만 ‘우리가 예의 바르게 행동할수록 (경쟁 관계인) 잉글랜드 축구팬들이 더 안 좋게 보인다’는 집단심리 때문에 비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자기네 내부에서 공격성을 보이는 사람을 처벌하기까지 한다. 경찰이 시위 진압 때 적극적으로 참조할 사회심리학의 업적이다. 왜 합리적인 시위대가 ‘비폭력’을 연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집단심리를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은 인간 본질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은 결국 개인이면서도 집단’이라는 깨달음이다.







[S BOX] 9·11 이후 늘어난 자동차 사고



미국 연구 결과 9·11테러 이후 1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항공 여행이 위험하다고 여겨 자동차 여행으로 바꿨다. 그 결과 자동차 사고로 예년보다 1600명이 더 많이 숨졌다. 위스콘신대 심리학자 코린 엔라이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9·11 추모행사 뉴스를 접하기만 해도 테러 재발 가능성을 우려한다. 공포와 분노가 언제나 이성을 앞선다.



  지은이는 이런 현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영향력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SNS를 통해 감정이 빠르게 확산되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왜곡하는 원인이 된다는 설명이다.



대다수 한국인이 1994년 7월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기억하듯 영국인은 97년 8월31일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숨졌을 당시를 생생히 기억한다. 대중들은 꽃다발을 들고 다이애나가 신혼을 보냈던 켄싱턴궁을 찾았다.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위로하고 안아줬다. 지은이는 이를 두고 애도라는 단 하나의 감정만 존재한, 감정전염의 전형적 사례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였지만 감성적인 실황방송이 이어지자 생각 없이 타인의 기분과 감정에 동조하는 현상이 전국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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