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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구석구석 치안 지도 … 70일 된 막내 여경의 도전

중앙일보 2015.06.24 00:38 종합 20면 지면보기
자신이 그린 치안지도를 설명하고 있는 김선희 순경.
부산시 동구 초량동의 A찜질방. 부산역 인근의 유일한 찜질방이어서 늘 손님들로 북적이지만 좀도둑이 옷장을 털거나 수면 중인 손님의 휴대전화 등을 훔쳐가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했다. 도난사건이 한 달에 10건이 넘을 때도 있었다.


부산 초량지구대 김선희 순경

 하지만 지난 2월 새내기 여순경이 부임하면서 좀도둑은 자취를 감췄다. 주인공은 지난해 12월 경찰관이 된 김선희(26) 순경. 그가 현장실습을 마치고 첫 근무를 시작한 곳은 부산동부경찰서 초량지구대였다. 관할 구역은 초량2동 3·4통. 이곳의 치안 정보를 수집하는 ‘문안 순찰’이 주임무였다.



 그는 도난사건의 원인을 알기 위해 A찜질방을 찾았다. 현장을 둘러본 뒤 낡은 옷장이 도난의 한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찜질방 업주를 만났다. 그러곤 “옷장을 새 걸로 바꾸면 도난이 줄고 손님도 좋아할 것”이라고 설득했다.



업주는 고민 끝에 지난 4월 드라이버로 쉽게 열리던 옷장을 특수키가 달린 신형으로 교체했다. 수면실에 두던 휴대전화 충전기는 카운터로 옮겼다. 그 결과 도난 사건이 두 달에 한 건만 발생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손님의 부주의 때문이었다. 찜질방 업주는 “신임 경찰관의 제안으로 도난 사건이 줄어 영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좋아했다.



 김 순경은 지구대 생활 70일 동안 겪은 이 같은 이야기를 UCC(User Created Contents)로 만들어 ‘우리 동네 바로 알기’ 경진대회에 냈다. 올해 처음인 이 대회는 전국의 지구대와 파출소 경찰관이 지역 사정을 꼼꼼히 파악하자는 취지로 열렸다. 김 순경은 전국 17개 지방경찰청 대표로 올라온 작품 중 최우수상을 받았다.



 김 순경은 영상에서 자신을 ‘70·70·700’이라고 소개했다. 숫자의 의미를 묻는 심사위원에게는 “초량지구대에서 70일 동안 근무했고, 70회의 도보 순찰을 했으며, 그동안 700명의 주민을 만났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맡은 지역의 치안정보를 손으로 그린 지도로 설명했다.



 김 순경이 만든 지도에는 동네 주민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다. 교통사고 사례부터 주민들끼리 민사소송 등 다양하다. “늦은 시간에도 순찰해 달라” “외국인 부부가 자주 싸우니 살펴봐 달라” 등 민원도 적잖다. 범죄 우려 지역도 표시돼 있다. 그는 이 지도를 보고 우범 지역을 한번 더 순찰하곤 한다.



 그는 “순찰을 돌 때마다 치안과 민원 정보가 업데이트된다”며 “언젠가 들어올 후배 경찰관에게 물려주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부경대 4학년 재학 중 경찰관 시험에 합격해 곧바로 부임한 그는 졸업 학점이 몇 학점 남아 지금도 쉬는 날엔 대학에서 학과 공부를 한다.



 ‘초량 막내’라는 별명이 붙은 김 순경은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듣는 걸 좋아해 경찰관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며 “어느 집은 숟가락이 몇 개고 골목길엔 뭐가 있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으면 동네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성섭 초량지구대장은 “무슨 일이든 앞장서는 김 순경이 동네 치안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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