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6·25, 말만 해도 땀나고 가슴 쿵쿵 … 한국인 행복하니 참전 보람"

중앙일보 2015.06.24 01:22 종합 8면 지면보기
한국전쟁에 참전했거나 한국에서 복무했던 찰스 펠더, 노먼 갓프리, 리처드 로빈슨(왼쪽부터)이 19일(현지시간) 워싱턴 참전용사단지에서 함께 했다. 사진 속 벤치는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한국이 기증했다.


한국전쟁 발발일을 앞둔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북쪽의 참전용사단지(AFRH). 이곳 주민 455명은 모두 퇴역 군인이고 이 중 200여 명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워싱턴 미군용사단지 가보니
80대 노병 200여 명 전쟁 상흔 간직
"한국 젊은 층, 위 세대 희생 기억을"



 워싱턴 도심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1.1㎦ 넓이의 녹지에 자리한 단지에서 만난 한국전 참전용사 노먼 갓프리(89)는 아직도 왼쪽 다리에 파편이 박혀 있다. 1950년 7월 부산에 들어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그해 10월 포탄이 옆에서 터지며 큰 부상을 입었다. 처음엔 인터뷰를 피하던 갓프리는 “지금도 한국전쟁이라는 말만 꺼내도 땀이 나고 가슴이 뛴다”며 “내 옆에서 포탄이 터져 동료의 머리가 날아가는 것까지 봤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 얘기를 하면 꿈에 또 (당시의 기억이) 나온다”고 밝혔다. 그러나 갓프리는 “참전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한국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니 나도 행복하다”고 말을 맺었다. 6·25를 겪었던 참전 노병들은 기억의 뒤편에 상처를 숨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쟁의 폐허로만 기억된 채 떠났던 한국이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룬 데 대한 참전의 보람을 숨기지 않았다.



단지 내 숙소 건물 3층의 방에서 만난 로버트 브라운(82)은 허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했다. 그래도 예고 없이 들이닥친 한국 기자들을 내치지 않았다. 52년 상병으로 참전했던 브라운은 “추위 때문에 얼어 죽은 전우가 참 많았다”며 “너무 추워 거의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가 적이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해 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참전할 가치가 있었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당시와 지금의 한국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나는 한국이 이뤄낸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모두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의 방문에는 한반도 모양의 지도와 함께 참전 부대 휘장이 그려진 천이 걸려 있었다.



 20여 분 전 같은 건물에서 만났던 리처드 로빈슨(84)은 숙소에 보관하고 있던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의 감사패와 메달을 조용히 꺼내 보였다. 하지만 그는 “52년 한국에 온 뒤 서울의 미8군 사령부에서 타자병으로 복무했다”며 “(전방에서 싸운 전우들에 비하면) 내가 희생한 것은 없다”고 자신을 낮췄다. 로빈슨은 “타자병은 각 부대에 정보 전문을 전파했는데 53년 7월 판문점에서 내려온 휴전협정문을 내가 직접 봤다”며 “전쟁이 끝났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말했다. 로빈슨은 “그러나 전쟁의 위협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며 “한국에 재배치됐던 68년 북한이 미군 함정 푸에블로호를 나포했는데 그때 다들 전쟁이 또 날 거라고 했고 3개월간 부대에 경계 태세가 계속됐다”고 회고했다.



이날 한 참전 노병은 조언을 잊지 않았다. 브라운은 “미군이 많이 죽었다”는 기자의 얘기에 “한국인이 더 많이 희생했다”고 답했다. 그러곤 “한국의 젊은 세대는 미군만 아니라 한국의 위 세대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김영남 워싱턴중앙일보 기자 mfemc@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