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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운때가 맞아야…묘수는 간혹 써야 성공

중앙일보 2015.06.20 15:02



세상을 바꾼 전략 <20> 마키아벨리가 주는 교훈
묘책은 드물게 쓸수록 효과적
자주 필요할 정도로 운 나쁘면
헤어나기 쉽지 않다는 반증
대부분은 기본에 충실한 자 승리

지금으로부터 꼭 488년 전인 1527년 6월 21일 『군주론』으로 유명한 니콜로 디 베르나르도 데이 마키아벨리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작 대부분은 사망 후에야 출간됐는데 그마저도 1557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교황청의 금서목록에 포함됐었다. 신을 부정하고 권모술수를 조장할 뿐 아니라 정치를 종교로부터 독립시키고 교황·추기경을 비롯한 지도자의 위선(僞善)을 폭로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글들은 생전에 자기를 알아주지 않던 명분적인 중세 세상을 실리적인 근대 세상으로 바꾸는 물꼬를 텄다. 미국건국의 아버지, 프랑스혁명 지도자, 소련공산당 지도자 등이 마키아벨리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죽은 제갈량이 살아있는 사마의 군대를 한차례 쫓아낸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죽은 마키아벨리는 결코 쇠퇴할 것 같지 않던 전(前)근대적 질서를 해체해버렸다.



마키아벨리주의, 마키아벨리주의자, 올드 닉 등 마키아벨리에서 따온 용어는 각각 권모술수, 권모술수자, 악마 등 모두 그 의미가 부정적이다. 부자와 빈자 모두 각각 자신의 부와 자유를 빼앗는 방법을 마키아벨리가 가르쳤고, 또 선인과 악인 모두 자신의 행동을 마키아벨리가 각각 위선과 악행으로 매도하거나 노출시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리적 근대로 바꾼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주의는 별개의 의미다.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를 권고한다는 점에서 위선의 효용을 인정했다. 위선이 통하는 세상이라고 주장하면 위선자일까? 마키아벨리의 저술행위 자체는 마키아벨리적이지 않다. 위선을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행위 자체는 위선이라기보다 겉모습만 악에 가까운 위악(僞惡)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위악은 단순화된 표현에서 연유할 때가 많다. 일부에게 맞는 말이지만 모두에게는 맞지 않음에도 단정하는 수사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런 노골적 표현들은 하나마나한 말 대신에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마키아벨리의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너무 솔직하게 발언했다가 곤경에 처한 경우는 허다하다.



마키아벨리 글을 비판하면 마키아벨리주의자가 아닐까? 마키아벨리 글들을 금서목록에 올린 교황청 외에도, 마키아벨리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지도자는 적지 않다. 『반(反)마키아벨리론』을 집필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대왕)가 그 대표적 예다. 사람들이 욕하면서도 따라하는 것처럼, 프리드리히 2세의 통치스타일은 세월이 갈수록 『군주론』 방식이었다.



위선과 위악 중 어느 것이 더 악일까



진짜 위선자는 위선이 통한다고 주장하지도 않고 또 동의하지도 않는다. 위선이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지 않고 그냥 묵묵히 위선을 실천할 뿐이다. 위선에 대해 언급해야 할 상황이라면 자신은 그냥 사람들을 믿는다고만 대답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을 탐욕·변덕·배신·기만·위선 등 즉 성악설에 가깝게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률을 초월하여 행동할 것을 주문했다. 이런 주문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마키아벨리를 반(反)도덕주의자로 부르고, 옹호하는 측에서는 초(超)도덕주의자로 부른다.



위선과 위악 가운데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일까? 노골적으로 악한 행위보다 차라리 위선적이더라도 겉으로 선한 행위가 사회적 선의 실천 가능성을 대체로 높인다. 특히 마키아벨리 글을 탐독하여 사소한 일에도 온갖 권모술수를 쓰는 사람도 있으니 이는 마키아벨리론의 부작용이다.



행동의 차원과 달리, 분석의 차원에서는 위선을 드러내는 것이 사회적 선의 실천 가능성을 높인다. 대중이 권력자의 위선적 행위를 인지하게 되면 위선의 효능은 감소한다. 마키아벨리 덕분에 지도자의 위선적 행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어 마키아벨리주의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모던 정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인간은 대체로 이기적이다. 생존에 유리한 이기적 인간은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전제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경제학 또한 마키아벨리의 후예다. 그러다 보니 정치경제적 사고를 가진 사람일수록 이기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선입관이 많다.



이런 선입관에 대해 일부 경제학자가 실증적으로 반박했다. 말로 하는 이기주의 그리고 행동으로 하는 이기주의는 별개의 것임을 보여줬다. 한 조사에서 이기심을 전제한 과목의 수강 대학생 그리고 그렇지 않은 과목의 수강 대학생을 대상으로 돈을 습득했을 때 돌려줄 의사를 물었더니, 돌려준다는 비율은 이기심 전제 과목의 수강생들이 낮았다.



그런데 실제 10달러가 든 봉투에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여 강의실에 놓아둔 후의 회수율은 오히려 이기심 전제 과목의 수강생이 그렇지 않은 과목 수강생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유사한 결론은 다른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대부분 학회의 회비는 회원 본인이 자기 소득에 따라 회비액수를 선택하여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 소득에 합당한 학회비를 납부한 비율은 이기심을 전제하는 학문에서 더 높았다.



이 두 조사가 엄격하게 수행된 것이라면, 이기심을 인간의 본성으로 받아들일수록 정직한 행동을 한다는 의미다. 권모술수에 대해 말한다고 해서 자신이 직접 권모술수의 행동을 반드시 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마키아벨리의 저작은 권모술수로 가득 차있지만 마키아벨리 본인의 권모술수 행동은 별로 전해져오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권모술수자로 평가되는 인물들은 막상 권모술수를 남에게 권고하지 않았다.



본인의 처세엔 능하지 못했던 마키아벨리



음모에 대해 공공연하게 분석하는 사람들은 음모를 행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흔히 동양의 마키아벨리로 불리는 한비자가 그런 예다. 한비자의 세 가지 통치 개념 가운데 하나인 술(術)은 주로 권모술수 기법에 관한 것이다.



진시황이 한비자를 중용하려 했는데 순자 밑에서 한비자와 함께 공부한 이사는 한(韓)나라 왕족인 한비자가 진나라에 충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모함하여 한비자는 투옥되어 자결하게 되었다.



음모론 전문가가 음모에 희생된 것이다. 한비자의 법가적 통치방식을 따랐다고 볼 수 있는 진이 망하고 한(漢)나라가 들어서자 유교가 법가를 대체하게 되었다. 이로써 동아시아에서는 노골적인 것보다 위선이 한 수 위로 작동하게 되었다.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에 발탁되기 위해 『군주론』을 집필했다는 사실은 마키아벨리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군주론』의 헌정사는 발탁되어 일하고 싶음을 드러낸 솔직한 글이지 권모술수의 행동은 아니다. 자신의 소신과 관찰력을 그대로 보여준 것뿐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처음 헌정하려던 메디치가 지도자는 교황 레오네 10세의 동생인 줄리아노 데 메디치였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의 친구 파올로 베토리가 줄리아노의 새 보좌관이 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16년 줄리아노가 사망하자 『군주론』은 피렌체의 새로운 지도자 로렌초 데 메디치(1492년생)에게 헌정됐다. 물론 로렌초가 『군주론』을 읽었다는 얘기는 없다.



로렌초가 1519년 사망하자 레오네 10세의 사촌이자 로렌초의 오촌당숙인 줄리오 데 메디치 추기경이 피렌체를 통치하게 되었다. 줄리오는 공화주의적 성향을 가끔씩 드러낸 마키아벨리를 별로 믿지 않았다.



마키아벨리에게 정무직 대신에 『피렌체논고』와 『피렌체역사』를 집필하는 직책을 맡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에 중용되기를 원했지만, 메디치가는 마키아벨리를 중용하지 않았다.



실제 권모술수에 반대되는 통치를 한 것도 아닌 메디치가는 마키아벨리의 제안들을 이미 익히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자와 가까이 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꼈을 수도 있다.



줄리오는 교황 클레멘스 7세로 즉위한 후 1526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반(反)메디치 소요를 겪었고 결국 피렌체는 공화정으로 돌아갔다.



공화정은 마키아벨리의 본래 구상이었기 때문에 공화정 피렌체는 마키아벨리가 국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클레멘스 7세 때 봉직했다는 이유로 공화정에서 배제됐고 이에 충격을 받아 앓다가 세상을 떴다.



각종 처세술 문헌에서 마키아벨리를 자주 언급하고 있지만 정작 마키아벨리 본인은 처세에 능하지 못했다. 마키아벨리는 명예를 중시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마키아벨리는 『전술론』에서 프로스페로 콜론나의 사촌 파브리치오를 호평한 바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파격적인 조건으로 콜론나의 중용 제의를 받았다.



마키아벨리는 콜론나의 서기장 대신 낮은 보수의 피렌체역사 집필 업무를 맡았다. 즉 그의 삶은 자의든 타의든 마키아벨리적이지 않았다.



人災는 정책이나 전략으로 해결 가능



마키아벨리·한비자·사마천 등 권력정치를 강조했던 사상가들 모두 처세를 잘하지 못해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마키아벨리·사마천·정약용·김만중 등은 모두 세상에서 버려졌을 때 집필에 집중하여 후세에 남을 고전을 대거 저술했다.



『군주론』 헌정사는 “만일 전하께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리시면 제가 그동안 부당하게도 지속적인 큰 악운에 시달려왔음을 아시게 되실 것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본인이 출세하지 못한 이유를 불운으로 표현했다. 운을 의미하는 마키아벨리의 개념 포르투나는 결국 능력이나 실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니 운칠복삼(運七福三)이니 하는 표현처럼 전략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묘수를 많이 쓰면 대개 진다. 간혹 쓰는 것이 묘수이지 자주 쓰게 되면 그 일부는 패착일 수밖에 없다. 기발한 전략일수록 아주 드물게 써야 효과적이다. 묘책을 여러 번 써야 할 정도로 운이 나쁘면 헤어나기 어렵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전략도 운때가 맞아야 한다. 운때가 맞지 않으면 어떤 전략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결국 대부분은 기본에 충실한 자가 승리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러 고난을 겪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고난의 사다리를 탈수록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봤다. 천재(天災)가 포르투나의 탓이라면 인재(人災)는 정책이나 전략으로 해결할 몫이다. 인재가 자주 발생하는 요즘, 우리 스스로 나아질 수 있는 여지는 크다.



김재한 한림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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