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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소낙비가’ … 뛸내기를 시켰습니다 … 일제 암흑기 속에서도 빛난 말글

중앙일보 2015.06.20 00:47 종합 19면 지면보기


호박꽃 초롱

다시 펼치는 동시집 <3> - 100살 맞은 강소천

강소천 시, 표지 정현웅

본문 그림 김영덕

재미마주, 132쪽, 1만1000원




어떤 이들에게는 추억의 동시일지도 모르겠다. 닭이 고개를 까닥이며 물 마시는 장면을 어쩌면 요렇게 표현했을까. 강소천(1915∼63)이 스물한 살에 발표한 동요시다. 강소천은 첫 시집 『호박꽃 초롱』(박문서관)에도 이 시를 수록했다. 강소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최근 이 시집이 복간됐다. 74년 전 책이지만 그 시선(視線)도, 시어(詩語)도 여전히 빛난다. 이런 시도 있다. “장난꾸러기 소낙비가/ 길 가는 사람들을 뛸내기를 시켰습니다.”(‘소낙비’ 전문, ‘뛸내기’는 ‘누가 먼저 뛰어가나 하는 내기’)



 책이 나온 해인 1941년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일제 강점기, 우리 말·글 사용조차 자유롭지 못하던 때였다. 표지는 화가 정현웅(1911∼76)이 그렸고, 서시(序詩)는 강소천의 함흥 영생고보 은사 백석(1912∼96)이 썼다. “한울은/ 풀 그늘 밑에 삿갓 쓰고 사는 버섯을 사랑한다./ 모래 속에 문 잠그고 사는 조개를 사랑한다./ 그리고 또/ 두툼한 초가지붕 밑에 호박꽃 초롱 혀고 사는/ 시인을 사랑한다…한울은/ 이러한 시인이 우리들 속에 있는 것을 더욱/ 사랑하는데/ 이러한 시인이 누구인 것을 세상은 몰라도 좋으나/ 그 이름이 강소천인 것을 송아지와 꿀벌은 알을 것이다.”(백석, ‘『호박꽃 초롱』 서시’ 끝부분)



 세 사람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는다. 강소천은 1·4 후퇴 때 흥남부두에서 배편으로 단신 월남하고, 정현웅과 백석은 북에서 활동했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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