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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ech NEW trend] 디자인 = 디자人

중앙일보 2015.06.26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솔라퍼프(Solar Puff)’는 친환경 천 소재로 만든 태양광 전등이다. 낮에 8∼12시간 충전하면 밤새 사용가능하다. 작고 가벼운데다 불이 켜진 상태에서 접을 수 있다. [사진 솔라이트 디자인]


단순하고 투박한 디자인을 지닌 독일 베른데스의 ‘보난자’ 프라이팬. 음식물이 눌러 붙지 않게 했다. [사진 각 업체]
지난 4월25일. 네팔 카트만두와 인근 지역은 규모 7.9의 대지진이 강타하면서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 ‘디자인 민주주의’ 시대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갈라지면서 집을 잃은 이재민만 무려 820만명. 통신과 전기가 끊겨 밤이 되면 도시는 완전한 어둠 속에 묻혔다. 하지만 절망의 현장에서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세계 각지에서 ‘태양광 전등’이 구호품으로 도착한 것이다. 이 중엔 한국의 초롱불과 비슷한 전등도 있었다. 사각 풍선 모양의 이 ‘솔라퍼프(Solar Puff)’는 8~12시간 충전하면 12시간 동안 100루멘스의 빛을 낼 정도로 성능이 우수했다. 심지어 0.6㎝로 납작하게 접어도 빛을 유지했다.



쌤소나이트는 올 여름 더 가볍고 더 튼튼하면서 더 넓은 ‘트루프레임’가방을 내놨다. [사진 각 업체]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달랜 건 디자인이었다. 무겁고 딱딱한 다른 전등과 달리 솔라퍼프는 흰색 천으로 된 작은 사각 풍선 모양이다. 마치 얇은 천 속에 반딧불이를 넣어 둔 듯하다. 무게는 자두 1알(100g)보다 가벼운 70g. 네팔 지진 현장에서 아이들도 쉽게 들고 다니며 어둠을 밝혔다. 이 전등을 개발한 사람은 재미교포인 전민수(미국이름 앨리스) 교수다. 세계적인 패션학교로 꼽히는 파슨스뉴스쿨에서 디자인&소재문화학을 연구하는 교수이자 ‘솔라이트 디자인(Solight Design)’의 공동설립자다.



 전 교수는 천식을 가지고 태어난 11살 아들을 위해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다. 어떤 물건을 만들든 철저하게 사람을 위한 디자인과 소재여야 했다. 그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디자인은 가난하든 부자든 상관없이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고, 단순하고, 가볍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의 주장은 생활용품 업계를 중심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인체에 해롭지 않은 소재에 마음까지 편안하게 하는 디자인,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떠나 철저하게 ‘사람 편’인 디자인이 곳곳에서 각광받고 있다. 일명 ‘디자인 민주화’바람이다.



이케아의 ‘굴홀멘 흔들의자’. 바나나 나무를 재활용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살렸다. [사진 각 업체]
  솔라퍼프는 전 교수가 2010년 아이티 대지진을 접하고 긴급구호용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게 출발점이다. 재난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인명을 구하려면 성능과 휴대성이 핵심이다. 리튬이온폴리머 배터리와 태양광 전지판(패널)을 붙여 태양광 에너지를 충전해 빛을 내는 원리다. 전 교수는 어릴 적 종이접기 놀이에서 힌트를 얻어 몸체를 접힐 수 있게 하고 친환경 천 소재를 사용했다. 방수가 되고 물에 뜨는 재질이라 캠핑 등 야외활동에도 적합하다. 수명은 3년 이상이며 가격도 35달러(한화 약 3만8000원)로 합리적이다.



 솔라퍼프는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미국의 소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KICKSTARTER)’에서 진행된 솔라퍼프 프로젝트엔 7000명이 넘게 참여해 한 달 만에 44만6000달러(한화 약 5억원)가 모였다. 일본에선 두 달 만에 1만개가 넘게 팔렸다. 전기가 없어 빛이 없는 밤을 보내고 있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 등에서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전 교수는 “소재면에선 얇고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좋은 소재, 디자인 면에선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이 최근 트렌드”라며 “디자인이 사용 편의성을 높이며 제품 성능과 시너지를 내야 시장에서도 사랑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스웨덴의 가구 전문점 이케아는 저렴한 가격이 성공의 비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5대 디자인 철학’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모양, 일상을 더 편리하고 의미있게 만드는 기능, 오랜 기간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품질, 사람과 지구를 생각한 친환경 소재, 부담없이 구매할 수 있는 가격 등이 5대 요소다. 대표적인 제품이 ‘라크(LACK) 보조 테이블’이다. 나무판을 벌집 구조로 덧대 내구성은 높이고 무게는 줄여 환경 친화적이다. ‘굴홀멘(GULLHOLMEN) 흔들의자’는 바나나 섬유가 소재다. 열매를 맺으면 바로 죽어버려 버려지는 바나나 나무를 재활용했는데, 천연소재가 주는 편안함에 요람처럼 부드럽게 흔들리는 동작이 심신을 함께 쉴 수 있게 고안됐다. 이케아코리아 전민아 실장은 “단순히 제품의 가격을 낮추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비용 부담없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케아의 목표”라며 “제품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5대 디자인 요소의 균형점을 찾은 다음 디자인을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라크 보조테이블’은 이케아의 스테디셀러다. 하중을 잘 견디는 벌집구조로 만들었다. [사진 각 업체]
 국내 가구업체인 현대 리바트의 최근 디자인 화두도 ‘삶의 피로에 지친 현대인에게 휴식을 주자’다. 리바트 엄익수 영업전략사업부장은 “단순히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통해 편안함을 주는 게 아니라 정성적으로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색상과 높이를 고려해 디자인한다”고 했다. 실제 올해 신제품 85%는 목재 그대로의 색상을 살리고 있다. 기존의 화려하고 강렬한 디자인 대신 둥근 모서리와 곡선을 살리고 소재 역시 자연스럽게 구겨지면서 부드러운 천 소재 사용이 늘고 있다.



 리바트는 안락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올해 3월 인체 굴곡에 맞춰 신체를 포근하게 감싸는 침대 폼매트리스 브랜드를 내놨다. 스페인어로 ‘구름’을 뜻하는 ‘누베(nube)’매트리스는 월 평균 500개 이상 판매되고 있다.



영국의 스타셰프 제이미 올리버의 이름을 딴 돌절구. 양념재료 등을 손쉽게 갈 수 있다. [사진 각 업체]
 편안하고 단순한 디자인은 주방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냉장고를 부탁해’(JTBC), ‘집밥 백선생’(tvN) 등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면서 요리도구도 초보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견고하면서 심플한 것들이 인기다.



 100년 전통의 독일 주방용품 브랜드인 ‘베른데스’는 녹슬지 않는 건강한 소재와 단순함이 특징인데 다소 투박해보이는 디자인이 오히려 가마솥과 같이 친숙하고 깊은 풍미를 전해 준다는 평가 다. 영국 셰프인 제이미 올리버는 ‘요리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요리도 맛있어 진다’는 신념으로 주방 조리도구 아이디어를 낸다. 실용적이면서 꼭 필요한 상품만 다루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좋아한다. 제이미 올리버의 돌절구는 배우 이서진이 사용해 인기를 얻었다지만 사실 돌절구는 그 어떤 조리도구보다 친숙하고 정감가는 대상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네는 돌절구에 마늘·곡물 등을 빻고 서양인들은 각종 향신료를 갈며 요리에 풍미를 더해왔다.



현대리바트는 ‘삶의 피로’를 덜어주는 디자인에 주력한다. 목재 본연의 색상을 살렸다. [사진 각 업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영원한 지향이자 테마인 여행.



 세계 최대 여행가방 브랜드인 쌤소나이트는 여행 성수기인 여름철을 맞아 ‘트루프레임(TRU-FRAME)’ 캐리어들을 새롭게 선보였다. 더 가볍고 더 얇고 더 강한 디자인이 핵심이다.



 본체 두께를 최소화해 23인치 기준으로 무게를 0.8㎏ 줄인 대신 박스 타입으로 내부 공간을 넓혀 수납력은 더 좋아졌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쌤소나이트 김희정 마케팅 이사는 “이번 제품들은 간결한 박스 타입에 겉에 음각패턴을 넣어 세련미를 더했다”며 “남녀노소 전 연령대 여행객들이 즐겁게 여행을 시작하고 마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기술과 디자인의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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