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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의 재발견]‘라비린스’의 데이비드 보위

중앙일보 2015.06.24 13:32
[매거진M]



최근 흥미로운 상영회가 있었다. ‘화룡음정’이라는 컨셉트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마련한 기획전 ‘데이비드 보위를 사랑한 영화들’이 바로 그것. 보위가 출연하거나 그의 음악이 흐르는 영화 13편이 상영됐다. 보위를 가장 사랑했던 영화는 무엇일까. 아마 ‘라비린스’(1986, 짐 헨슨 감독)가 아닐까 싶다.





TV 아동 프로그램의 대명사 ‘새서미 스트리트’로 유명한 헨슨 감독은 인형 캐릭터가 등장하는 ‘머펫 쇼’의 대가. 그는 ‘스타 워즈’ 시리즈의 요다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데도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이 시기에 그는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영역을 넓혀 ‘머펫 무비’(1979)를 제작해 큰 성공을 거둔 뒤 ‘다크 크리스탈’(1982)로 기세를 이어갔다. ‘라비린스’는 그 정점. 개봉 당시 흥행은 소박했지만, 록 뮤지컬과 아동영화가 만난 이 작품은 이후 컬트로 추앙받았다.



흥미로운 일은 DVD 시대가 열리면서 일어났다. ‘라비린스’ DVD는 1999년에 출시됐는데, 극장에서 볼 수 없었던 비주얼이 숨어 있었다. 바로 데이비드 보위의 얼굴. 보위의 얼굴은 총 일곱 장면에 걸쳐 배경에 은근하게 파묻히는 식으로 등장한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아빠와 새엄마 그리고 이복동생인 토비(토비 프라우드)와 함께 살고 있는 틴에이저 소녀 사라(제니퍼 코넬리). 부모님이 외출하면, 아직 제대로 말도 못하는 아기인 동생 토비를 돌봐야 한다. 계속 울어대는 동생 때문에 화가 난 사라는 토비를 데려가라며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주문을 외운다. 진짜로 사라지고 고블린의 왕 자레스(데이비드 보위)가 나타나 13시간 안에 성으로 오지 않으면 동생도 고블린이 된다고 말한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복잡한 미로를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보위의 얼굴은 사라의 첫 번째 미로에 등장한다. 돌 벽으로 된 미로의 담벼락에 마치 부조상처럼 보위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사진 2) 두 번째 얼굴은 지하 감옥에 떨어진 사라가 사다리를 타고 밖으로 탈출하는 장면에 나타난다. 사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숏에서 통로 벽에 보위의 얼굴이 있다(사진 3). 지상으로 나온 사라는 두 번째 미로를 만난다. 이번엔 정원처럼 가꿔진 미로인데 바닥에 보위의 얼굴이 있다(사진 4). 이 미로엔 보위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화면 한구석의 초록색 벽이 그 배경이 된다(사진 5).















지금까지 등장한 ‘숨겨진 보위 얼굴 찾기’가 뛰어난 눈썰미가 필요한 고난도 작업이었다면, 다섯 번째 등장하는 얼굴은 그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다. 말하는 문고리를 열고 털북숭이 루도(롭 밀스)와 함께 밖으로 나온 사라. 그는 숲으로 향하는 길에서 어느 바위 앞을 지나는데, 그 형상이 명확히 보위의 얼굴이다(사진 1). 이 영화에 보위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려 주는 단서 같은 장면이다. 여섯 번째 얼굴은 석벽에 그려진다(사진 6). 사라가 호글과 함께 ‘영원한 악취의 늪’을 벗어나는 대목이다. 마지막 보위의 얼굴은 사라와 루도와 호글이 지나가는 숲 속에 등장한다(사진 7).



그렇다면 ‘라비린스’ DVD는 왜 이런 퍼즐을 만들어 놓았을까. 아마도 ‘길’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표식처럼 보위의 얼굴을 등장시킨 건 아닐까 싶다. 첫 번째 미로에서 벌레가 “그쪽으로 계속 갔다면, 성으로 곧장 갈 뻔했군”이라고 말한 직후에, 현자(프랭크 오즈)에게 “어디에도 이르지 못한 것 같을 때, 이미 다 온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호글이 “그 누구도 미로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때, 보위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리고 일곱 개의 얼굴을 거친 뒤에야 사라는 성에 도착한다. 보위는 악당처럼 보이지만 숨어서 그녀를 이끄는 길잡이 같은 존재였던 걸까. 아무튼 보위의 얼굴을 숨김으로써 ‘라비린스’는 좀 더 흥미로운 텍스트가 됐다.





글=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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