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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신할 수 없죠 … 기능인에게 은퇴는 없다

중앙일보 2015.06.23 00:02 경제 3면 지면보기

1967년 김포공항에서 서울 중심가까지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종이 꽃가루가 하늘을 뒤덮고 도로에는 꽃다발을 목에 건 청년들이 무개차에 타고 손을 흔들었다. 시민들은 길 양쪽에 늘어서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국제기능올림픽은 그렇게 온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16회 대회에 첫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이젠 우리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줬다. 그 때 금메달리스트인 배진효(65·제화)씨는 지금도 산업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후 한국은 지난 2013년 대회 때까지 27번 참가해 무려 18회나 우승했다. 한국 산업의 힘도 이들에게서 나왔다. 첫 대회 때 3억 달러에 불과하던 수출액이 2013년엔 5596억달러로 1865배나 불었다.

기능올림픽 출신 80% 아직 현역
숙련기술인 경시 풍조 있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고액의 소득
“후배 교육, 표준 개발 뒷받침을”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기술인력 부족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숙련기술인 부족률이 2008년 2.4%이더니 2012년에는 4.1%로 늘어났다. 숙련기술인에 대한 경시 풍조와 다른 직업군에 비해 낮은 지위가 장애로 작용하면서다. 이런 사회적 인식과 달리 기능인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고액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이달의 기능한국인 79명을 조사한 결과 현재 은퇴상태에 있는 사람은 1명 뿐이다. 나머지는 60대 이후까지 계속 일을 하겠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역대 기능올림픽 출전선수 854명 가운데 80%는 아직도 산업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07년 10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에 선정된 BMW코리아 이사 장성택(51)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국립중앙직업훈련원(현 폴리텍대학)에서 자동차 기술을 배웠다.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지금은 단종된 스텔라와 엑셀을 만진 이래 30년 넘게 한우물만 팠다. 세계에서 유일한 BMW드라이빙 센터에서 교육에 열중하고 있는 그는 “독일의 직업교육 2년은 한국의 대학교육 4년과는 비교가 안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그는 “자녀에게 우유 대신 엔진오일을 주라”는 농담을 한다. 평생 먹거리는 기술이란 얘기다.

 지금까지 99명이 배출된 이달의 기능한국인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10대에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 현재의 특성화고교에 다닌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야간 과정도 거쳤다. 20대에 접어들면서 그들은 비로소 학위를 갖게 된다. 여느 대학생과 달리 기술력을 놓기 위한 자기계발형이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도 심심찮다. 이들 가운데 74%가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을 할 정도다.

 이들이 참여한 교육의 결과는 학교 수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자동차 급발진 원인을 밝혀낸 박병일(60·2006년 9월 이달의 기능한국인)명장으로부터 자동차 정비 노하우를 전수받은 40대 A씨는 중고차 매매 창업에 성공했다. “원용기(43) 명장에게서 사출금형 기술을 교육받은 이철우(26)씨는 금형시스템 제조분야 세계 1위 업체에 취업했다. 박영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기능인은 대접만 받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이들이 마음껏 교육하고, 국가기술의 표준을 정착시켜 나가도록 지금보다 더 탄탄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사업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달의 기능한국인 가운데 ‘정부 지원사업이 수월하다’는 사람은 1.9%에 불과했다. 2009년 2월 이달의 기능한국인에 선정된 송신근(61)판금명장은 “정부 과제를 한 번 수행하자면 서류가 너무 많다. 정부 지원 받아도 매출이나 기술력 향상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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