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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외도’가 아름다운 이유

온라인 중앙일보 2015.06.21 00:01
[뉴스위크]


영화는 성공 못해도 원작에 대한 대중의 관심 높이는 효과 있어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지난 4월 발간 90주년을 맞았다. 지난 5월에는 바즈 루어만 감독의 동명 영화가 개봉 2주년을 맞았다. 책을 좋아하는 팬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영화는 기억할 만한 가치가 거의 없는 작품이다.



2013년 영화가 개봉됐을 때 독자들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연기하는 개츠비를 보러 극장에 들어서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루어만 감독이 만든 ‘위대한 개츠비’는 웅장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피츠제럴드가 섬세한 감성으로 그린 1920년대 뉴욕과는 거리가 멀었다. 화려한 불꽃놀이로 흥청거리고, 퍼기와 비욘세가 부르는 OST가 흐르고, 아메리칸 드림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보여준 닉 캐러웨이 역을 스파이더맨(토비 매과이어)이 연기한다. 영화에 대한 우리의 우려는 대체로 들어맞았다. 이 완벽한 소설을 다른 형식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 성공해 약 1억45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그해에는 소설도 더 잘 팔렸다. 스크리브너 출판사에 따르면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연 평균 판매 부수는 약 50만 부인데 2013년에는 190만 부가 팔렸다. 자부심에 가득 찬 미소를 짓는 영화 속 디캐프리오의 모습을 담은 새 표지가 매출 증가에 큰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많은 독자가 이것을 일종의 침입 행위로 여겨 영화 자체보다 더 불쾌하게 생각했다. 표지에 실린 유명 배우의 이미지와 책 속에 담긴 신성한 글의 부조화가 너무도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표지에 실린 키이라 나이틀리의 사진이나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내가 누워 죽어갈 때’의 표지 속 제임스 프랭코의 사진,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의 표지 속 크리스틴 스튜어트 사진도 마찬가지다.



펭귄 북스의 마케팅 이사 존 페이건에 따르면 스튜어트가 주연한 영화 ‘온 더 로드’는 평단의 부정적인 반응과 75만 달러에 못 미치는 미국 내 흥행수입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매출을 크게 증가시켰다. “사람들은 영화 성패와 상관없이 소설을 읽는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를 보든 안 보든 어차피 책을 읽고 싶었던 사람들은 그 책을 집어 들게 된다. 사람들은 이 책이 영화화됐다는 소식에 케루악과 비트 세대(Beat Generation,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 풍요에 따른 획일화·동질화에 대항해 산업화 이전의 전원생활과 인간정신에 대한 신뢰를 중시했다)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페이건 이사는 이들 소설이 영화와 관련된 표지를 달았을 때 기존 표지의 책보다 매출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이전에 그 책을 읽을 생각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책을 사게 하는 힘이 있다.”



감동적인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떤 예술적 체험보다 더 개인적이다. 따라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이 영화화될 때 느끼는 배신감은 이해할 만하다. 그런 이유에서 유명 문학 작품의 경우 그에 따른 비판은 대체로 정당화된다. 하지만 우리는 소설에서 받은 개인적인 느낌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욕심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새롭고 재미있는 방식을 통해 귀중한 문학작품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은 원작에 대한 우리의 오만하고 지적인 욕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능성이다. 톨스토이가 윙크하는 이미지가 담긴 번쩍거리는 표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면 그런 표지를 만들어서 그 기회를 살리는 편이 좋지 않은가? 고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아무리 형편없는 작품이라도 원작을 대중의 의식 속에 다시 밀어 넣는 효과가 있다. 그런 기회를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반(反)지성적 행위다. 여기서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1996년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개봉됐을 때 평단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디캐프리오(로미오 역)의 전성기에 제작된 그 영화의 비디오 테이프에 영어과 임시교사가 깜짝 등장한 덕분에 얼마나 많은 10대 소녀가 원작 희곡을 읽었을지, 또 셰익스피어에 관심을 갖게 됐을지, 그리고 다른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읽게 됐을지는 알 수 없다.



그 임시교사가 상의를 벗은 클레어 데인스(줄리엣 역)가 나오는 장면을 깜빡 잊고 가리지 못해 교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면 10대 소년들 역시 소녀들과 같은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그런 순간은 고등학교 1학년생에게는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누가 아는가? 그것을 계기로 인생을 바꿔놓을 만한 책을 읽게 됐을지 말이다.



글=라이언 보트 뉴스위크 기자 기자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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