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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로 남은 9826명, 이름 찾아주는 그들

중앙일보 2015.06.24 01:20 종합 8면 지면보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 감식관들이 23일 최근 발굴해 이곳으로 가져온 국군 전사자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해 유골을 살펴보고 있다. [김성룡 기자]


2000년 4월 어느 날 엄정호씨의 꿈에 50년 전 전사한 남편이 나타났다. 수도사단 17연대 소속으로 1950년 8월 23일 경북 칠곡 다부동 369고지 전투 중 사망한 최승갑 하사였다. 꿈속 남편은 “산밭길을 따라 내려오면 내가 있다”고 말하곤 사라졌다고 한다. 전사통지서를 받은 뒤 50년 동안 단 한 번도 꿈에 등장하지 않던 남편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뒤 국방부에서 남편의 유해를 찾았다는 기별이 왔다. 당시 국군 유해발굴감식단이 일군 첫 성과였다. 이후 15년 동안 유해발굴감식단은 전국에서 9826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 국군 유해는 8596구다. 나머지는 유엔군(13구), 북한군(697구), 중공군(520구)의 유해였다.

격전지 170곳 파면 1구꼴로 찾아
군번 대신 13자리 숫자 부여
신원 파악 실패하면 박스에 보관
DNA 샘플 부족해 유족 찾기 한계
15년간 이름 찾아준 건 107명뿐



 육군이 2000년 6·25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진행하던 국군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2003년 지속사업으로 전환됐다. 2007년에는 육군에서 국방부로 소속이 바뀌고, TF팀에서 유해발굴감식단으로 확대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게 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65년이 흘렀지만 이름 없는 산천을 떠돌고 있을 전사자 유해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학기 유해발굴감식단장(육군 대령)은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 조국을 구한 분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며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6·25전쟁으로 전사했거나 실종된 국군은 16만2394명. 이 중 2만9202명은 현충원에 안치됐다. 찾지 못한 유해는 13만3192명으로, 1년에 1000구씩 발굴한다고 해도 130년이 걸린다. 이 단장은 “유해발굴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6·25 65주년을 이틀 앞둔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경내에 위치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1층 중앙감식소 테이블 위엔 최근 강원도 철원 등지에서 발굴된 유골들로 가득했다. 두개골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형태를 가진 유골은 10여 구에 불과하고, 대퇴부·팔 부위 뼈 등 신체 일부 유골이 대부분이다. 장유량 중앙감식소장은 “포탄에 맞거나 매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실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전투 자료와 참전용사·지역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발굴 장소를 정한 뒤 발굴을 시작한다. 평균 170곳을 발굴해야 1구 정도 유골을 찾는다고 한다. 발굴된 유골은 오동나무 관에 넣고, 태극기로 감싼 뒤 영결식을 하고 중앙감식소로 옮겨진다. 신원 확인을 위해서다. 중앙감식소 전처리실에서 세척을 마치면 조직분석실과 3D스캐너실, 현미경실 등에서 필요한 분석을 한다. 신원이 최종 확인되기 전까지 유골은 13자리의 숫자로 관리된다. 신원이 확인되면 현충원에 안치되지만, 미확인 유골은 종이박스에 담겨 국선제라고 불리는 별도 장소에 보관된다. 1년 내내 섭씨 20도, 습도 40%를 유지하는 국선제의 출입문 비밀번호는 담당자만 알고 있을 정도로 보안 속에 유지되고 있다. 유골 박스를 땅에 놓는 것도 금기시된다. 국선제엔 6300여 구의 유해가 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미국의 ‘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사령부(JPAC)’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이 단장은 “전 세계에서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감식하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뿐”이라며 “9월에는 베트남에서 기술 전수를 받기 위해 방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유골에서 채취한 유전자(DNA)와 비교할 수 있는 샘플이 부족한 점이다. 15년 동안 8000구 이상의 유해를 발굴하고도 107명의 신원 확인에 그친 것도 그 때문이다.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선 전사자의 8촌 이내 유가족 DNA가 필수다. 유전자를 제공하면 군병원에서 무료 건강검진도 해 주지만 참여율은 낮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도 DNA를 제공했다고 한다.



 이 단장은 “유해 발굴 사업은 13만여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찾는 호국보훈 사업”이라며 “마지막 한 분을 찾을 때까지 우리에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투 현장을 증언해 주실 분들의 평균 나이가 84세여서 앞으로 5년밖에 시간이 없다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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