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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짜고 치는 문단’… 지적 창조물 무단탈취 눈감아

중앙일보 2015.06.29 00:22 종합 21면 지면보기
김원우
최근의 신경숙씨 ‘표절 사례’에 대한 비등한 소동은 몇 가지 숙고거리를 제공, 문단 안팎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문학 부활을 위한 제언 ③ 작가의 직업윤리 되찾아야

 다들 알다시피 ‘도덕’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에 대한 선긋기이다. 법률처럼 강제성은 없지만, 공동선을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개발한 선악, 시비 개념은 워낙 엄연하므로 상식적 판단을 강요한다. 반면에 ‘윤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인간적 도리라서 자율적이며, ‘도덕성’ 여부를 시대별, 장소별, 개인별로 갈라서 물을 수 있다. 남의 지적 창조물을 무단으로 탈취하여 사익의 수단과 목적으로 삼았다면 ‘해서는 안 되는’소행으로써 소유권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인간으로서의 ‘도덕성’ 결격 사유를 공동체가 합심하여 물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직업윤리’란 말도 있듯이 작가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는 아주 많다. 우선 작가는 자신의 신작이 전작과는 어디가 달라도 달라야 하며, 그 수준도 나아져 있어야 한다는 복무지침에 최대한으로 충실해야 한다. ‘동어반복’을 허용치 않는 이 실천 강령을 준수하기는 너무나 힘겨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하면서 어딘가로 나아가야 하지만, 동시에 ‘과거’를 파먹고 살아가는 모순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직업윤리 따위를 괘념치 않는 작가는 일쑤 동어반복증후군의 내습에 투항, 제 전작부터 고스란히 베껴버릇함으로써 직무유기를 자청, 자기기만을 일삼곤 한다. 알게 모르게 남의 것 베끼기도 내면화의 길로 치닫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표절’을 감싸고 덮어버리는 작태는 우리 문단의 제도적 적폐가 빚어낸 일과성 해프닝이고, 해당 작가는 그 속죄양일 뿐이라는 소수의 잡음도 있는 듯하다. 일리가 없지 않다. 소위 ‘주례사 비평’의 뻔뻔스런 횡행, 인기작가의 뻔한 재능을 입도선매하여 그 단물을 단숨에 빼먹으려는 출판사들의 치열한 배금주의, 그에 부화뇌동하여 유명세, 문학상, 거금의 인세를 한꺼번에 거머쥐려는 ‘젊은 한때’의 속물근성 등등이 치밀하게 암약하여 엉터리 경쟁을 부추기고, 그런 제도적 소용돌이에 휩쓸리면 어느 작가라도 별것도 아닌 제 재주에 취해서 이내 인격 파탄자로 돌변하게 되어 있다는 동정론이 그것이다.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지어내게 되어 있듯이 그런 제도적 불합리는 끼리끼리 뭉쳐서 ‘짜고 치는 고스톱판’ 같은 자화자찬 조작벽에 빠지고, 추수주의자들의 교언영색조 평문을 남발하게 만들며, 여기저기서 조금씩 따온 아류작의 양산 체제를 독려하도록 밀어붙인다. 작가들의 허영심을 들뜨게 만드는 그런 메커니즘은 우리만의 ‘풍토성’도 아니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글권 책시장의 규모가 점점 협소해지는 것도 실은 몇몇 작가들의 고만고만한 조악품만을 편애, 선호하는 ‘구조악’ 때문이며, 우리 소설의 ‘재미없는’ 낙후성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는 일반적인 독후감도 용도폐기해야할 제도적 장치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절이든 인용이든 패러디든 그 따온 문장을 보면 따서 쓴 사람의 눈높이와 동선까지도 웬만큼 짐작할 수 있다. 신경숙씨의 표절 사례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일본이든 독일이든 그들의 작품을 읽고 배워야 할 일급 작가들은 의외로 많다. 남의 것을 베낀 기억이 없다니까 신경숙씨도 소설 공부를 독실하게 하기 위해서 읽기는 한 모양인데, 안목 높이기를 한껏 정체시키면서 오래도록 혼자서 즐기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쉬 가시지 않는다. 하기야 일급 작가들은 함부로 따서 쓸 수 없게 만드는 비장의 솜씨를 과시하면서 오로지 열심히 배우라고 권면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수준에 이른 작가가 드물지 않다. 가령 작고하신 염상섭, 이문구가 기중 뚜렷하고, 한국현대소설사상 사유의 최대치를 보여주면서 소설의 ‘형식’ 지양에 고군분투한 최인훈 선생은 아직 우리 곁에 살아 계신다. 그이들의 병적인 환상, 광적인 언어 수집벽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번쯤 다르게 써먹어보라는 이야깃거리들이 쉴새없이 기어나온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일본 소설을 그렇게나 열심히 본받으려고 한다니 공연히 먼데서 배우느라고 헛고생을 자청하는 듯하고, 이래저래 낭비가 겹겹으로 자심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표절’ 소동의 초반에 ‘우주적 궤변’이라고 일갈한 소설가 동지 고종석씨의 명민한 상상력을 조금 더 확장해보면, 오늘날 이땅의 출판계에는 소설산업의 부양을 위해 헌신하는 몇몇 집단이 있으며, 그들은 배제, 선택, 집중을 시행령으로 삼는 교리 개발에 빈틈이 없는 듯하다. 교단의 이름이나 교리도 어슷비슷한 그 물신들의 신도가 되지 못하는 대개의 작가들은 장차 제 떳떳한 직업을 애써 감추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원우=1947년 경남 진영 출생. 77년 ‘한국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객수산록』, 장편 『모서리에서의 인생독법』, 일본 문화 에세이 『일본 탐독』 등 출간. 동인문학상·동서문학상·대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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