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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5번 ‘아다지에토’] 베니스의 미로를 흐르는 정염의 선율

중앙일보 2015.06.20 15:16
무거운 황혼이 드리워진 검은 바다. 낡은 여객선 에스메랄다호가 힘겹게 물살을 가른다. 굴뚝에서 흘러나온 검은 연기는 수평선에 긴 흔적을 남긴다. 음악도 힘겹게 흐른다.


an die musik

말러 교향곡 5번의 아다지에토. 이 음악이 이토록 무거운지 몰랐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연주로 처음 들었을 때 설산(雪山)의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거울 같은 수면에 파란 하늘이 비치고 흰 구름이 천천히 흘렀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 검은 바다를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은 어둡고 끈끈하다.



배는 석호(潟湖)를 가로지른다. 항로 곁에는 광대한 갯벌이 펼쳐져 있다. 석호 안쪽에 세워진 도시는 육지 사람들이 동쪽에서 쳐들어 온 무자비한 침략자를 피해 세웠다. 갯벌 깊숙이 말뚝을 박고 그 위에 돌과 벽돌을 쌓아올려 도시를 건설했다. 그 불가사의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수평선 위에 떠오른다. 뾰족한 첨탑, 성당의 둥근 지붕과 십자가. 베니스다.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은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은 늙은 작곡가 구스타프 아셴바흐. 그는 자신의 음악이 대중의 이해를 얻지 못하자 실의에 빠졌다. 감각을 완전히 배제한 음악, 순수함만을 추구한 음악에 청중은 야유를 보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셴바흐는 모른다. 그가 선택한 것은 여행이고 목적지는 베니스다.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는 리도섬의 호텔 로비. 투숙객들이 식당에 입장하기 위해 기다린다. 혼자인 아셴바흐는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을 둘러본다. 연회복을 차려입은 남자들, 화려한 옷과 보석을 주렁주렁 두른 여자들이 만찬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 사이에 독특한 분위기의 일가족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우아한 어머니와 장식 없는 옷을 제복처럼 입은 세 자매, 그리고 흰색 세일러복의 소년. 천천히 돌아가던 아셴바흐의 시선이 소년에게 꽂힌다.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한 그리스 조각이 모델로 삼았을만한 얼굴이다. 열다섯 살쯤 됐을까. 발그레한 뺨, 깊은 눈매, 붉은 입술을 물결치는 금발이 감싸고 있다. 손님들이 차례로 입장하고 그 가족이 마지막으로 일어선다. 작곡가의 시선은 소년을 따라간다. 식당 입구에서 소년이 돌아보고, 둘의 시선이 부딪친다.



만남은 계속된다. 로비에서 스치고, 식당에서는 넋을 놓고 바라본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의 만남은 현기증이 난다. 한 순간 소년은 아셴바흐의 곁을 지나며 빛나는 미소를 짓는다. 감전된 늙은 사내는 홀로 나직이 속삭인다. “누구한테도 그렇게 미소 짓지 마. 널 사랑해.”



영화는 토마스 만의 같은 제목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소설 속 아셴바흐는 작가지만 영화에서는 작곡가로 바뀌었다. 토마스 만이 구스타프 말러의 죽음을 계기로 쓴 소설이니까 작곡가로 그리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소설에는 없는 어린 딸의 죽음도 말러를 연상시킨다. 음악은 당연히 말러다.



비스콘티는 친구의 입을 빌어 순수와 도덕만을 고수하는 아셴바흐에게 외친다. “악은 필수고 천재의 양식이야. 자신의 감각에 기대어 구제할 수 없는 타락에 빠지는 것은 예술가에게는 기쁨이지.” 그 필수적인 악, 예술가의 기쁨이 영화에서는 동성애로 나타난다.



성적 정체성은 토마스 만 작품세계의 뼈대를 이루는 것 중 하나다. 『베니스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가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형 하인리히도 동성애자였다고 하니 집안 내력일 것이다. 역시 성 소수자로 양성애자인 비스콘티는 동병상련하지 않았을까?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영화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었을 것이다. 1971년에 제작된 영화는 고전으로 남았고 말러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미소년 타지오를 사랑하는 늙은 사내. 절대적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이라고 하지만 불편한 주제다.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가 그리스 미소년 안티노스를 사랑한 것은 시공(時空)의 거리 때문인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저자)의 매혹적 문장 덕분인지 고개를 끄덕였는데, 아셴바흐의 사랑은…. 토마스 만, 비스콘티의 고통이 느껴지지만 나로서는 이해 불가능이다.



불붙은 사랑은 주체하기 힘들다. 호텔 이발사는 아셴바흐에게 속삭인다. “딱 느끼는 만큼 나이를 먹는답니다. 원래의 머리색을 가지세요.” 그는 노인의 흰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얼굴에는 분칠을, 입술은 붉게 칠한다. 양복 주머니에 꽃을 꽂아주고는 “이제 마음껏 사랑에 빠지라”고 한다. 삐에로가 된 아셴바흐는 타지오를 쫓아 베니스의 미로같은 골목을 헤매지만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다.



지중해의 여왕이었던 베니스는 늙고 초라한 여인 같다. 곳곳에서 쓰레기를 불태우고 벽마다 위생에 유의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열풍 때문에 도시엔 콜레라가 창궐하고 있다. 아셴바흐는 알고 있었지만 그를 두고 떠날 수는 없다. 탈진해 거리에 쓰러진 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평생 지켜 온 정신세계가 산산이 부서졌다. 아다지에토는 숨 가쁘게 절정으로 치닫는다.



전염병으로 텅 빈 백사장에 여인의 음울한 노래가 곡(哭)처럼 흐른다. 주인 잃은 카메라가 철 지난 바닷가의 파수꾼 같다. 아셴바흐는 화장한 얼굴로 벤치에 몸을 기대고 있다. 소년은 햇살 부서지는 바다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몸을 돌려 작곡가를 한동안 바라보고는 다시 바다로 시선을 향한다. 잠시의 정적. 아름다운 실루엣은 왼팔을 허공을 향해 뻗는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쥔다. 동그라미다.



축 처져 앉아 있던 아셴바흐는 놀라 몸을 일으킨다. 타지오가 나를 부른다! 그러나 곧 쓰러진다. 처음이자 마지막 신호를 받고 그는 죽는다. 얼굴에는 염색약이 검붉은 피처럼 녹아내린다. 정염의 회오리가 잦아든 아다지에토는 지친 듯 아쉬운 듯 베니스 해변을 맴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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