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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신경숙 ‘표절 논란’ 반갑다

중앙일보 2015.06.24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우리 문단의 표절 관행을 다룬 소설 『표절』(김주욱 작, 나남)은 대학 강사인 ‘나’가 소설가 지망생 Q와 중견작가 G의 ‘표절 의혹’에 개입하며 시작된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중견소설가 G가 Q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최종심에서 심사하고 심사평까지 썼는데, 나중에 보니 Q의 작품을 자신의 장편소설에 도용하여 발표했다. 더구나 Q는 이 작품을 개작해 장편으로 만들어놓았다. Q는 자신의 작품이 발표된다면 되레 자신이 중견소설가 G의 작품을 표절한 꼴이 된다…. (p.18)



 이에 ‘나’는 Q를 이렇게 위로한다.



 “우리 문단은 표절에 관대해. 권위를 앞세우는 어느 문학상은 표절 시비가 있었던 심사위원이 표절 논란이 된 작품을 심사해서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p.19)



 이 소설은 작가가 과거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작품이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승우 작가의 장편 『지상의 노래』(민음사)의 한 장으로 표절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집필한 자전적 작품이다. 『지상의 노래』는 2013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월간지 ‘신동아’(2013년 3월호)가 표절 의혹을 보도했었다. 이에 이 작가는 단편소설 『하지 않은 일』(문예중앙, 2013년 가을호)을 통해 이를 반박했다.



 소설가들 간에 표절 논란을 소설로 주고받았던 이 일은 우리 문단의 표절 논란 중 가장 격조 있었고 표절에 관한 건설적 논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논란은 멈췄다. 논란이 발전하려면 생산적 반론과 재반론, 다방면의 검증과 반성을 거쳐야 한다. 한데 모두 침묵했다. 문단도, ‘신동아’를 제외한 언론도. ‘침묵’은 논란의 생산적 발전을 무력화한다.



 문단 대가들과 관련된 표절 의혹은 지금도 만 갈래다. 신경숙 작가의 경우도 오래된 의혹 하나가 툭 불거진 것이다. 공모전을 통해 등단하는 문단 구조상 몇 년씩 작품을 응모해야 하는 소설가 지망생들 사이에 표절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상존한다. 실제로 그런 의심스러운 상황은 일어난다. 한데 의혹을 제기해도 결과는 흐지부지다. ‘침묵과 무시’는 문단이 ‘표절 논란’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오랜만에 스타작가의 표절 논란이 차라리 반가운 건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제대로 짚어볼 기회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하나 논란의 전개 방향은 불건강하다. 혹자는 ‘문화사적 충격’이라며 마치 ‘그녀만의 일’인 양 시침 뚝 따고 문학적·지적 논쟁 대신 ‘비난’ ‘마녀사냥’ 같은 야만이 지배한다. 검찰 고발도 있었다. 한데 ‘모방’은 문학의 모태다. 관건은 베끼기가 아닌 모방의 창조적 승화다. 문학에서의 모방과 창작의 기준은 애매하다. 이는 문학계 집단 지성에 의한 합의로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다. 한데 문단이 침묵하는 사이 자칫 사법부가 문학의 표절 기준을 가를지도 모를 비문명적 사태 앞에 서게 됐다. 이게 우리 문화 지성의 수준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었다. “한국어를 쓰면서 전업작가로 먹고살 수 있다는 희망은 버려라.” 실제 작품 활동을 하다 보면 한국어 시장이 얼마나 작은지 실감하게 된다. 독자들은 한국문학을 사지 않는다. 시장이 작아서 한국문학이 퇴행한 것인지 퇴행의 결과로 시장이 더 작아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시장이 작다 보니 문학시장엔 일부 힘센 출판사가 스타작가 마케팅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독식하는 ‘문학 권력’의 정글 같은 생태계가 형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문학은 악순환한다. 하나 오히려 작아서 우리 문학 수준을 훨씬 더 끌어올려야 한다. 다른 언어권에서 모방하고 싶어질 만큼. 신 작가의 애매한 표절 인정이 또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녀만 희생양으로 바치고 문단은 다시 무구하게 침묵의 평화를 갈구한다면 우리 문학에 미래는 없다. 이젠 문단도 독자도 한국문학을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지구상에서 한 줌도 안 되는 한국어가 세계를 울리는 언어가 되는 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밖에 없기에….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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