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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메르스 … 국가가 ‘바람’ 저버릴 때 수치심도 커져

중앙일보 2015.06.23 00:36 종합 14면 지면보기
한국인의 마음에선 바람과 수치심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가 지난 7년6개월(2008년 1월 1일~2015년 6월 9일)간 빅데이터 70억 건을 분석한 결과 한국인의 감정 분포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2008년과 2015년 감성 연관어 비중을 비교해보면 바람(13.4%→16.7%)과 수치심(7.4%→8.6%), 기쁨(15.7%→20.1%)의 비중이 늘고 슬픔(23.5%→22.1%), 분노(13.3%→12.0%), 사랑(17.4%→11.2%)의 비중은 줄었다.


[한국인의 마음] 빅데이터 70억 건 분석 <5> 바람·수치심
7년 전보다 늘어난 바람·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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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바람과 수치심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돼 있었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국가적 이슈가 발생했을 때 두 감정이 맞물려 증폭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참사와 성완종 사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등 큰 사건 초기엔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정부의 대응 실패로 국가에 대한 실망과 수치심을 느끼는 경험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서강대 전상진(사회학) 교수는 “지난 7년6개월간 대형 사건·사고를 겪는 동안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이 거듭해서 좌절되면서 수치심의 비중이 커지는 방향으로 한국인의 마음이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4월 9일 일어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망 사건이 이런 한국인의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본지와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다음소프트는 성 전 회장 사망 후 ‘성완종 리스트’ 메모가 발견된 4월 10일부터 6월 3일까지 트위터·블로그에 올라온 성 전 회장 관련 글 중 감성 연관어가 포함된 78만5554건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은 다음 날(4월 10일) 호주머니에서 정·관계 인사 8명의 이름이 적힌 쪽지(‘성완종 리스트’)가 발견되자 국민들은 ‘분노(23%)’와 ‘두려움(23%)’을 드러냈다. 검찰의 자원외교 수사가 정·관계 인사들의 불법 자금 수수 의혹으로 번진 데 대한 분노 등이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분노·두려움의 비중은 줄어들고 바람·수치심의 감정이 늘었다. 지난 4월 13일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걸겠다”고 말했으나 이튿날인 14일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성 전 회장이 이 총리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는 보도가 나왔다. 바람의 비중은 34%로 나흘 전(21%)보다 13%포인트 늘었다.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에 나서라” 등의 글이 트위터·블로그에 수천 건씩 올라왔다. 5월 7일 검찰이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소환 계획을 밝히자 바람의 감정은 49%까지 높아졌다.



 특히 바람의 정서가 강해지고 그 바람이 충족되지 않을수록 수치심을 표출하는 빈도도 함께 늘어났다. “ 유력 인사들이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부끄럽다”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4월 10일부터 5월 7일까지 수치심의 비중은 8%에서 19%까지 늘었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한국인은 집단 정체성이 강하다”며 “자신의 바람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수록 소속 집단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집단에 대한 기대감(바람)이 클수록 실망도 크게 느끼기 때문에 바람과 수치심의 감정이 함께 연동돼 움직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완종 사건과 같은 국가적 이슈의 경우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이 끝내 충족되지 못하면 수치심도 커지면서 결국 분노로 전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홍준표 지사와 이완구 전 총리가 잇따라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검찰이 불구속 기소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자(5월 21일) 분노 정서는 65%까지 치솟았다. 반면 40%를 웃돌던 바람의 감정 비중은 15%로, 최고 19%였던 수치심 역시 6%로 줄었다.



 바람·수치심의 경우 다른 주요 사건에서도 연관성이 확인됐다. 각각 바람, 수치심의 비중이 큰 주요 사건 10개 가운데 3개가 일치했다. ‘용산 참사’ ‘천안함 침몰’ ‘성완종 사건’ 등이다. 용산 참사와 천안함 침몰 역시 초기엔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란다” “사고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정부 대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경찰과 철거민이 죽었는데도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정부가 부끄럽다”(용산 참사), “꽃다운 청춘들이 폭침에 수장됐는데…미안하고 부끄럽다”(천안함 침몰) 등 수치심을 담은 글이 잇따랐다.



 연세대 조한혜정(문화인류학) 명예교수는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 당시엔 전 국민의 제1목표가 경제성장이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며 “지금은 경제가 안정되고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개개인이 사회문제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수치심이 가장 두드러졌던 사건은 2009년 5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였다. 슬픔(26.9%)과 사랑(14.7%) 다음으로 수치심(13%)이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부끄럽다”는 언급들이었다.



 ◆개인적 바람 표현도 늘어=한국인들은 공적인 요구와 함께 사적인 희망을 표현하는 글도 온라인상에 자주 올렸다. 개인적인 바람이 가장 두드러졌던 시기는 2011년 11월 수능(블로그 글 10만 건당 4884건)과 2014년 12월 수능 성적 발표(4200건) 등 큰 시험이나 시험 결과 발표를 앞뒀을 때다. “수능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대학에 꼭 합격하길 바란다”는 마음이다. 또 건강을 바라고, 취업을 희망하고,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곽금주 교수는 “1970~80년대만 해도 국가·사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지만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해지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기대감을 집중시키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20년쯤 지나면 가족의 건강이 아닌 ‘나의 건강과 성공’을 원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팀장)·유성운·채윤경·손국희·조혜경·윤정민 기자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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