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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시민이다] 지하철역 소독한 평택 주민들 … 병원 폐쇄 자청한 대구 의사

중앙일보 2015.07.02 00:45 종합 10면 지면보기
1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나흘쨰 진정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 기세등등했던 메르스도 이제 끝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해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평범한 시민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메르스 종식이라는 희망의 불씨를 지펴 왔다. 모친 임종을 못하면서 자가격리를 철저히 지킨 택시운전사,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방역에 나선 자원봉사자, 스스로 병원 문을 닫아걸고 확산을 막은 의사도 있었다. “나 하나 살겠다고 이웃과 공동체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시민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일부는 ‘별로 한 게 없다’며 사진 게재를 원하지 않았다. 





강길모(54·가운데)씨가 1일 오후 동료들과 함께 경기도 평택시 서정리역을 소독하고 있다. 방역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17일부터 자원했던 그는 “마스크 쓴 사람이 줄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준호(50·대구 대곡제일내과 원장)



우리 병원에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 환자가 방문했다. 기침과 38.7도 고열이 있어 메르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당시에는 의심환자 상태였지만 잠복기 14일 안에 언제든지 감염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 환자가 우리 병원 진료를 받고 나간 뒤 곧바로 병원을 폐쇄했다. 만일 병원 문을 열어두고 계속 진료하다가 메르스 확진 이후 휴진을 하면 그동안 우리 병원에 오신 환자분들에게 감염 피해가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다음 잠복기 동안 휴진을 하고 환자의 확진 여부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다행히 그 환자는 확진이 아니라 의심환자인 것으로 판명됐다. 메르스의 끝이 보인다고 하나 많은 분이 지금도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저뿐 아니라 다른 병원 의사와 직원, 그리고 병원을 방문하신 환자들도 여전히 노심초사하고 있다. 또 지금까지 오랫동안 휴진하고 계신 분들도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안용현(49·자가격리 택시기사)



지난달 6일 충북 옥천군에서 90번 환자를 택시에 태우고 옥천성모병원으로 갔다. 다음날 오후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통보를 받았고 지난달 7일부터 20일 자정까지 한 발짝도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평소 하루 두 갑씩 피웠던 담배를 한 대도 안 피웠다. TV 보다 지치면 앞뒤 베란다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격리 기간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임종하지 못해 무척 힘들었다. 어머니 집이 지척인데도 자식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 너무나 원통하고 슬퍼서 한 시간 넘게 펑펑 울었다. 격리가 끝나자마자 혹시 몰라 택시를 세차하고 곧바로 산소로 갔다. 어머니께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금전적 손해도 적지 않았다. 하루에 못 벌어도 14만원씩 벌었는데 200만원 가까이 손해 봤다. 내가 하루에 최소 40~50명씩 태우는데 14일이면 700명이다. 나 하나로 인해 그 많은 사람이 피해를 겪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집 밖으로 나올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강길모(54·자원봉사자)



지난달 17일부터 경기도 평택에 있는 지하철 역사 4곳, 전통시장 3곳을 돌며 방역작업을 했다. 부드러운 천에 소독약을 묻혀 지하철역 개찰구와 계단 손잡이, 시장 가판대 등을 박박 문질렀다. 평소 대한적십자사 봉사 활동을 해왔는데 보건소에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봉사자를 모았다. 인근에서 확진자가 나와 메르스 공포가 클 텐데 40명이 모였다. 소독할 때 먼지가 많이 날려 마스크를 썼더니 행인이 “공기감염 안 된다는데 마스크 쓴 거 보니 거짓말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먼지가 아무리 날려도 마스크를 벗고 작업했다. 지금은 길거리에 마스크 쓴 사람이 많이 줄었다. 그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메르스가 사라질 때까지 이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엄대용(37·충남대병원 장례지도사)



메르스에 걸려 숨진 확진환자 네 분을 모셨다. 보호복을 입고 시신을 밀봉한 뒤 관으로 옮기고 화장장까지 모셔드리는 일을 했다. 12년 동안 이 일을 해왔는데 감염병 사망자를 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13일 첫 시신을 모실 때 감염되지 않을까 겁이 덜컥 났다. 보호복을 입고 벗는 방법을 교육 받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됐다. 하지만 나의 일이며 피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고인을 고이 모셔드려야 했다. 남들처럼 아파서 돌아가시는 건데 감염병이란 이유 하나로 임종 인사도 못하고, 수의도 못 입은 상태에서 화장장으로 가야 했다. 그게 견디기 힘들었다. 저세상에서 평안하시라고 마음속으로 숱하게 빌었다.



◆임홍섭(52·부산 임홍섭내과의원 원장)



지난달 6일 너무 상태가 안 좋은 환자가 들어섰다. 열이 많고 몸살기가 있었다. 다른 병원에 안 갔었느냐고 물었더니 “삼성서울병원에 병문안을 다녀왔다”고 하더라. 바로 보건소에 신고했다. 의사 커뮤니티에서 삼성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온 사실을 알고 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당시에는 병원 문 닫으면서 손해 보고 말고 이런 생각은 안 들더라. 의사로서 당연한 처사였다.



◆채정호(54· 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장)



 작은 도움이라도 되자는 마음에서 정신적 지원이 필요한 피해자와 정신과 전문의를 연결하는 일을 했다. 정신과 교수 70여 명이 의기투합했다. 지금까지 20여 명을 상담했다. 그중 유치원생 자녀를 둔 한 엄마(자가격리자)가 있었다. 상담을 해보니 메르스 공포심이 극심했다. 외부 단절 때문이었다. 상담이 거듭되자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메르스가 사라질 때까지 ‘심리 방역’을 지원하겠다.



◆김태진(82·자가격리자)



 지난달 5~19일 우리 마을(순창 장덕마을)이 통째로 격리됐다. 나도 아내와 꼼짝없이 자가격리됐는데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었다. 아내가 척추를 다쳐 다리를 못 쓴다. 그 전에는 매일 오토바이 태워서 바깥에 나갔고 읍내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그걸 못하니 아내가 힘들어했다. 그래도 전국적으로 자가격리자가 많은데 우리만 힘들다고 할 수 없지 않으냐며 아내를 다독였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자가격리를 잘 이겨내 뿌듯하다.



◆박찬훈(61·옥천군 이장)



 지난달 9일 옥천에서 메르스 확진자(90번)가 나온 사실을 알았다. 이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18개 마을 이장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고장에 비상사태가 났다. 정부가 못하는 걸 우리가 한번 해보자”고 설득했다. 지난달 10~29일 다섯 차례에 걸쳐 마을 곳곳을 소독했다. 괴질이 우리 마을에 오더라도 발을 들여놓는 순간 확 떼버릴 수 있게 하자는 각오로 나섰다.



◆강창하(47·자발적 자가격리)



 안동에서 택시 운전을 한다. 지난달 1일 단골 손님을 태우고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에 다녀왔다. 서울 대형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왔고 7일 그게 삼성서울병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간 날은 메르스 환자(14번 환자)가 있던 날(5월 27~29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을 많이 접하는 직업이어서 지난달 7일 스스로 자가격리했다. 하루에 10여 명씩 손님을 태우는데 나 하나 때문에 안동에 확진자가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김성은(31·공무원)



 35번 환자(삼성서울병원 의사)와 접촉한 개포동 주공아파트 조합원 격리자 모니터링을 담당했다. 큰 피해를 막기 위해 격리자의 ‘아들’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하루 두 번만 하면 되는 전화를 네댓 번 했다. 2~3분이면 끝날 통화가 매번 20분 걸렸다. 발열 여부만 체크하지 않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어봤다. 격리자들도 마음을 열었다. “ 감사했습니다. 우수 감독에게 우수 격리자가.” 한 통의 문자를 받고 그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졌다.



글=노진호·김나한·임지수 기자 yesno@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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