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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6·25 참전 미군용사의 소원

중앙일보 2015.06.24 00:02 종합 29면 지면보기
찰스 랭걸
미국 하원의원
나는 『그리고 그날 이후 내 인생에서 더 나쁜 날은 없었다: 할렘의 거리에서 의사당의 홀까지 (And I Haven’t Had a Bad Day Since : From the Streets of Harlem to the Halls of Congress)』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썼다. 책 제목에 내 진심이 담겨 있다. ‘그날’은 한국전쟁에서 내가 거의 죽을 뻔한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 육군에 입대해 1948년부터 52년까지 복무했다. 나는 전원 흑인들로 구성된 제2보병사단의 제503야전포병연대에서 작전을 담당했다. 1950년 10월 중국이 압록강을 넘어 한국전쟁에 개입했다. 11월 말, 유엔군이 압록강 지역에서 철수하는 가운데 우리 부대는 대대적인 전투에 휘말렸다.



 미8군이 이미 남쪽으로 34㎞ 떨어져 있는 평남 순천으로 후퇴한 상황에서 제2보병사단은 군우리 근처에 포진했다. 11월 29일 밤. 중국 병사들이 우리 부대를 슬금슬금 둘러싸며 공격했다. 30일 밤, 순차적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제2보병사단에 떨어졌다. 하지만 제503야전포병연대는 거의 마지막으로 철수하라는 지침 때문에 공군이 엄호하는 낮이 아니라 밤에 이동해야 했다. 영하의 날씨에 철군하던 나는 등에 포탄 파편을 맞아 부상을 입었다. 폭발로 말미암아 배수로로 내동댕이쳐진 나는 살려달라고 간절히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때 나는 중국 병사들이 시신을 딛고 우리 쪽으로 걸어 올라오는 것을 봤다. 중국 병사들을 피해 도주할 길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부대 다른 병사들도 나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일병에 불과했지만 결국 40명의 병사를 이끌고 산을 넘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온 것이다. 그때의 공을 인정받아 나는 퍼플하트 훈장, 브론즈스타 훈장과 배틀스타 3개를 받았다.



 1952년 나는 중사로 명예제대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결과 내 인생은 참 많이 달라졌다. 우리 대대에서는 거의 절반이 전투 중에 사망했다. 미군 중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군인이 5만 명 이상이다. 하지만 나는 살아서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행운을 누렸다. ‘복원병 원호법(GI Bill)’의 수혜자가 돼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로스쿨까지 갈 수 있었다. 정계에 진출해 뉴욕주 하원의원을 거쳐 71년에는 할렘 사람들을 대표하는 미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지난 44년 동안 나는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웠다. 그동안 나는 한·미 양국에서 민주주의가 전진하는 것을 목격하는 큰 기쁨을 맛보았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가 제4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한민국에서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 선출됐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위협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연기돼 나는 낙심했다. 하지만 나는 박 대통령의 지도력과 한국민의 불굴의 정신이 이 힘든 시기를 이겨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참전용사로서 나는, 대한민국이 잿더미가 된 전화(戰禍)를 극복하고 세계의 주요 국가, 미국의 6대 무역 파트너 국가로 부상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은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중 하나다. 한국은 베트남전·걸프전·이라크전·아프가니스탄전 기간에 미국을 지원했다. 병력을 파견하기도 했다. 또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에도 참가했다. 한국계 미국인들의 근면성과 성공은 다른 미국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전쟁 65주년과 광복 70주년을 맞아 나는 미 하원의원으로서 한·미 혈맹 강화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시 다짐할 수 있게 돼 기쁘다.



 되돌아보면 비무장지대(DMZ) 건너편 북한땅에 있는 군우리에서 싸웠던 게 거의 65년 전 일이다. 하지만 한반도가 아직 분단돼 있고 여전히 남북 이산가족이 만날 길이 없다는 게 가슴 아프다. 한시바삐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이산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북한 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북한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미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산가족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없다. 한반도 분단 때문에 수백만 명이 이산가족이 됐다. 그중 일부는 미국 시민이다. 나는 최근 영화 ‘국제시장’의 미 의회 상연을 추진했다. 한국전쟁이 갈라놓은 가족들이 겪은 역경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기록적인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열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이산가족 상봉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로서 나는 생전에 통일한국을 보고 싶다. 통일의 그날까지 나는 적어도 이산가족 상봉에 도움을 주고 싶다. 이산가족들의 마지막 소망은 생전에 38선 이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65년 전 거의 죽을 뻔했던 나 또한 그 소망을 공유한다.



찰스 랭걸 미국 하원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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