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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메르스 공포에 다시 도진 공황장애

중앙일보 2015.06.23 07:12 강남통신 6면 지면보기


불안은 억누를수록 튕겨 나와

일도 손에 안 잡힌다는 40대 남성



Q (기침 소리에도 떠는 직장인) 저는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광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30대를 치열하게 경쟁하며 일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지난해 불면증과 공황 증상이 생겼습니다. 병원에서 치료받고 증상이 거의 없어져 올해는 거의 불편함 없이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면서 바이러스 공포에 다시 공황 증상이 생겼습니다. 머리로는 조심하면 되고 혹시 걸려도 잘 치료받으면 큰 문제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불안한 마음이 계속 저를 괴롭힙니다. 외부 고객이나 내부 직원들과 회의를 할 때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불안한 마음에 집중이 안 됩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고등학교 딸도 휴교 조치 이후 집에 와 있는데 내일부터 학교에서 다시 등교라고 합니다. 제가 너무 걱정하니 딸 아이가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고 저를 위로해 주더군요.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바이러스 불안을 잘 다스리는 방법이 있을까요.



A (감성 바캉스 추천하는 윤 교수) 바이러스 공포가 개인의 삶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사회경제적 활동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6월은 한 해의 전반기를 잘 마감하고, 새로운 힘을 재충전할 바캉스 계획을 짜는, 한 해의 연결 허브 같은 기간인데 바이러스 공포에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필요합니다. 공포는 위험을 인지했을 때 나오는 감정 반응이죠. 공포가 있어야 위기관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공포는 도움이 안 됩니다. 마음을 지치게 하고 심하면 불면증, 공황장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과도한 불안신호가 생길 때 현대인들이 주로 쓰는 마음 관리법이 ‘조정’(control)이란 전략입니다. 뇌의 에너지를 태워 불안을 찍어 누르고, 긍정적인 마음을 만드는 것입니다. 힘이 충분할 때는 효율적이지만 반복적으로 사용해 뇌가 지치게 되면 잘 먹히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불안이란 녀석은 힘으로 찍어 누를수록 블랙홀처럼 에너지를 빨아들여 더 용수철처럼 튕겨 나오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힘으로만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전염병이 유행하면 마을 사람의 상당수를 속수무책 하늘나라로 떠나 보내야만 했습니다. 조정만으로 불안을 극복하기엔 인간의 힘이 너무 약했죠. 그래서 ‘수용’(acceptance) 이란 심리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좌절과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야지’하는 역설적인 긍정성을 확보했던 것이죠. 요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유행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자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면 긍정 에너지 생겨



불안하다면 수용이란 불안 대처 기술을 함께 쓰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수용은 그냥 내 상황을 묵묵히 바라보는 겁니다. 한 발짝 물러나 내 삶을 바라보면 그렇게 힘들고 불안했던 현실이 조금은 살 만한 것으로 여겨지며 긍정 에너지가 차오릅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것이 다 이런 거구나’하는 심리적 성숙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따뜻한 만남,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는 운동, 문화 콘텐트와의 공감 등을 통해 사람은 지친 뇌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노래 가사를 하나 읽어 드리겠습니다. 가사가 매우 상징적인데요, 상징적인 가사들은 뇌의 논리 컴퓨터를 잠시 멈추고 마음으로, 그냥 보고 느끼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태양이 내 얼굴을 비추고, 별들은 내 꿈을 채우고, 난 시공간의 여행자, 오래된 목적지를 향해 / 홀린 듯 길을 따라 노란 사막의 강줄기, 6월의 먼지가 떠오를 때 카슈미르를 지나서 / 그 길을 떠날 때 기다려, 쓰러지면 널 데려갈게, 그곳에 데려갈게, 그곳에 데려갈게’



 레드 제플린이란 록그룹이 부른 ‘카슈미르’라는 곡입니다. 인터넷에서 2007년 공연실황을 찾을 수 있습니다. 1969년에 데뷔해 80년에 해체한 그룹인데, 이미 환갑이 넘은 멤버들이 모였던 공연입니다. 하지만 열정과 깊이가 전성기 이상의 느낌을 줍니다.



 노래 제목인 카슈미르는 지역명입니다. 인도와 중국, 파키스탄의 경계에 있는 산악 지대죠. 몽롱한 가사처럼 멜로디도 신비로우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노래입니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뇌』라는 책을 쓸 때 카슈미르를 들었다고 합니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 컴퓨터에 쌓인 내 경험과 지식을 감성 컴퓨터에 보내면 감성 컴퓨터가 비논리적인고 상징적인 알고리즘으로 그 내용에 변형을 가하는 과정입니다. 그 변형된 내용을 다시 논리 컴퓨터에 보내 세상과 소통하는 형태로 바꾸어 주면 그것이 작품이 되는 것이죠. 카슈미르를 듣다 보면 감성 컴퓨터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집니다.



 바캉스의 라틴어 어원은 ‘자유’입니다. 여행하고 싶은 건 자유를 얻고 싶어서입니다. 그 자유는 내 감성이 통제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꿈틀댈 때 느껴집니다. 꼭 먼 곳을 여행하지 않아도 내 감성을 터치해주는 노래나 책을 통해 멘털 바캉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내 삶의 가치에 부합하는 일에 몰입할 때도 우리 감성은 자유를 느낍니다. 불안과 싸워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불안하든 말든 현실의 삶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가치와 자유를 느낄 때 불안은 슬며시 사라져 버립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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