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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아크로폴리스에서의 상념

중앙일보 2015.07.04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고정애
런던특파원
무수한 이들의 발길로 반질반질해진 길을 따라 아크로폴리스로 향합니다. 2000여 년 전 여길 오르곤 했을 아름다운 젊은이를 떠올립니다. 풍성한 금발에 부드러운 피부의 소유자였습니다. 당대의 아도니스, 알키비아데스입니다.



 그는 화려하면서도 퇴폐적이었고 담대하면서도 무모했습니다. 아테네는 열광했습니다. 소크라테스도 매혹됐지요. 그는 선동가였으며 동시에 탁견의 전략가였습니다. 시켈리아 원정을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시민들이 원정을 결정했을 때 원정군을 이끌 장군 두 명 중 한 명이 되는 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곧 떠났습니다. 과도한 야망에, 탈관습적인 행태에 질린 겁니다. 원정 도중의 지휘관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는 스파르타로, 페르시아로 투항하곤 했습니다. 아테네의 숙적들입니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조국에 맞서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고 잃어버린 조국을 탈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



 시켈리아 원정의 참패로 아테네는 빛을 잃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란 매력적 선동가가 없었더라도 아테네가 출정했을까요. 알키비아데스가 지휘했더라도 결과가 같았을까요.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몰락의 원인인 걸까요.



 그가 출정했던 또 다른 전쟁도 떠오릅니다. 아테네로부터 150㎞ 떨어진 섬 밀로스입니다. ‘밀로의 비너스’의 그 섬입니다. 국제정치적으론 멜로스로 알려져 있지요. 아테네는 중립을 지키던 멜로스를 침공했습니다. 그러곤 이렇게 강요했다고 투키디데스는 적습니다.



 “희망은 위기의 위안자다. 힘에 이유가 있는 자가 희망을 갖는다면 해를 입을지언정 멸망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나 모든 것을 희망에 거는 자는(희망이란 그 성격상 과장되게 마련이므로) 꿈이 깨졌을 때 그 실체를 깨닫고서 경계하려 하지만 이미 희망도 사라져 버리고 없는 것이다…여러분은 자기 영토를 지닌 채 진공국이 되라는 온당한 요구를 가장 강력한 도시가 제안하고 있는 것을 부당하다고 보아선 안 된다. 게다가 전쟁이냐, 안전이냐는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는 지금 어리석게도 공명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그리스의 현 위기 탓에 드는 상념입니다. 애당초 위기는 지도자와 국민의 잘못에서 비롯됐을 겁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현 총리는 위험해 보입니다. 하지만 6년째 고통을 겪으며 “이젠 내일이 오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이에게, 잘못된 처방이란 게 엄연해지는데도 동일한 정책을 강요하는 독일의 모습 또한 썩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알키비아데스가, 멜로스의 대화가 떠오른 이유입니다.



 5일 국민투표 등을 통해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그리스인들의 고통은 수 년, 길게는 수십 년 이어질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또 매일 60유로를 위해 현금입출금기를 찾아 헤매면서도 굳건히 일상을 지켜내는 그리스인들이 눈물겹습니다. 그리스의 비극입니다. 햇볕이 따갑습니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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