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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세잔 흠모하며 조각의 ‘신철기시대’ 열다

중앙선데이 2015.06.20 16:42 432호 16면 지면보기
서울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 가운데 뜰로 구상 단계의 ‘자각상, 작품 64-3’(1964), 반구상 수준의 ‘자각상, 작품 71-5’(1971), 그리고 ‘작품 80-5’(1980)을 옮겨 놓았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우성(又誠) 김종영(1915~1982·사진)은 사대부 가문의 장손답게 어려서 한학을 공부했고 서예에 심취했다. 열다섯에 상경해 휘문고보에서 신학문을, 스물한 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오귀스트 로댕의 사실적 조각이 대세인 와중에도 그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일에 천착했다. 해방 이후 서울대 미대에 부임해 교수로, 또 작가로 한국 미술계를 떠받드는 거대한 축을 소리없이 깎고 다듬었다.

한국 추상조각 선구자 김종영 탄생 100주년 전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대 미술관(관장 김성희)과 김종영 미술관(관장 최종태), 그리고 경남도립미술관(관장 윤복희)이 공동으로 기념전을 마련했다. 이름하여 ‘불각(不刻)의 아름다움, 조각가 김종영과 그 시대’다. ‘불각’은 깎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스스로를 ‘불각도인(不刻道人)’이라 칭하곤 했다. 깎지 않는 조각이란 무슨 뜻일까. 그가 추구한 조각은 과연 어떤 것일까.

1 새(1950년대 초), 나무, 9x7x55.5cm 김종영 미술관 소장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열중한 작가
서울대학교 정문 옆에 있는 서울대 미술관은 저명한 건축가 렘 쿨하스의 설계로 지어졌다. 밖에서 보면 허공에 떠있는 듯 보이는지라, 로비를 지나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영락없는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이다. 천상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전시는 사실주의적 근대조각의 영향을 받은 동시대 다른 조각들과의 비교로 시작된다. “1950년대 초 작품인 ‘욕후’는 목욕 직후의 여인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보시다시피 세밀한 인체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부드러운 덩어리들의 집합처럼 보이죠. 그가 추상조각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서울대 미술관 김윤전 학예사의 설명이다.

두 번째 전시장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추상조각 세 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우선 ‘새’는 53년 국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한국 최초의 추상조각으로 꼽힌다. 약간 휘어진 빨랫방망이 같은데 고개를 살짝 틀고 서 있는 학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술평론가인 오광수 뮤지엄 산 관장은 이 작품에 대해 “50년대까지 한국 조각이 로댕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상황에서 우성은 근대조각의 유산을 극복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처음 시도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위상을 한국 현대조각의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또 58년 제작된 ‘꿈’과 ‘전설’은 각각 청동과 철로 만든 작품으로, 특히 ‘전설’은 용접을 이용해 눈길을 끈다. 영국의 예술비평가 허버트 리드가 “전쟁이 끝나고 신철기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철편을 붙이는 용접은 당시의 새로운 조류였다.

그의 작품 중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그나마 이 정도다. 나머지는 그냥 ‘작품’이라는 제목에 연도와 일련번호를 의미하는 숫자가 붙어있을 뿐이다. “무엇을 만드느냐는 것보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더욱 열중해온” 작가의 태도가 여기서 드러난다. 최태만 전시 예술감독(국민대 교수)은 “그에게 깎지 않는다는 것은 작업의 중도포기 혹은 휴지(休止)가 아니라 공간의 여백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맥락의 여유”라며 “우성은 ‘형태를 만드는 예술가’가 아니라 ‘형태를 찾는 탐구자’ 혹은 ‘형태를 연구하는 연구자’였다”고 말한다. 돌과 나무의 자연적 형상을 무시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연스런 추상성을 찾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우성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추사 김정희와 폴 세잔이었다. ‘완당(김정희의 다른 호)과 세잔’이라는 글에서는 둘의 공통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잔의 화면에서는 유려한 리듬은 볼 수 없다. 그의 회화는 그렸다기보다는 축조했다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일반적으로 서예의 미는 선의 리듬에 있는 것으로 보는데, 완당의 예술은 리듬보다는 구조의 미에 있다. 그의 글씨는 투철한 조형성과 아울러 입체적 구조력을 갖고 있고 동양 사람으로는 드물게 보이는 적극성을 띄고 있다.”

세잔의 말년기 수채화인 ‘영원의 여성(1890~95·일본국립서양미술관 소장)’과 추사의 글씨 ‘영산(詠山·1850년 전후·일암관 소장)’을 우성의 다른 추상조각들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배치한 코너는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다. 자연을 구·원기둥·원뿔 등의 기하학적 형태로 파악했던 세잔, 산을 관조하고 읊는 주체로서의 영(詠)자와 아득히 멀리 보이는 산(山)자를 통해 작품 자체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구현한 추사의 작품은 우성이 어떤 맥락에서 자신의 추상 조각들을 완성해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단초들이다.

2 욕후(1950년대 초), 브론즈, 20x20x50.5cm 개인 소장 3 작품 73-5(1973), 나무, 66x25x68cm 삼성미술관 Leeum 소장 4 작품 76-12(1976), 나무, 27x26x58cm 김종영 미술관 소장 5 작품 78-16(1978), 돌, 17x5x28cm 김종영 미술관 소장 6 자화상(1975), 종이에 수채, 35x38cm 김종영 미술관 소장
1953년 영국 테이트 갤러리 공모전 입상
서울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은 고즈넉했다. 타계 20주기를 기념해 2002년 12월 개관한 이곳에서의 전시는 우성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삶은 창원 소답동 한옥 고택으로부터 비롯된다. 김종영 미술관 오보영 학예사는 “동요 ‘고향의 봄’(홍난파 작곡, 이원수 작사)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대궐’은 바로 이 집이 배경”이라고 소개했다. 우성의 막내 아들 김병태 애플트리호텔 회장은 큰 누나가 할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전한다. “아버님이 다섯 살 때 집안에 누가 돌아가셨대요. 잠시 밖에 다녀온 할머님은 안 계신 동안 문상온 사람 성함을 물어보지 않았다며 아버님을 나무라셨다죠. 그런데 아버님은 조용히 종이와 먹을 들고 오더니 사람 얼굴을 그렸고, 그걸 보고 누가 오셨었는지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는 휘문고보 시절인 32년 동아일보 주최 제 3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에서 안진경체의 ‘원정비문(元靖碑文)’으로 습자부문 1등상을 받았다. 또 전쟁 중이던 53년 3월 영국 테이트 갤러리가 주최한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조각공모전에 ‘나상’을 출품,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52개국 3246명 가운데 입상한 140명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전시장에서는 이와 함께 우성이 생전에 했던 두 개의 공공조각 ‘포항전몰학도충혼탑’과 ‘3·1 독립선언기념탑’에 관한 다양한 자료도 볼 수 있다. 특히 ‘3·1 독립선언기념탑’은 63년 현 탑골 공원에 설치됐다가 갑자기 철거돼 삼청 공원에 버려져 있던 것을 미술계의 탄원으로 서대문 역사공원에 재건립됐는데, 그 과정도 소상하게 볼 수 있다.

“유희적 태도 없인 예술의 진전 없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은 부드러운 곡선과 덩어리가 강조된 유기적 추상과 엄격하고 자기 완결성이 강한 기하학적 추상, 그리고 대칭보다는 비대칭으로 풀어냈다는 특징을 보인다. 그중 가장 눈에 띈 작품은 우성이 자신의 얼굴을 직접 조각한 ‘자각상’들이었다. 구상 단계의 ‘자각상, 작품 64-3’(1964), 반구상 수준의 ‘자각상, 작품 71-5’(1971), 그리고 ‘작품 80-5’(1980) 셋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어둑한 전시장 한켠에 나란히 있는 모습이 왠지 우울해 보이기도 했거니와, 셋이 서로 마주보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볕 좋은 미술관 뜰 연못 앞으로 옮겨 놓았다.

그랬더니 정말 대화를 하는 듯했다. 잠시 귀 기울여 보니, 우성의 평소 예술관인 ‘유희정신’에 관한 것인 듯 했다.

“유희란 것이 아무 목적 없이 순수한 즐거움과 무엇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다분히 예술의 바탕과 상통된다고 보겠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헛된 노력’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현실적인 이해를 떠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유희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없이는 예술의 진전을 볼 수 없다.”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김종영 미술관·서울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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