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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술 잘 빚던 남촌 … 이색맥주 찾는 청춘들 몰린다

중앙일보 2015.06.24 00:34 종합 20면 지면보기
이태원의 ‘길맥(길거리 맥주)’ 문화는 골목 모습을 크게 바꿔놨다. 지난 19일 경리단길 ‘더바틀샵’에서 시민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사진 용산구청]


북병남주(北餠南酒). ‘북촌은 떡을, 남촌은 술을 잘 빚는다’는 옛말이다. 여기에서 남촌은 서울 남산 아래, 지금의 이태원 일대를 가리킨다. 조선시대 역참(驛站)이 있던 이곳엔 관리나 과객에게 탁주를 파는 주막들이 널리 형성됐다고 한다.

이태원 ③ 수제맥주 골목



 지금 이곳을 채우고 있는 건 구수한 누룩 냄새 대신 ‘수제 맥주’의 향기다. 경리단길과 해방촌을 중심으로 자리 잡은 개성있는 맥주집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은다. ‘더 부스’ ‘크래프트 웍스’ ‘맥파이’ 등은 이태원에 수제 맥주 열풍을 불러 일으킨 삼총사로 꼽힌다. 이들 가게는 경리단길 초입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지난 19일 오후 경리단 골목은 ‘메르스 여파’도 비켜난 듯 보였다. 길맥(길거리 맥주)을 즐기는 외국인 손님들로 북적였다. 미국인 케니 디아즈(31)는 “서울에서 제대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맥주 한 잔을 권했다. 더 부스는 올 여름 ‘대동강 페일 에일(Pale Ale)’이란 맥주를 내놓았다. 손님들은 길고 복잡한 이름 대신 그냥 ‘대동강맥주’라고 부른다.



 이 가게가 대동강맥주를 팔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더 부스의 공동 창업자는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출신인 다니엘 튜더(33). 그는 지난 2012년 “한국 맥주가 북한의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없다”는 기사를 써 화제를 일으켰다. 튜더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신메뉴 개발에 나섰다고 한다. 더 부스의 양성후(29) 사장은 “덴마크의 유명 맥주 브랜드인 미켈러사와 합작 개발한 제품”이라며 “부드러운 거품 위로 올라오는 소나무 향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맥주의 힘은 맥주집의 젊은 사장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제조법으로 직접 소량 생산하는 에일(Ale) 맥주에서 나온다. 그동안 국내 맥주 시장을 주도한 건 라거(Lager) 맥주였다. 효모를 맥주통 아래쪽에서 발효(하면발효)시켜 만든 라거는 황금색 빛깔에 톡 쏘는 탄산으로 청량감을 준다. 반면 에일은 맥주통 위쪽에서 효모를 발효(상면발효)시켜 깊은 향을 풍기고 다양한 맛을 낸다.



 수제맥주 전문가인 윤정훈(44) 플래티넘맥주 이사는 “최근 이태원에서 에일 맥주가 급부상하고 있는 배경엔 라거 맥주 일색인 국내 맥주 시장에 싫증을 느끼며 개성있는 맥주 맛을 찾는 젊은층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에일 맥주는 쓴 맛이 강하고 알콜 도수도 높은 편이다. 술을 잘 못하는 사람은 약간의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에겐 목 넘김이 부드러운 과일향 맥주가 제격이다. 해방촌 ‘리브로’에서 파는 수박맥주는 맛과 향이 수박맛 아이스크림에 가까워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벨기에 수도원의 전통 방식으로 양조한 수도원맥주(경리단길 ‘벨지’)는 묵직한 맛에 향이 강렬해 와인에 가깝다는 평이다.



 시원한 맥주에 짭쪼롬한 안주가 빠질 수 없다. 해방촌길 끄트머리에 있는 ‘헤어오브더독’의 감자튀김은 북아프리카에서 공수해온 매운 하리사 소스를 얹어 맛이 독특하다. 김미정(35·여) 대표는 “청량감이 뛰어난 태평양맥주와 잘 어울리는 메뉴”라고 소개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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