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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글로벌화가 낳은 국경 없는 역병시대

중앙선데이 2015.06.21 03:17 432호 29면 지면보기
전염병이 광범위하게 번지는 걸 에피데믹(epidemic), 전 지구적으로 퍼지는 걸 판데믹(pandemic)이라 한다. 한국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는 판데믹이 아니라는 게 세계보건기구(WHO)의 진단이다. 현대사가 기록한 최대 판데믹은 1918~19년의 스페인 독감이다. 전쟁보다 무서웠다.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많은 2500만~5000만 명의 희생자를 냈으니 말이다.

‘키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제자 에곤 쉴레도 희생자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이 흐르고 /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고 노래한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독일 경제학자·사회학자 막스 베버도 포함됐다. 그만큼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한국에선 무오년인 1918년에 퍼져 ‘무오년 독감’으로 불렸다. 한반도에서만 740만이 감염돼 14만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인류가 겪은 최대 전염병은 아무래도 14세기 흑사병일 것이다. 과거엔 서양사에서 취급하지만 최근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 퍼진 ‘글로벌 전염병’으로 본다. 의학적으로 쥐 페스트로 규명된 이 병은 14세기 중국에서 시작됐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당시는 신흥세력인 몽골이 북부 금(1115~1234)과 남부 남송(1127~1279)을 차례로 무너뜨린 전란과 살육의 시대였다. 기근까지 겹쳤으니 주민 신체 면역력은 바닥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홍수·지진 등으로 환경까지 격변하자 숲에 살던 야생 쥐들이 먹이를 찾아 인간 거주지로 들어왔을 것이다. 야생 쥐는 병원체가 우글거리던 쥐벼룩을 달고 왔다. 이 병원체는 면역력이 형편없었을 인간을 제물로 삼았다.

이 병은 몽골군과 상인에 의해 초원의 길과 실크로드를 거쳐 중앙아시아·인도·유럽으로 번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처음 유행한 1346~53년 당시 전체 인류 4억5000만 중 7500만~1억 정도가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흑사병은 기원이 분명하다. 1347년 흑해 연안, 크림반도 동부의 페오도시야 항구다. 당시 ‘카파’로 불리던 이 도시는 이탈리아 제노바 상인들의 무역기지였다. 분쟁이 생기자 인근 킵차크한국의 군주인 자니베크 칸(재위 1342~57)이 4만 병력으로 도시를 포위했다. 역병이 돌자 자니베크 칸은 희생된 병사 시신들을 투석기를 이용해 성 안으로 던져 넣은 뒤 씩씩거리며 퇴각했다. 세균도 모르던 시절의 세균전이다.

카파 상인들은 기도에 응답해준 신에게 감사 드린 뒤 배를 타고 흑해와 지중해를 거쳐 2500km의 항해 끝에 제노바로 귀향했다. 이들의 ‘오디세이’에는 쥐와 쥐벼룩·박테리아도 동행했다. 이듬해인 1348년은 유럽에서 흑사병이 대량으로 퍼진 원년이다.

이미 14세기에도 글로벌 이동과 무역, 분쟁과 난민 이동, 세균전이 전염병 확산을 불렀다. 안전한 글로벌화를 위해선 국경을 넘나드는 질병의 통제가 필수적임을 이미 660여 년 전에 보여줬다.

그런 상황에서 무역으로 먹고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글로벌 전염병 예방수칙으로 손 씻기나 가르쳐서야 과학국가의 위신이 서겠는가. 메르스는 손이 제아무리 깨끗해도 기침 등으로 인한 비말로 감염될 수 있다고 이미 증명됐는데 말이다. 660여 년 전에는 역병의 정체를 모르기라도 했지만, 알고도 당한 21세기 한국은 인류 전염병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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