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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집=사회 안전망’이라지만 절반은 3년 내 폐업

중앙선데이 2015.06.21 02:36



5000만원 투자, 이틀이면 ‘사장님’? 치킨집 경제학

‘태초에 치느님이 치킨집을 창조하사 프라이드와 양념이 탄생했노라’.



치킨 매니어들이 ‘창세기’ 대신 읊조린다는 ‘닭세기 1장 1절’은 이렇게 치킨을 고무·찬양한다. 치킨은 1997년 이후 단 한 번도 외식 메뉴 1위 자리를 내준 적 없는 국민 간식, 국민 야식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 창업하는 업소 둘 중 하나는 치킨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창업자들이 가장 많이 뛰어드는 사업이 됐다. 레드오션으로 분류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브랜드가 등록되는 희한한 업종, 1년에 5000여 개 매장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7000여 개가 새로 문을 여는 업종, 치킨의 특이한 세계를 들여다 보자. 그 안에는 복잡다단한 대한민국의 인구 사회학적 구조, 수요·공급의 시장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국내 치킨시장 규모는 연간 5조~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록된 브랜드만 250여 종, 치킨전문매장 개수는 3만6000여 개에 달한다(KB금융지주 분석). 2013년 말 현재 국내 편의점 개수(2만 4923개)와 견주면, 창업자들은 편의점보다도 더 많이 치킨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치킨집 창업이 성업인 이유를 이해하려면 대한민국 사회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 먼저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013년 말 현재 27.4%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공공 부문의 고용 흡수가 미약하고 기업의 고용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경희 창업전략연구소장은 “한국인들은 회사에 있는 동안 자기계발이나 은퇴 후 준비를 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중년 남성들이 퇴직한 뒤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치킨은 2~3일 교육받으면 요리법을 배울 수 있고 프랜차이스 본점이 인지도를 책임져준다는 점에서 매력적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좋은 자리, 대형 매장 아니어도 돼

특히 치킨점은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다. 일반 식당의 경우 ‘자리’나 ‘목’이 영업 성패를 좌우하지만 치킨은 배달 위주라 좋은 자리도, 대형 매장도 필요치 않다. 초기 투자 비용이 적게 드는 이유다. ‘바비큐보스’, ‘꿀닭’ 등 치킨 브랜드를 운영하는 조동민 프랜차이즈협회장은 “임대료를 제외하면 보증금·시설비로 3000만~5000만원이면 작은 가게를 열 수 있고 하루 20~30마리를 팔면 한 달 200만~300만원 가량의 인건비를 뽑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생계형 창업자들이 치킨시장에 몰린다”고 분석했다. 그는 “치킨점 창업자 중에는 퇴직 후 큰 돈을 들여 다른 업종에서 대형 매장을 열었다 실패한 분들이 업종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며 “서민들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재취업 기회가 제한된 우리나라에서 치킨업은 창업의 사회안전망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닭고기 시장 성장 여지 커”

치킨의 ‘수요 특성’도 창업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우선 소득이 늘면서 육류 소비량이 꾸준히 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저지방, 저칼로리, 고단백 식품인 닭고기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12.6kg으로, 1970년(1.4kg)에 비해 9배 늘었다. 닭고기 소비량은 2005년에 소고기를 추월했다. 추가 성장 여력도 충분하다. 미국·브라질의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각각 44.6㎏과 39㎏, 일본은 15.7㎏에 달한다. 일본인 수준까지만 닭고기 소비가 늘어난다 해도 1인당 3㎏은 더 성장할 여력이 있는 셈이다. 조 회장은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HMR(가정식 대용식품) 제품이 많이 발달해, 매장에서 시켜먹는 우리나라와는 소비 패턴이 다르다. 한국의 치킨 매장이 많아 보이지만 전체 닭고기 시장은 성장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치킨에 대한 높은 수요는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폐업률도 만만치 않다. KB경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개업한 전국 치킨전문점 중 1년 안에 휴업 및 폐업 등으로 업계에서 퇴출당한 업소 비율은 전체의 18%다. 3년 미만의 기간에 퇴출당한 비율은 49.2%, 10년 동안의 총 폐업률은 79.5%다. 평균 생존기간은 2년7개월에 불과했다. 치킨전문점의 영업이익률은 30.3%이지만 임대료, 세금 등을 제하고 사업주가 가져가는 연소득은 평균 2500만원(2011년 기준)에 불과하다.



창업자들이 치킨집에 몰리는 현상은 해외에서도 주목받는다. 2013년 9월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 자영업 늘고 가계 부채 급증, 치킨집 버블 터질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는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음식점이 12개나 있어 일본보다 2배 이상 많고 미국보다 6배나 많다”며 “특히 50대 은퇴자들이 은행 담보 대출을 통해 치킨집을 개업하지만 공급과잉으로 폐업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치킨집 거품이 터지는 것만으로 한국 금융시스템이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채무 불이행이 급증하면서 은행이 대출을 꺼리게 될 것”이라고 ‘치킨발(發) 가계부채 문제’를 지적했다.



치킨 시장 내에도 계보가 있고 트렌드 변화도 있다. 국내 치킨의 원조는 61년 명동에 들어선 ‘명동영양센터’의 전기구이 통닭이다. 전기구이의 담백함을 퍽퍽함으로 느끼던 60년대 중후반 이후 사람들은 ‘기름 맛’에 눈을 떴다. 이 기름맛은 70년대 중반 기름 ‘쇼트닝’에 딥 프라이된 튀김닭이 등장하며 빠르게 밀려났다. 조리법도 숯불, 가마솥, 오븐, 전기구이처럼 새로운 시도가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치킨 시장에도 계보와 트렌드 있어

국내 최초 프랜차이즈는 77년 신세계백화점 식품부가 직접 운영한 ‘림스치킨’이 원조다. 프랜차이즈라는 산업 형태가 없던 시절이었다. 닭의 종자 개량과 사료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육계산업도, 치킨 산업도 함께 발달했다. 본격적인 프랜차이즈 산업화는 1984년 KFC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대전에서 출발한 페리카나에 이어 멕시카나, 처갓집이 등장했고, 경상도에서 간장 양념으로 시작한 교촌도 전국 브랜드가 됐다.



치킨은 경기에 따라 히트상품도 달라진다. BBQ가 동네 배달 컨셉트로 빅히트한 것은 90년대 후반 경제위기라는 시대상황과 맞아 떨어지면서였다. 이후 불경기 때마다 호식이두마리, 타바두마리 같은 가격경쟁력 있는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최근 경기가 좋지 않자 복고풍의 시장 통닭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경희 소장은 “조리법부터 소스, 가격전략까지 트렌드를 읽고 섬세히 대비하지 못하면 문닫기 십상인 분야가 치킨”이라고 말했다. 



밤이 되도 수은주가 떨어지지 않는 계절이 왔다. 전국의 치킨 매니어들은 치느님의 말씀 한 대목을 외치며 치맥으로 더위를 식힐 터다. “지방(脂肪)은 미워하되 치킨은 미워하지 말라”. “치렐루야~ 치멘~”.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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