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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뒤엔 소련’ … 간파한 트루먼, 한반도에 신속 개입

중앙선데이 2015.06.21 02:33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가 6·25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6·25 전쟁 65주년] 『6·25전쟁과 미국』펴낸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6·25전쟁 65주년을 앞두고 원로 언론인인 남시욱(77) 세종대 석좌교수가 『6·25전쟁과 미국:트루먼·애치슨·맥아더의 역할』(청미디어)을 펴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듯 미국이 6·25전쟁에 미친 영향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특히 세 주역인 해리 트루먼 대통령(재임 1945~53)과 딘 애치슨 국무장관,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사령관의 사고와 철학의 상호작용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를 저널리스트 출신 학자의 눈으로 예리하게 관찰했다. 남 교수는 “추상적인 국가 대신 구체적인 인간을 국제관계의 중요 행위자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국제사회의 새로운 사태 발전과 그 역동성, 그리고 책임 소재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탈린·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 그리고 미국의 세 주역들의 발언과 외교서신 등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실증적인 연구를 한 남 교수를 지난 17일 만나 6·25전쟁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올해 6·25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책이 나왔다.

“자료 수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미국 워싱턴DC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시에 있는 트루먼대통령도서관, 버지니아주 노퍽의 맥아더기념관 등을 직접 방문해 방대한 자료를 접했다. 1년 정도 집필한 끝에 6·25를 맞아 출간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퓰리처상 수상자인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펴낸 『가장 추운 겨울(The Coldest Winter)』과 같은 서양인들이 쓴 6·25 관련 저술들도 많다. 실제 전쟁이 발발한 한국의 언론인 출신으로서 6·25전쟁과 관련된 책을 꼭 한번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



-다른 6·25 관련 책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사실 지금까지 나온 6·25전쟁 관련 책들은 주로 발생원인에 대해 많이 다뤘다. 순수한 학문적인 연구 차원에서 쓴 것보다는 저자들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한쪽 편을 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 취재해봐야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그 당시 한국의 운명을 들었다 놨다 한 주역들인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장관, 그리고 맥아더 장군 세 사람을 집중 연구해 펴냈다. 행위자 중심으로 분석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책의 부제가 ‘트루먼·애치슨·맥아더의 역할’이다. 이들은 처음엔 협조하다 나중엔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들을 통해 한국의 운명이 결정된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트루먼 대통령은 자수성가한 사업가 출신이고 애치슨 장관은 예일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였다. 맥아더는 엘리트 직업군인이다. 성장 과정은 각각 다르지만 셋은 모두 용기·인격·자유·민주주의와 같은 동일한 덕목과 이상을 지닌 용감한 지도자들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한다면.

“그는 무엇보다 소련을 6·25전쟁의 배후세력으로 즉각 판단해 미국의 참전 결정을 내렸다. 냉전 당시의 세계 전략적 차원에서 스탈린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트루먼의 확고한 의지와 신속한 결단이 작용했다. 만약 그가 6·25전쟁을 남북한 간의 내전이라고 보고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한국은 없을지도 모른다. 트루먼과 애치슨, 그리고 맥아더는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하는 국면에서 나왔던 미군과 유엔군의 한국 철수론에 반대해 지금의 휴전 상태로 종전하는데도 기여했다. 트루먼은 그러나 소련의 전쟁 직접 개입, 나아가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을 피하기 위해 6·25전쟁을 제한전쟁으로 치르면서 시종일관 맥아더에게 신중한 작전을 주문했다. 유엔군이 위기에 빠진 중공군에 반격할 결정적 시기에 맥아더를 해임함으로써 전쟁 승리의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도 있다.”



-애치슨 장관은 어떤 역할을 했나.

“애치슨은 즉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북한군의 행동이 침략행위라고 선언하도록 해야 한다고 트루먼에게 건의했다. 애치슨이 시간을 끌고 미적거렸다면 미군과 유엔군은 북한군과 싸워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애치슨은 또한 소련이 더 이상 6·25전쟁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선제조치함으로써 외교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맥아더의 증원 요청과 확전론에 반대하면서 군사적인 승리보다 외교적 타협을 중시해 결과적으로 한국 통일의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맥아더 장군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6월 29일 한국에 도착해 전선을 시찰한 맥아더는 워싱턴 당국이 결정한 해·공군력 지원으로는 한국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즉각 지상군 파견을 요청했다. 지상군 파견이 북한의 남침 5일 만에 결정된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추수감사절 공세와 크리스마스 공세 실패로 다시 38선 이하로 밀려난 것은 맥아더 장군의 군사적 실패였다. 엘리트 군인으로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아시아를 중시했던 맥아더는 중국이 6·25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과, 유럽을 중시한 트루먼·애치슨과의 갈등으로 결국 전선에서 물러나는 아쉬움을 남겼다.”



-6·25전쟁을 누가 일으켰는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책은 소련과 중국에서 공개된 많은 자료들을 반영한 연구결과를 참고했다. 전쟁의 발의 자체는 김일성이 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처음부터 테렌티 시티코프 당시 평양 주재 소련 대사에게 스탈린의 허가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



-김일성의 전쟁이냐, 스탈린의 전쟁이냐를 두고도 논란이다.

“스탈린은 1949년까지는 전쟁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중공 정권 수립 등 국제정세 변화로 50년 들어서면서 입장을 바꿨다. 스탈린이 김일성의 전쟁계획을 빼앗다시피 해 스스로 지휘했다. 작전까지 꾸며서 김일성에게 지시했다. 휴전협상 때도 소련이 질질 끌었다. 스탈린이 유럽에서의 우세를 점하기 위해 미국을 한반도에 계속 묶어놓기 위해서였다.”



-한반도는 지금도 정전 상태다.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교훈을 특히 되새겨야 하나.

“한국이 자립할 수 없는 상태에서 미군이 조기 철군한 게 가장 큰 전쟁 유발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북한이 전쟁을 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억지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 스스로의 힘도 중요하지만 동맹을 통해서도 이중 억지력을 키울 수 있다. 다시는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끔찍한 전쟁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이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6·25전쟁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대부분이라 6·25는 잊혀져 가는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정전 상태에 있는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정신적인 무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학교교육이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현대사를 가르쳐야 한다.”






남시욱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실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 문화일보 사장 역임. 현재 세종대 석좌교수. 주요 저서로는 『한국보수세력 연구』『한국진보세력 연구』 등.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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