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야기가 있는 음식] 와플, 드류 베리모어의 첫 키스보다 달콤할지 몰라요

중앙일보 2015.06.24 00:02 강남통신 8면 지면보기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 중에서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의 와플입니다.





이형수 롯데호텔서울 라세느 셰프가 재연한 영화 속 와플. 이 셰프는 “와플에 버터를 많이 넣으면 겉은 바삭해지고 맛은 더 고소하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와플은 씹을수록 고소한 버터 향이 입안에 퍼집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 주인공 루시처럼 달콤한 시럽을 잔뜩 뿌려 먹으면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와플은 아이스크림·생크림·과일·견과류 등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곁들이는 재료에 따라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매일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는 루시와도 닮았습니다.



#1 헨리는 커피를 마시러 식당을 찾았다. 자리를 잡고 앉은 헨리는 우연히 루시를 발견하고 첫눈에 반해 한참을 바라본다. 이때 직원 수가 루시에게 와플을 가져다준다. 루시는 직원이 준 와플을 잘라 산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따뜻한 커피를 넣어 화산을 만든다. 이 과정을 지켜본 헨리는 살며시 미소 짓는다.

루시: 아줌마, 머리가 예쁘네요.

수: 마할로(고마워). 루시.



영화 속 루시는 매번 똑같은 메뉴인 와플을 시키지만 먹는 방법은 다르다. 칼로 와플을 잘라 화산이나 집모양으로 만든다. 와플로 만든 집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데 실패해 고민하고 있는 루시에게
헨리가 다가와 방법을 알려준다.
#2 다음 주 다시 가게를 찾은 헨리. 지난번에 인사를 나눈 헨리는 식당 직원 릭과도 반갑게 인사한다. 그리고 변함없이 창가에 앉아있는 루시를 발견한다.

릭: 안녕, 루시.

루시: 안녕, 릭.

(루시는 와플로 세모난 지붕의 작은 집을 만든다. 그러나 문이 계속 안으로 밀려들어 가 실패하기를 반복한다. 이 모습을 지켜본 헨리가 루시에게 다가간다.)

헨리: 저기요. 이 방법은 어때요? (이쑤시개로 와플을 고정하는 헨리) 경첩을 다는 거죠.

루시: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헨리: 가까이에서 봐서 그래요.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루시: 맞아요. 때로는 다른 시선이 필요해요.

헨리: 새로운 시각은 도움이 되죠.

루시: 난 루시예요.

헨리: 난 헨리 로스예요.

루시: 반가워요.

헨리: 저도요. 집이 예쁘네요. 잘해봐요.(자신의 자리로 돌아온다)

루시: 저기요. 혼자 온 것 같은데 합석하실래요?

헨리: 저야 좋죠. 괜찮으시다면요.

루시: 괜찮아요. 건축가세요?

헨리: 물고기와 관련된 일을 해요.

(둘은 계속 물고기 관련 이야기를 나눈다. 식당 사람들은 두 사람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아이스크림·과일·생크림·시럽 등으로 다양한 맛의 변주

담백한 브뤼셀식, 토핑 없이도 달달한 리에주식 두 종류

영화는 ‘하루만 기억하는 여자’와 바람둥이의 사랑 그려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는 루시(드류 베리모어)와 그녀를 사랑하는 바람둥이 헨리(아담 샌들러)의 사랑 이야기다. 이들의 연애는 평범한 연인들과는 다르다. 루시가 1년 전 일어난 교통사고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기억이 교통사고 당시에 멈춰버린 루시는 하루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다음 날이 되면 전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헨리는 우연히 식당에서 만난 루시에게 반해 데이트를 신청한다. 데이트 당일 헨리는 루시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지만 루시는 그를 파렴치한 취급한다. 결국 루시의 지인들은 헨리에게 루시의 병을 알려준다. 평소 진실한 사랑을 믿지 않고 하룻밤에 만족하던 헨리는 시간이 갈수록 루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영화에서 루시는 매주 일요일 같은 식당, 같은 자리에 같은 옷을 입고 앉아 브런치를 즐긴다. 브런치 메뉴는 따뜻한 커피와 와플. 매번 동그란 와플을 받아들지만 어느 날은 와플로 화산을, 또 다른 날은 작은 집을 만든다. 화산 안에 커피잔을 넣어 연기가 뿜어져 나오도록 한다거나 집에 달린 회전문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만든다. 영화는 매일 다르게 와플을 즐기는 루시를 통해 와플의 매력을 보여준다. 와플은 루시가 기분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바꾸듯 굽는 방식이나 곁들이는 음식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영화에서 루시는 매주 같은 식당, 같은 자리에 앉아 브런치로 와플과 커피를 즐긴다.
와플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루시와 헨리




 와플은 크게 브뤼셀식과 리에주식으로 나뉜다. 두 이름 모두 와플이 시작된 벨기에의 지명이다. 먼저 브뤼셀 와플은 발효하지 않은 묽은 반죽을 바삭하게 구워내는데 달콤함이 적어 설탕을 뿌리거나 과일·생크림·아이스크림 같은 토핑을 올린다. 미국식은 브뤼셀 와플과 비슷한데 베이킹파우더를 넣어 더 가벼운 게 특징이다. 리에주식은 반죽에 펄슈거를 넣는다. 『작은 빵집이 맛있다』의 저자 김혜준씨는 “리에주 와플은 반죽이 구워지며 펄슈거가 자연스럽게 녹아 표면을 캐러멜화시켜준다. 특히 씹을수록 펄슈거의 단맛이 입안에 퍼지고 버터 풍미가 더해지는 게 특징이다”라고 설명했다. 펄슈거 특유의 단맛 때문에 별다른 토핑을 올리지 않고 와플 그대로의 맛을 즐긴다.



 한국에서도 와플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1980년대 한국에서 와플은 비교적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었다. 노점에서 밀가루·달걀·우유를 넣어 만든 반죽을 와플 틀에 넣고 구운 후 사과잼과 버터를 발라 반으로 접어 냈다. 89년 청파동 숙명여대 앞에 문을 연 ‘와플하우스’는 길거리 음식이던 와플을 가게 안에서 팔기 시작했다. 밀가루·달걀·우유로 만든 반죽을 와플 틀에 넣고 구운 후 잼과 버터를 발라 반으로 접어 냈다. 가격도 1000원으로 비교적 저렴했다.



 와플의 위상이 높아진 건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브런치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태원·청담동을 중심으로 브런치 카페가 늘었고 이곳에서 와플을 팔기 시작하면서 와플의 가격은 1만원 안팎으로 훌쩍 뛰었다. 와플의 맛과 모양도 화려해졌다. 잘 구워낸 와플에 생크림·과일·견과류·잼·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토핑을 함께 내기 시작했다. 다양한 토핑이 올려진 와플은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었다.



 길거리 와플이나 브런치 카페의 와플 모두 브뤼셀 와플에 속한다. 리에주 와플은 2009년 무렵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와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커졌다. 2009년 벨기에 출신 두 형제가 여의도에 작은 와플 가게 ‘빠뜨릭스 와플’(당시 마제스티)을 열고 리에주식 와플을 선보였다. 사람들은 펄슈거가 씹히며 달콤하면서도 쫄깃한 맛을 내는 리에주 와플에 환호했다. 와플 자체의 맛을 즐길 수 있고 들고 다니며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와플번트·벨코와플·림벅와플·와플베르비에 등 리에주 와플 전문점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가격도 2000~2500원 정도로 브런치용 와플과 비교하면 저렴하다.



 모양이나 맛은 달라졌지만 와플의 인기는 꾸준하다. 특급호텔도 조식이나 애프터눈티 세트 메뉴에 와플을 대부분 포함한다. 이형수 롯데호텔서울 라세느 셰프는 “와플은 브런치나 디저트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찾는 사람이 꾸준한 편이다. 특히 조식 메뉴엔 손님 취향에 따라 곁들여 먹을 수 있도록 다양한 토핑을 준비한다”고 설명했다.



 홈베이킹이 인기를 끌면서 몇 년 새 집에서 와플을 만드는 사람도 늘고 있다. 오븐이 필요한 다른 빵과 달리 와플은 격자무늬 와플팬이 있어야 한다. 팬 가격은 2만원부터 시작해 비교적 저렴한데다 반죽을 팬에 넣고 굽기만 하면 돼 사용이 간편하다. 대신 반죽은 가볍게 섞어야 구운 후 질기지 않다. 이 셰프는 “갓 구워낸 빵이 맛있듯 와플 역시 따뜻하게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버터를 많이 넣을수록 버터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더해질 뿐 아니라 바삭함도 오래간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독자의 이야기



늦깎이 취준생 시절

불안 달래준 와플 한조각




“녹차 생크림과 에스프레소 크림, 반씩 발라주세요. 시럽은 빼주시고요.”



2003년 겨울, 저는 매일 아침 와플 가게 앞에서 이 말을 외쳤습니다. 그해 12월부터 다음 해 봄까지 나의 마음을 달래준 음식이 바로 와플이었거든요. 와플에 중독됐던 2003년 겨울은 난생처음 자취 생활을 시작했을 때입니다. 당시 제 나이는 28세. 대학 시절부터 꿈꿔온 방송 기자가 되기 위해 잘 다니던 항공사를 박차고 나와 홀로 자취하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하면서도 ‘이미 늦은 게 아닐까’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운 게 과연 잘한 일일까’라는 불안과 후회가 수시로 밀려왔어요. 무직자가 느끼는 괜한 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가시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집 근처 대학 도서관으로 향하는 제 무거운 발걸음이 멈춘 곳은, 와플을 파는 노점상 아저씨 앞이었습니다. 녹차크림, 딸기크림, 에스프레소크림, 치즈크림 등 7가지 크림 중에 2~4가지를 선택하면, 와플에 듬뿍 발라 종이봉투에 담아 건네주셨죠. 따뜻하고 달콤한 와플을 먹으며 도서관으로 가다 보면 어느샌가 마음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한결 잦아들고, 즐거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와플 크림의 맛도 일품이었고요. 눈같이 부드러운 생크림이 너무 달지도 느끼하지도 않고 우유처럼 신선하고 부드러운 풍미가 일품이었습니다. 어느 날 용기를 내서 “이 크림은 어디서 구해오시나요”라고 물으니 “7년 동안 내가 개발한 특허 상품”이라며 “지금은 집도 절도 없지만, 와플로 반드시 성공할 거다”라고 자신감 있게 답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천막 가리개도 없이 초라하게 와플 기계 하나 덩그러니 놓고 장사하던 그 아저씨는 두 달쯤 지나 튼튼한 천막을 세우더니 3개월이 더 지나자 작은 가게를 얻어 장사를 제대로 하시더군요.



 아침 식사 대용으로 즐겨 먹던 와플집이 대박 나고 아저씨가 성공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늦은 공부를 시작하는 나도 왠지 모를 희망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해 언론사 시험에는 또 낙방했지만 기어이 한해 더 공부해 원하는 회사에 합격하는 기쁨을 맛봤습니다. 결혼 후 그토록 간절했던 회사도 그만두고 주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대학로에 나가면 저도 모르게 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와플 가게가 있던 자리에 눈길이 머뭅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 달콤한 위로와 자신감을 주었던 그 크림와플의 향기와 맛이 떠오릅니다.

박서윤(40·성남시 서현동)






▶서울의 와플 맛집



서울에서 유명한 와플 맛집 3곳을 소개합니다.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의 이윤화 대표, 롯데호텔서울 페닌슐라의 세바스티아노 셰프, 『작은 빵집이 맛있다』 김혜준 작가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빠뜨릭스]



“겉은 바삭 속은 쫄깃한 리에주식 와플을 유행시킨 곳

토핑 없이 즐기는 벨기에식 와플의 맛이 특별하다”




○ 특징: 와플의 나라 벨기에 출신 형제가 7년 전 여의도 상가에 문을 연 작은 와플 가게다. 당시 한국 사람들에게 생소한 리에주식 와플(반죽에 펄슈거를 넣고 구운 달콤한 와플로 토핑 없이 그대로 즐김)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여의도역 앞에 2호점이 있다.

○ 가격: 오리지널 벨지안 와플 2100원, 아이스크림 와플 3600원

○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7시30분

○ 전화번호: 02-3775-0608

○ 주소: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112(여의도동 53-11) 상아빌딩 1층

○ 주차: 불가




[닐스야드]



“2008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킨 이태원 대표 맛집

다양한 와플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 특징: 런던의 예쁜 골목 닐스야드를 재연한 톡톡 튀는 인테리어가 눈에 띄는 카페. 2008년에 문을 연 이후 와플 맛집으로 입소문 났다. 대표 와플 맛집답게 플레인·그린티·초콜릿·스트로베리·멀티베리·크림베리치즈 등 와플 종류가 다양하다. 홍대 근처(동교동)에 2호점이 있다.

○ 가격: 플레인 와플 6500원, 초콜릿·멀티베리 와플 각 1만3500원씩

○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1시

○ 전화번호: 02-794-7278

○ 주소: 용산구 이태원로 167(이태원1동 119-19) 2층

○ 주차: 불가




[와플 베르비에]



“맛있는 와플과 커피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와플 가격이 저렴해 가성비가 뛰어나다.”




○ 특징: 와플의 고소한 맛과 커피 향이 잘 어우러진 카페다. 리에주식 와플을 파는데 맛은 좋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해 점심 시간이면 긴 줄이 생긴다. 테라로사·리브레·몽타주 등 유명 스페셜티 커피들을 갖추고 있어 와플과 커피를 함께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 가격: 와플 1800원, 와플+아메리카노 세트 4000원부터

○ 영업시간: 오전 7시30분~오후 8시(와플은 오전 11시부터, 공휴일 휴무)

○ 전화번호: 02-2168-2730

○ 주소: 양천구 목동 917-9 현대41타워 1층

○ 주차: 불가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관련 기사]

빙수에 얽힌 추억이나 나만의 요리팁 보내주세요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