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대립의 양당정치 극복 없이 한국의 미래 없다

중앙일보 2015.06.20 00:02 종합 27면 지면보기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우리의 양당정치 이대로 괜찮은가’. 식자들 모임에서 자주 듣는 소리다. 지금의 양당체제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가 눈길을 끈다. 국회가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5%,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88%다. 양당정치의 극심한 대립이 그 원인이라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말대로 ‘우리 정치가 철저한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국가, 사회적 이슈가 양당의 진영논리로 재단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반해 그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여야 간의 합의다. 일각에서는 주고받기 식의 합의를 야합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론은 이런 합의 자체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극한 대립에 신물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정치에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하나는 ‘다수결 주의’를 기초로 하는 양당제의 모델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앵글로색슨 계통의 나라들에서 시행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합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다당제의 모델이다. 독일이나 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 지금 세계적인 추세는 다당제에 기초한 합의제 모델로의 이행이다.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양자택일의 선택지로는 다양한 유권자들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당제는 수(數)의 논리에 의한 대결정치의 위험이 큰 데 반해 다당제는 토의와 타협에 의한 합의의 정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양당정치가 다수결 논리와 극한투쟁의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당은 ‘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동맥경화증 집단’이라거나, 혹은 ‘계파정치에 매몰된 이권집단’ 등으로 비난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합의제적 다당제로의 이행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불평, 불만, 압력이 아무리 거세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당정치 구도가 그들의 기득권을 담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제3극의 정치세력이 끼어들기가 쉽지 않은 구도다. 지난 4월 보궐선거에서 진보세력의 통합을 내걸었던 국민모임의 참패를 보라.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들 양대 정당이 끌어들이지 못하는 다양한 이익이 존재하고 있다. 다당제라면 제3극의 정치세력이 새로운 정책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이런 이익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소선거구제의 양당제에서는 제3극 정당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서로 길항하는 양대 정당 사이에서 자신이 제휴한 정당을 다수파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1997년 대선에서 자민련이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이다. 하지만 소선구제에서는 선거 결과의 진폭이 거대정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제3극 정당이 캐스팅 보트를 쥐기란 쉽지 않다.



 물론 이론적으로 볼 때 양당제는 원활한 정권교체와 정치적 안정에 유리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양당제 모델 국가인 영국을 보라.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른바 ‘공중에 매달려 불안정하게 흔들거리는 의회(hung parliament)’가 탄생했던 것이다. 이는 호주에서도 나타난 현상이었다. 양당제의 본모습이 변질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양당정치는 극한대립의 정치를 야기하기 쉽다. 여야 대결로 정부를 마비시킨 미국의 양당제 정치는 그 대표적인 예다. 합의의 도출보다는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극한투쟁을 벌이는 양당제 정치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남의 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양당제 정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유권자의 가치관이나 이익이 다양해지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여전히 양자택일만을 강요하고 있다. 투표율이 50%대에 맴돌고 있다. 국민의 절반이 양당의 선택지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이제 정당들은 양자택일적인 ‘선택‘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다양한 의견이나 이익의 ‘집약’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런 집약 기능은 양당제하에서는 불가능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최신 저서에서 모델 국가로 덴마크를 들고 있다.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민주적이며, 안전하고, 부패가 적은 훌륭한 협치’의 국가이기 때문이라 했다. 어떻게 이런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을 역임한 라스무센 전 덴마크 총리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의 답은 매우 시사적이었다. 10개가 넘는 다당제하에 형성된 ‘타협과 합의의 문화’ 덕분이라고 했다(서울경제신문 5월 28일자).



 양당제 정치의 문제가 너무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우리 정치다. 합의의 정치를 가능케 할 다당제로의 이행을 심각히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