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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출판권력 20년 독과점, 문학정신 황폐화 초래

중앙일보 2015.06.24 00:17 종합 22면 지면보기
임우기
작가 신경숙에 대한 표절 시비가 오늘의 한국문학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긍정적인 징후는 기대난망으로 보인다. 그 이유인즉 문단권력들의 침묵은 계속되고, 오래된 구태를 날카로운 필봉들이 아무리 찔러댄다한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


① ‘침묵의 카르텔’을 깨라

 이번 신경숙의 표절 시비 문제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비는 물론 문학과지성사와 문학동네 같은 유명 문학출판사들이 독과점적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문학 출판권력의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살펴야 할 듯하다. 기억나는 대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누가 표절하였다거나 ‘혼성모방’이란 해괴한 말을 유행시킨 이인화의 소설, 한국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황석영 등 비근한 사례들에서 보듯이 유독 1990년대 이래 표절 시비는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드러난 한 면일 뿐, 이 문제를 깊이 살펴보면, 지금 한국문학의 속내가 문학 특유의 생명력이 사라진 채 갈 길을 잃고 둥둥 떠다니는 빙산 모양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특히 지난 20여 년간 왜 한국문학에서 이런 표절 시비가 반복되는가라는 문제를 근본적인 성찰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일이다. 대하소설 『임꺽정』과 『토지』를 민족의 풍요롭고도 고유한 자산으로 안긴 벽초 홍명희와 박경리 선생, 민중적인 주제의식과 문체의식을 견지하고 발전시킨 이문구 선생….



 우리 근현대문학사의 빛나는 별들은 일본의 주요 작가들을 존중하면서도, 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루쉰 등 러시아와 중국 문학 전통에서 자신들이 닮고 싶은 이상적인 별자리를 찾았다. 그것은 한국문학의 아름다운 이상과 이념을 아로새긴 빛나는 성좌(星座)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기도 했다.



 지금 한국문학의 소중한 작가 신경숙이 일본의 극우적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시시비비가 지닌 깊은 뜻은 무언가. 이 무비판적 표절과 모방이 만연된 한국문학의 실태를 통해 한국문학 정신의 심각한 결손이나 황폐를 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문제는 한국의 문학독자가 대거 일본문학에 경도되어 있는 작금의 출판계 상황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작가 신경숙의 표절 시비의 바탕엔 문학 정신의 황폐를 가져온 병인(病因)으로 문학출판의 구조적 모순이 깔려있다. 문학과지성사와 문학동네가 키운 작가를 마치 차례가 정해진 듯 창비사가 ‘차지하는’ 구조. 작가만 탓할 게 아니라 문학 출판권력의 독과점적 구조가 한국문학의 민주적 정신의 풍요와 다양성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물임을 보여준 한 뚜렷한 예이다.



 거대 창비사와 한국작가회의라는 진보조직의 실질적 수장인 비평가 백낙청 선생의 리얼리즘 정신은 과연 무엇인가. 리얼리즘의 갱신을 외치면서도 한편으론 독과점적 상업주의 문학체제에 순응한다면, 그러한 리얼리즘 문학 이념은 결국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자본주의적 리얼리즘으로의 퇴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민주적 문학으로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 이 괴이쩍고 조롱 같은 침묵이 계속되는 한, 한국문학의 자본과 권력에의 종속과 결탁은 절망과 함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중임이 불 보듯 뻔하다.



임우기 문학평론가









◆임우기=1956년 대전 출생. 충남대 독문학과 졸업 후 고려대 독문과 대학원에서 수학. 85년 ‘세속적 일상에의 반추’(김원우론)로 비평활동 시작. 문예지 ‘문학과 사회’ 창간 편집 동인과 편집장 역임. 현재 솔출판사 대표. 저서 『그늘에 대하여』 『길 위의 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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