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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노아의 홍수’도 표절 … 엘리엇은 『황무지』서 무명 작가 글 도용

중앙선데이 2015.06.21 00:35 432호 8면 지면보기
프랑스의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1798~1857)는 인류의 지식 발전이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과학적 단계로 전개된다고 설명했다. 표절의 역사 또한 3단계로 이행한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역사 속에 나타난 표절

 1단계에서는 표절이 당연시되며 오히려 권장되기까지 하는 시대였다. 표절은 일종의 ‘오마주(hommage)’였다. 1단계는 문자의 발명과 더불어 시작됐다. 최초의 표절 기록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5000년 전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에 노아의 홍수 이야기와 구조적으로 같은 내용이 나온다(하지만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수메르판 홍수 이야기에서 신들이 홍수로 인류를 궤멸시키려고 한 것은 어떤 도덕·윤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신들이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어의 표절(plagiarism)은 ‘납치범’을 뜻하는 라틴어(plagiarius)에서 나왔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40~102년께)는 자신의 시를 베끼는 라이벌을 ‘납치범’이라고 비난했다.

 중세까지, 특히 종교 문헌에서는 남의 글을 베끼는 일이 당연시됐다. 중세 시대를 넘어 감리교의 창시자인 성공회의 존 웨슬리(1703~1791) 신부도 다른 설교자·신학자의 글을 ‘표절’했다.

 르네상스(14~16세기)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글의 독창성이 중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문학에서 표절이 본격적으로 문제시된 것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가 활동한 시대다. 표절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셰익스피어이지만 그의 역사극은 래피얼 홀린셰드(1529~1580)의 『연대기』를 ‘재창조’했다.

 영국이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을 통과시킨 것은 1709년이다. 1755년에는 표절(plagiary, plagiarism)이 사전에 등재된다. 2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19세기에는 표절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에 근접했다. 주석을 다는 방식도 거의 같다. 표절이 죄악시됐지만 표절의 만연은 계속된다. 표절을 통해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번 유명인이 다수 배출됐다.

 성공한 쿠데타가 혁명으로 인정받듯 20세기에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저자들의 표절은 ‘용서’됐다. 대표적인 예가 T S 엘리엇(1888~1965)이다. “미숙한 시인은 흉내 내지만, 성숙한 시인은 베낀다”는 말을 남긴 엘리엇의 『황무지』(1922)는 표절 작품이었다.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시’라고 평가받는 『황무지』는 무명 시인인 매디슨 코윈(1865~1914)의 ‘황무지’(1913)를 상당 부분 도용한 작품이었다. 작품명까지 같다. ‘황무지’가 『황무지』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글이 나온 것은 1995년이다.

 미국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1929~68)이 보스턴대에서 받은 신학 박사 학위 논문 또한 표절의 산물이었다. 보스턴대는 킹의 박사 학위 논문이 표절이라고 판정했으나 학위를 무효화하지는 않았다. 킹이 미국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서다. 그 유명한 연설 ‘내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또한 표절이었다.

 미국은 1891년까지 외국 작가·출판사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국이 ‘문학·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 협약’(1886)에 서명한 것은 1988년이다. 국제정치의 패권마저도 표절을 용인하지 않는 3단계가 그때 개막된 것이다. 세계에서 대표적인 표절 불관용 국가는 미국이다. 세계화를 통해 미국의 표절 기준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김환영 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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