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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NIE] 탄저균, 수소폭탄급 살상력 가진 생물학 무기

중앙일보 2015.06.24 00:01 Week& 6면 지면보기
미군 탄저균 배달 사고





탄저병을 일으키는 탄저균을 확대해 본 사진. 탄저균이 사람에게 감염되는 경우는 세 가지이다. 상처난 피부를 통해 감염되거나, 공기 중에 떠다니는 탄저균이나 포자를 들이마실 경우, 탄저균에
감염된 가축의 고기를 덜 익혀 먹을 때다. 이중 호흡기 감염은 치사율이 90%에 달한다.




지난달 최악의 배달 사고라 할 수 있는 ‘탄저균 배달 사고’가 발생했다. 살아 있는 탄저균이 한국 내 경기도 오산 미군기지로 배달됐다. 탄저균은 100㎏으로 300만 명을 살상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생물학 무기다. 지난 8일 미국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배달 사고가 난 지역은 한국·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3국과 미국 내 19개 주 등 66곳에 달했다. 미 국방부는 “단순한 배달 사고였다”며 “모두 안전하게 처리됐다”고 밝혔지만 자칫 수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교과서와 언론, 각종 연구자료에 기초해 탄저균과 생물학 무기에 대해 알아봤다.



14세기 유럽 인구 3분의 1 흑사병으로 사망



질병은 크게 고혈압·당뇨·암과 같이 전염되지 않는 비감염성 질병과 독감·결핵·에이즈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는 감염성 질병으로 구분된다.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는 “감염성 질병은 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 모든 미생물이 인체에 해롭지는 않지만 인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특별히 병원체라고 한다”고 설명한다. 질병을 유발하는 미생물은 세균·바이러스·원생동물(단세포동물)·곰팡이 등이 있다.



인류는 이런 미생물이 일으키는 전염병 앞에 수차례 존망의 위기를 겪어왔다. 2세기경 로마 제국에선 천연두가 퍼져 500만 명 이상이 숨졌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페스트)은 75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1918년 발병한 스페인 독감으로 2500만~50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전염병이 한 문명권의 절멸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적도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 문명이었던 잉카·마야·아스테카 제국의 몰락이다. 역사학계에선 당시 유럽인에 의해 전파된 천연두로 이들 문명이 무너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인은 이미 수차례 천연두를 겪으면서 면역력을 갖게 됐지만 잉카·마야·아스테카 제국은 처음 만난 천연두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1521년 에스파냐의 코르테스 군대는 단 300명의 병사만으로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틀란을 점령할 수 있었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오히려 더 증가했다. “교통이 발전하고 사람들 간의 이동이 급증하며 전염병의 전파 속도는 더 빨라졌다 … 진화하고 변종하는 바이러스는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종말 시나리오 중 하나다 … WHO는 21세기를 ‘전염병의 시대’라 규정했다.”(중앙일보 2015년 6월 8일 ‘뉴스 인 뉴스 <270> 세계를 휩쓴 전염병’)



메르스보다 무서운 탄저균 치사율 90%



2001년 미국의 상원의
원 톰 대슐에게 송달
된 탄저균 편지 봉투.
전염병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로 발전했다. 바로 탄저균, 천연두, 페스트, 야토병, 보툴리눔 독소, 바이러스 출혈열 등 세균과 바이러스를 무기화한 생물학 무기다. 생물학 무기는 수십 종에 달한다.



생물학 무기는 여러 측면에서 기존의 재래식 화학무기를 압도한다. 재래식 무기보다 제조비용이 적게 들고 소규모 시설로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극소량으로도 공기와 물 등을 통해 살포하면 광범위한 지역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한 번 살포되면 전염병으로 번져 피해 지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대중의 공포심을 극단까지 자극해 심리전에 활용할 수도 있다. 건물·도로 등 기간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사람만 공격할 수 있다는 점도 무기로서 가치를 높인다.



탄저균은 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준다. 탄저균 100㎏을 저공 비행하며 공기 중에 살포하면 100만~300만 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치사율이 높다. 이는 1메가t의 수소폭탄에 맞먹는 살상 규모다.



분말 형태로도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보관과 이용이 편리하다. 2001년 미국에서 발생했던 우편 테러에 분말화된 탄저균이 사용됐다. 11명이 감염됐고 이 중 5명이 사망했다.



탄저병은 원래 소나 양 등 가축에서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사람이 탄저병에 걸리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탄저균이 상처 난 피부로 침투하거나, 공중에 떠다니는 탄저균이나 포자를 들이마실 경우, 탄저균에 감염된 가축의 고기를 덜 익혀 먹을 때다.



호흡기 감염의 경우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치사율은 90%에 달한다.



14세기 유럽, 벨기에
토리네이시(市)의 흑
사병 대유행을 그린
그림. [사진 디아스
포라박물관]
생물학 무기는 인류의 전쟁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졌다. 고대 국가 간의 전쟁에선 식수로 사용되는 우물에 독극물을 풀어 적군에 타격을 입혔다. 현대적 의미의 세균전은 중세시대부터 시도됐다. “1347년 흑해 연안의 카파 성을 공격하던 몽골 병사가 투석기를 이용, 흑사병으로 숨진 시신을 성 안으로 던졌다.



인류 최초의 세균전, 더 정확하게는 ‘생물학전’의 시초다.”(중앙선데이 2014년 5월 25일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몽골군, 인류 첫 세균전…흑사병 시신 투척해 성 함락’)



생물학 무기가 국가적 차원의 전략 무기로 성장한 것은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다. 대표적인 예로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은 생체실험부대인 731부대를 창설하고 탄저균·천연두·페스트 등 생물학 무기를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다. 바로 ‘마루타’다. 일본뿐 아니라 독일, 구소련, 영국, 미국 등 강대국은 생물학 무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영국은 1942년 스코틀랜드 연안의 그뤼나드 섬에서 탄저균 폭탄 실험을 실행하기도 했다. 이후 베트남 전쟁과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생물학 무기는 각국의 전략 무기로 자리매김했다.



테러에 악용되기도 … 생물학 무기 폐기 목소리



생물학 무기는 엄청난 파괴력뿐 아니라 비인도적 측면 때문에 국제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됐다. 2013년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사이 내전에서 정부군에 의한 생물학 무기 사용이 의심되기도 했다.



당시 정부군의 로켓 공격으로 1300여 명이 사망하고, 3600여 명이 다쳤다. “목격자에 따르면 병원에 옮겨진 희생자들은 호흡 곤란과 경직·구토 등 독성가스에 중독된 증상을 보였다. 공격 지역이 민간인 거주지역이라 사망자 중 어린이와 여성이 상당수 포함됐다.”(중앙일보 2013년 8월 22일 ‘시리아 정부군, 화학무기 로켓 공격…1300명 이상 사망’)



언론은 이번 탄저균 배달 사고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미 국방부는 살균 처리 과정의 문제는 있었지만 사람의 실수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균 농도가 낮아 생명에 위협이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모두 말장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불행 중 다행’의 문제일 수는 있어도 불행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중앙일보 2015년 6월 13일 ‘미국의 위험물질 관리, 믿어도 되나’) 실제 79년 구소련에선 관리 소홀로 탄저균이 유출돼 수많은 가축이 죽고 70여 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했다. 생물학 무기의 폐기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라크 공군기가 탄
저균을 공중살포하
는 모의실험 장면.
최근 더 큰 위험은 바이오 테러다. 84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생했던 신흥종교집단에 의한 살모넬라균 살포 사건, 95년 일본의 사이비 종교단체인 옴진리교가 저지른 사린 가스 테러,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탄저균 우편 테러까지 생물학 무기가 점점 테러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13년에도 독극물인 리신이 담긴 우편물이 미국 백악관으로 배달되기도 했다. “테러리스트가 천연두 바이러스, 탄저균, 또는 페스트균 등 미생물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면 원자폭탄보다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신속한 진단과 방어 수단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질병 탐정’으로 불리는 역학 전문가들, 그리고 새로운 발병 상황을 끊임없이 조사하고 현지에서 진단과 치료책을 모색하는 과학자들의 국제적 네트워크가 확장돼야 한다.”(뉴스위크 2009년 5월 13일 ‘[World View] 신종 플루와 생물무기의 닮은꼴’)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자문=서울 동북고 강현식 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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