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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자동차 운전, 드릴 사용, 계단 오르기 … 재난 대처하는 능력 가장 뛰어났다

중앙선데이 2015.06.20 18:38 432호 6면 지면보기
국제 재난 대응 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KAIST 오준호 교수팀(작은 사진)의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는 걷거나 무릎을 구부릴 수 있고, 장착된 바퀴로 달릴 수도 있다. [사진 DARPA]
2위를 차지한 플로리다대 인간기계연구소(IHMC) 로봇이 계단을 오르다 넘어지고 있다. [사진 알렉스 갈라도, AP]
KIAST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휴보랩) 팀이 지난 6일 미국에서 열린 로봇경진대회에서 우승해 상금 200만 달러를 차지했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올해 두 번째로 개최한 국제 재난 대응 로봇 경진대회인 ‘DARPA 로봇 챌린지(DRC)’에는 미국·한국·일본·중국 등 7개국의 대학교, 로봇 제조업체, 국가 연구소 25개 팀이 참가했다. 대회 출전 로봇들에는 코스마다 단 한 시간만이 주어진다. 자동차 운전 하기, 문고리를 돌려 문 열기, 휴대용 드릴 사용하기, 계단 오르기 등 8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과제 해결 숫자와 숙련도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

국제 재난 대응 로봇 경진대회

오준호 교수의 14년 집념이 밑거름
KAIST 연구팀의 승리는 2002년부터 뚝심 있게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 개발에 매진해 온 오준호 교수의 공이 가장 크다. 휴보는 계단 같은 장애물을 만날 경우 두 발로 걸어서 통과하지만 바닥이 평평한 곳을 이동할 때는 무릎을 꿇고 무릎에 달린 바퀴를 사용해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KAIST에 이어 2위를 차지한 플로리다대학 인간기계지능연구소는 상금 100만 달러를, 3위인 펜실베이니아주 카네기멜런대 국립 로봇 엔지니어링센터는 50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2013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첫 대회보다는 확실히 발전된 로봇들이 출전했지만, 올해 개봉한 과학영화 ‘엑스 마키나’나 ‘채피’에 나오는 로봇보다는 수십 년은 뒤떨어진 모습이었다. 출전 로봇들은 인간형 로봇이라기보다 전기나 유압조절 장치를 잔뜩 장착한 기계에 가까워 보였다. 두 발, 혹은 네 발로 느릿느릿 걷는 로봇부터 트랙 위를 바퀴로 굴러다니는 로봇, 180㎏을 넘는 무거운 로봇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재난 현장에 투입돼 원격조종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센서와 카메라를 달고 있었다.

 대회 첫날인 5일 오후 2시30분. 오전부터 이어진 7시간30분 간의 경쟁 끝에 모든 코스를 성공적으로 완주한 첫 로봇이 탄생했다. 이번 대회는 로스앤젤레스 박람회장 야외경기장 앞에 있는 코스에서 열렸다. 경기장에서 400m쯤 떨어진 차고에서 무선으로 원격 조종하는 로봇이 4대씩 나와 관람객 앞에서 경주를 펼쳤다. 작업을 수행하거나 이동하다가 자주 멈춘 탓에 시간이 더 걸렸다. 로봇을 조종하는 원격 컨트롤러와의 연결이 끊기면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대회 창설 동기
네트워크 연결이 고르지 못했던 것은 주최 측인 DARPA의 의도적 설정이었다. 실제 재난현장 같은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일부러 연결을 중간중간 끊은 것이다. 이날 참가 로봇들은 너무 느리게 움직여 마치 배터리가 달린 기계 한 무더기가 슬로모션으로 미용체조를 하는 것 같은 진풍경을 연출했다. 취재기자들은 이런 로봇을 설명하기에 적당한 비유거리를 찾느라 고심했다. 한 기자는 “풀밭에 앉아 잔디가 자라길 기다리는 것보다도 느린 것 같다”는 감상을 내놓았다.

 많은 로봇들이 과제를 실행하는 세트장 문 앞에서 넘어지고 계단에서는 뒤로 쓰러졌다. 심지어 가스밸브를 잠그는 과제에서는 손잡이를 돌리는 것은 고사하고 잡는 것조차 실패한 로봇도 있었다. 이날 경기는 하루 종일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드라마틱하게 진행됐다. 수천 명의 관람객은 각 로봇이 과제를 끝낼 때마다 환호했고, 과제 수행에 실패하거나 넘어지면 함께 안타까워했다.

 DRC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물질 유출사고 이후 기획됐다. 사고 당시 원전 안전관계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원전을 폐쇄하기도 전에 현장을 떠나야 했다. DRC를 총괄 기획한 길 프랫 박사는 “사고 당시 로봇을 원격 조종할 수 있었다면 원자로가 녹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전기 공급조차 안 되는 재난현장에서 사람을 대신해 응급 구호장치를 조작할 수 있는 로봇이 투입된다면 피해 규모가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예선 1위 회사 ‘샤프트’ 인수
이번 결승대회에 앞서 2013년 12월 캘리포니아주 홈스테드에서 열린 DRC 예선경기에서는 도쿄대 교수들이 창업한 로봇회사 ‘샤프트(Schaft)’가 좌중을 압도했다. 일본의 군사기술 개발 관련 규제를 피하려고 도쿄대에서 분리해 나온 샤프트 팀은 당시 시도했던 모든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 그러자 구글은 즉시 샤프트를 인수하고 DRC 본선 경기에서 빼기로 결정했다. 대신 이번 결승전에서 샤프트의 기술은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두 발 보행 로봇인 ‘아틀라스(Atlas)’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적용됐다. 보스턴다이나믹스도 구글이 2013년 인수한 로봇 관련 벤처 업체다. 2013년 예선과 비교해 이번 결승대회에서 로봇들은 자율성이나 운동 성능 면에서 대단한 진척을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인간과 로봇이 독자적으로 해낼 수 없는 일을 협업을 통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번 대회를 통해 관중들은 로봇들과 한층 친밀해졌다.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기술을 선보인 SRI 인터내셔널의 리치 마호니 로봇 프로그래밍 담당 이사는 “적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차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주위 사물들과도 관계 맺기를 원하는 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로봇들이 점점 발전해 인간과 비슷한 감성과 신체적 특징을 공유하게 될수록 더 많은 사람이 기계와도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번역=김지윤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jiyoon.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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