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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아들아, 제대로 놀아보자

중앙일보 2015.06.20 00:08 종합 2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다음은 나와 아이의 잘 놀아 보기 분투기다.



 우선 놀이공원. 이름에 ‘놀이’가 있는 만큼 잘 놀 수 있는 곳이라 믿었다. 그러나 아이가 스스로 걷거나 뛰어다닌 건 몇 발짝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른끼리도 몇 걸음 만에 부딪힐 만큼 복잡했다. 아이를 대부분 안고 다녔던 이유다. 유모차를 3000원에 빌려 주는 걸 발견한 뒤에는 안고 다니지도 않았다.



 다음은 집 앞 놀이터. 여기는 반대로 친구가 없다. 아이 혼자 그네며 미끄럼틀을 타며 몇 바퀴씩 돈다. 겨우 만난 또래 아이의 할머니가 물었다. “집으로 학습지 선생님 오는 거 혹시 해요?” 놀 맛이 뚝 떨어졌다. 우리 아이는 24개월이다. 아이가 더 크면 어떨까. 36개월부터 영재 테스트, 반 편성을 하는 이 도시에서 말이다.



 키즈카페도 들러 본다. 여기에서는 안전하게(어른들의 시야 내에서) 올바른(어른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다. 강남 키즈카페의 경우 한 시간에 1만원 정도다. 시간이 넘어가면 추가 요금을 낸다. 놀이비용이 주차비처럼 올라간다. 어른 머릿수대로 식사를 시켜야 하는 키즈카페도 있다. 아이를 놀게 하기 위해 배불러도 또 먹어야 하는 심정은 겪어 봐야 이해한다.



 역시 이름에 놀이가 들어가는 놀이학교는 어떤가. 내가 어렸을 때 왜 없었을까 싶은, 천국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는 일반 어린이집보다 몇 배 비싼 보육시설이다.



 놀기가 힘들다.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는, 24개월 아들의 에너지를 건강하게 발산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엄마들을 유혹하는 ‘놀이수학’ ‘놀이영어’만 봐도 놀이는 수단일 뿐 목적일 수 없는 듯하다.



 놀지 못하면 불행하다는 데 말이다.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쓴 『타임 푸어』는 미국의 국립놀이연구소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쥐의 놀이를 실험했다. 쥐들에게 고양이 냄새를 맡게 했더니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격히 올라갔다. 그런데 그전에 잘 놀아 놓은 쥐들은 곧 호르몬이 낮아지고 평정심을 찾았다. 스트레스를 다스렸다는 거다. 놀이가 살아갈 힘을 길러 준다. 이 연구소에서 ‘잘 놀았다’고 보는 요건은 넷이다. 놀이는 자유롭고, 정형화되지 않고, 거칠며, 활동적이어야 한다.



 우리 아이가 놀러 갔던 곳은 정확히 반대다. 어른들이 정한 틀 안에서 안전하게 노는 곳들이었다. 가만 보니 아이들끼리 알아서 잘 노는 시대는 아무래도 끝난 것 같다. 이제는 놀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기를 쓰고 놀아도 잘 놀기 힘들다. 그래도 끝까지 도전해 보려 한다. 저러다 속수무책으로 어른이 되면 놀이는 영원히 남의 이야기가 되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글=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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