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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위기의 순간 심리 발달을 이룬다

중앙일보 2015.06.20 00:12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형경
소설가
사적인 자리에서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주제를 화제 삼는 경우가 있다. 정치적 혼돈 양상 앞에서, 경제 위기가 닥칠 때, 국민이 불안감에 휩싸이는 사건이 터졌을 때 나 역시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의 미래는?” 같은 질문을 테이블에 올려 본다. 우리나라는 휴전국, 전쟁을 잠시 쉬는 중이다. 불꽃을 뿜는 활화산 아랫마을 주민들처럼 불안에 무감각해지거나 근거 없는 낙관성을 발달시켜야 했다. 그랬기에 크고 작은 사건 앞에서 내면에 억압해 둔 불안감이 큰 위기감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은 처음에 주로 유년기·청소년기 인간 발달 과정을 연구했다. 이후 문화인류학과 정신분석학을 함께 연구한 에릭 에릭슨은 개인의 심리 성장은 사회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성인이 된 후 삶의 과정에서도 인간 정신은 계속 발달한다는 사실을 제안했다. 사회학자 대니얼 레빈슨은 개인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밟아 가는 심리 발달 과정을 연구했다. 인간은 생애 기간 동안 네 번의 전환기를 맞으며, 그때마다 불안과 무력감 같은 심리적 위기를 겪는다. 그 같은 위기의 시간마다 자기 정체성을 점검하고 삶의 방향을 모색해 다음 단계 삶에 필요한 심리 기능들을 확보한다. 그렇게 나이에 맞는 성인 발달 단계를 잘 이행하면 마지막에 “다음 세대를 지도하는 원숙함과 따듯함의 시기”에 도달한다.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세계 대중문화는 30대 중반 나이 수준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걸그룹, 게임, 미니어처 수집에 열광하는 우리 문화는 몇 살쯤일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그런 방법으로 보살펴야 하는 트라우마, 정체된 내면이 있다는 뜻이다. 그들도 삶에 위기가 닥쳐 오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성장의 다음 걸음을 내디디게 된다. “역경(逆境)에서 수행한다”는 불가의 관용어도 어려운 순간이 오면 그것이 곧 지혜를 닦을 시기임을 알아차리라는 뜻일 것이다.



 똑같은 논리가 사회에도 적용된다. 집단은 주기적으로 번영과 위기의 시기를 번갈아 가며 맞이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넘기는 과정에서 지혜와 근력을 키워 이전보다 안정되고 성숙한 사회로 발달해 간다. 메르스 사태 초기에 우리 사회는 느닷없는 위기 앞에서 혼돈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곧 지혜를 되찾아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위기를 넘기면서 우리 사회는 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게 될 것이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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