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다인 병실, 아프리카 오지와 뭐가 다른가

중앙일보 2015.07.04 00:02 종합 25면 지면보기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 의약사 평론가회 회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기치 못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우리 사회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참으로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한 한편 국내 의료 수준에 대한 믿음이 허상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크게 실망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누기 힘들다. 그러나 일단 초등 대응의 문제는 발생했지만 이후 대형병원들의 감염 관리에 대한 대응, 의료진의 몸을 사리지 않는 헌신적 노력, 그리고 양질의 집중치료를 통해 최악의 비극은 막아내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40% 이상이던 사망률을 국내에선 20% 이내로 낮추며 메르스를 서서히 잡아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 수준 자체는 매우 높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아울러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의료진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며 사뭇 자랑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지닌 의료 구조상의 문제는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여러 주요 외신은 ‘신기하고 의외’라는 톤으로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옮겨 다닌다” “대부분의 환자가 6인실에 입원한다” “입원 환자의 간호를 가족에게 의존한다” “병원 방문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등등의 우리 의료 현실을 지적하며 이를 국내 ‘메르스 사태’를 악화시킨 주요인으로 꼽았다. 그런데 무엇 하나 틀렸다고 반박할 수 없어 당혹스럽기만 하다. 부끄러운 우리 의료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특히 입원한 메르스 환자가 다른 환자의 보호자를 감염시켰다는 사실로 인해 병원 내 감염원으로 다인실 문제가 큰 이슈로 대두됐다. 병동 관리의 생명은 감염을 막는 것이며, 이를 최우선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거침없이 병동을 휘젓고 다닌다. 이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병원 관리에 얼마나 큰 ‘구멍’이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유야 어떻든 가족이 환자 곁을 24시간 지켜야 한다는 게 국내 의료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내 한 언론에서도 다인 병실을 놓고 “우리나라 병원 말이야. 그게 어디 병실이야? 난민수용소지”라고 지적했다. 참으로 낯 뜨겁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1960~70년대 알베르트 슈바이처(Abert Schweizer) 박사가 운영하던 아프리카 오지의 병원에서 입원 환자가 가족과 함께 숙식하던 모습과 다를 게 무어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하다.



 그런데 다인실을 둘러싼 국내 병원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병원 감염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경제성과 선거를 의식한 나머지 당국이 앞장 서서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해왔다는 사실이다. 대형병원의 1인실 병상 규모를 축소해 6인실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해온 것이다. 이는 포퓰리즘의 극치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여기에다 시민단체들도 잘못된 흐름에 맞장구를 쳤다. 대형병원이 서민을 등진 채 이윤만 추구한다고 매도하기 일쑤였다. 그 결과 메르스 확산을 부른 한심한 병원 현실을 낳았다.



 지금 우리의 종합병원의 응급실은 또 어떤가. 유명한 병원일수록 병상 수용능력을 넘어서는 환자들로 넘쳐나 마치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다. 의료진과 장비가 아무리 좋아도 지금 같은 다인실·응급실 구조로는 병원 감염을 막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저개발국형 병원 실태를 지적하는 외국의 실정은 어떨까. 유럽에서는 80년대부터 서서히 병원을 개축 또는 신축할 때 1인실 또는 2인실 입원실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1인실은 호텔형 특실 개념이 아닌 검소한 독방을 말한다. 6인실 같은 다인실에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은 병원 감염 문제뿐 아니라 인권 개념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이 문제를 감염 예방 차원에서 접근한다. 요컨대 병원시설기준원(Facility Guidelines Institute·FGI)의 지침에 따라 병원을 새로 건축할 때 병실을 1인실(single-bed room)로 해야 하며, 기존 병원을 개축할 때는 2인실을 허용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병원 다인실과 관련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환자가 1인실을 기피하고 6인실을 선호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 비용 부담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많이 늦었지만 관련 기관은 정책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것이 옳다. 토털 간호제와 함께 환자가 1인실에 입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보건 질병예방 분야에 과감한 예산 투자와 함께 정부의 획기적인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일각에선 비용을 걱정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로 입은 국가의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비교해보자. 앞으로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적극적인 사전 투자가 훨씬 경제적이란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혹독한 ‘메르스 사태’를 통해 얻은 교훈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한국 의약사 평론가회 회장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