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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왕은 달달 외우지 않아, 어근 하나로 열 단어 안다

중앙일보 2015.06.24 00:01 Week& 7면 지면보기
철자 맞히기 대회 ‘2015 스펠링 비’ 우승자의 암기 비결





지난달 26~28일 미국에서 열린 영어 철자 맞추기 대회인 ‘2015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에서 우승자 반야 시바샹카르가 문제를 맞히고 있다. [사진 윤선생]




‘스펠링비’ 8년 연속 인도계 우승

어휘 생성 원리 알면 여러 단어 이해

모르는 낱말도 어근으로 뜻 유추 가능






지난달 26~28일 미국 워싱턴 D.C 인근 게이로드 내셔널 리조트 앤 컨벤션센터에서 세계 최대 영어 철자 맞히기 대회인 ‘2015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Scripps National Spelling Bee·이하 SNSB)가 열렸다. 이 대회는 만 15세 미만의 학생들이 참가한다.



올해는 미국·캐나다·독일·한국·중국 등 8개 국가에서 1000만 명이 넘게 참가한 예선을 뚫고 최종 279명의 학생이 미국 본선 대회 무대를 밟았다. 대회 참가자들은 “영어 어휘의 어원과 어근을 알고 발음과 철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어 어휘 공부에서 중요한 것은 ‘암기’가 아니라 ‘원리의 이해’라는 것이다. SNSB 참가자들의 영어 공부법을 알아봤다. 



한국 대표로 참가한 정수인양.
SNSB는 올해로 88회를 맞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영어 철자 맞히기 대회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본선 대회는 스포츠전문 방송인 ESPN을 통해 미국 전국에 생방송 된다. 시청자가 9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미국 내에선 인기 있는 대회다. 우승자는 3만 달러의 상금을 받고 백악관에 초청돼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축하도 받는다.



우승자는 NBC 등 미국 유력 방송사 토크쇼에도 출연할 정도로 유명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1965년 우승자인 마이클 커팬은 “SNSB는 학문 분야의 스포츠 축제”라며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굉장히 명예로운 일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올해 우승의 영예는 반야 시바샹카르(13·캔자스)와 고쿨 벤카타찰람(14·미주리) 두 사람에게 돌아갔다. 지난해에 이어 공동 우승이다. 역대 5번째 공동 우승이다. 모두 인도계 학생이다. SNSB에서 인도계의 활약은 유명하다. 2008년 이후 8년 연속 인도계 학생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SNSB는 컴퓨터 기반 시험과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라운드로 치러진다.



출제자가 문제를 내면 참가자는 발음과 어원·뜻·예문 등을 듣고 어휘의 철자를 맞춘다. 무대 위 라운드에서 틀리면 탈락이다. 반야와 고쿨은 결승전에서 총 9번의 라운드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연이은 라운드에도 승자를 가리지 못해 결국 주최 측은 공동 우승을 선언했다.



반야와 고쿨은 우승 소감에서 “영어 어휘에는 패턴이 있다”며 “어원과 어근을 알아두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한 단어가 여러 단어로 활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암기가 아니라 어휘의 생성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자를 알면 다양한 국어 어휘를 활용할 수 있듯이 영어에선 어원과 어근이 중요하다.



반야는 “단어의 어원과 어근을 알아두면 뜻과 발음을 오래 기억할 수 있고 모르는 단어를 만나도 어근을 쪼개 분석해보면 대략 그 뜻을 유추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는 영어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영어는 그리스·스페인·독일·프랑스 등 다양한 언어와 문화권에서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해왔다. 세계 최대 영어사전 출판사인 메리엄-웹스터의 피터 소콜로스키 편집장은 “현대로 올수록 발음은 쉽게 변하였지만 철자는 그대로 쓰는 것들이 많다”며 “미국 성인들도 정확한 철자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컨대, 그리스에 어원을 둔 영어 어휘 중엔 ‘ph’를 프(f)로 발음할 때가 많고, 프랑스에서 유래한 영어 어휘 중엔 단어가 ‘que’로 끝날 때는 크(k)로, ‘gue’는 그(g)로 발음하는 일이 많다. 앤티크(antique·골동품)·테크니크(technique·기법)·플레이그(plague·전염병) 등이 대표적이다. 어원이 프랑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발음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피터 편집장은 “이런 이유로 미국의 많은 초·중학교에서 사전을 교실에 갖다 두고 항상 어휘의 어원과 어근을 확인하도록 교육하는 학교가 많다”고 설명했다.



대회에 참가한 한국 학생들도 어원과 어근을 따지는 패턴 공부법이 “어휘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를 뽑는 국내 스펠링 비에서 우승해 이번 본선 무대를 밟은 정수인(부산 외국인초6)양은 “모르는 단어를 만나면 사전에서 어근을 찾아 확인하고 그 어근에서 파생된 여러 단어를 함께 찾아본다”며 “그러면 사다리 타듯이 여러 단어를 동시에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사이크(psych·정신)라는 단어를 배웠다면 사이컬러지(psychology·심리학)·사이카이어트리(psychiatric·정신의학) 등을 함께 공부하는 식이다.



패턴 공부법은 수준이 올라갈수록 더 빛을 발한다. 올해 우승자인 반야 시바샹카르의 언니 카비아 시바샹카르(콜롬비아대 의학과2)도 2009년 SNSB에서 우승했다.



카비아는 “어려운 의학용어를 무작정 외워서 철자를 정확히 기억하기는 정말 어렵다”며 “어휘의 패턴을 분석하면 복잡한 의학용어도 쉽게 기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대표로 참가했던 정수인양과 오승택(서울 둔촌중3)군은 예선 3라운드에서 탈락해 준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SNSB 한국 대표를 뽑는 국내 스펠링 비는 매해 2월 윤선생이 후원해 열린다.



워싱턴=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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