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 tech NEW trend] 압축, 성장

중앙일보 2015.06.19 00:55 경제 2면 지면보기
SM5 TCE 1,600㏄ 직분사 터보 엔진(앞)은 기존의 2000㏄ 가솔린 엔진(뒤)보다 출력이 30% 높다. 연비는 13㎞/L에 이른다.


르노삼성차가 지난해 7월 1500㏄급 엔진을 얹은 SM5 디젤 차량을 출시하자 들썩인 건 택시업계였다. 연비가 16.5㎞/L로 국산 디젤 ‘중형차’ 중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엉뚱한 데서 발생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1600㏄ 미만 차량을 ‘소형차’로 분류한 점이었다. 여기 따르면 SM5 디젤은 일반 중형택시보다 기본요금만 500원 이상 낮은 소형택시 요금을 받아야 했다. 당장 택시업계에서 “중형차 체격에 힘도 좋은데 소형 엔진을 달았다는 이유로 소형차로 분류해선 안된다”며 들고 일어났다. 결국 국토교통부는 배기량 뿐 아니라 차의 크기까지 고려해 택시 차급을 분류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4월 입법예고했다.

차량 다운사이징 기술 경쟁 시즌2
2000 → 1600㏄ SM5, 출력 30% 향상
아우디 A6, 500㏄ 줄여도 70마력 ↑
고압 연료와 공기 잘 섞는 직분사
가스·공기 쓰는 터보차저가 핵심



 승용차를 배기량을 기준으로 구분한 경차·소형차·중형차·대형차 간 칸막이가 깨진지 오래다. 엔진 ‘다운사이징’(downsizing)에 한창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1400㏄급 준중형차’ ‘1500㏄급 중형차’ ‘2000㏄급 대형차’를 속속 출시하면서다. 아우디 관계자는 “다운사이징을 강화하면서 차량 뒷면에 배기량을 표시하는 관행을 없앴다. 대신 소비자가 차량을 운전할 때 느낄 수 있는 가속감을 숫자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다운사이징은 엔진을 소형화하면서 기존보다 높은 힘(마력·토크)을 내는 기술이다. 그래서 보통 자동차 엔진에 ‘터보’란 이름을 붙인다. 큰 엔진은 힘이 좋지만 연비가 나쁘고, 작은 엔진은 연비는 좋지만 힘이 달리는데 엔진 기술이 발전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됐다. 작고 빠른 컴퓨터 개발을 주창한 미국 IBM사의 연구원 헨리 다운사이징의 이름에서 따왔다.



 다운사이징을 하면 자연스럽게 연비를 개선하고 배기가스를 줄일 수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배기량을 3분의 2로 줄이면 연비를 15%, 절반으로 줄이면 연비를 25%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친환경 추세에 따라 다운사이징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배기량이 줄어 낮은 차급으로 분류되면 세금도 아낄 수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다운사이징 추세에 따라 3기통 엔진차의 시장 점유율이 올해 9.6%에서 2022년 16.1%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 중에선 르노삼성차가 다운사이징에 적극적이다. 2013년 6월 출시한 1600㏄ SM5 TCE 모델은 2000㏄ 기존 모델보다 출력이 30% 높은 190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연비는 13㎞/L다. 대형차인 SM7은 2500㏄ 엔진을 얹었다. 3300㏄ 이상 엔진이 대부분인 국내 6기통 대형차 중 2000㏄대 엔진은 SM7이 유일하다. 르노삼성 측은 “내년에 엔진을 더욱 다운사이징한 모델을 포함한 중형 신차를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쏘나타도 1600㏄ 터보 모델 출시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이달 중 중형차급 대표 모델인 쏘나타의 엔진을 1600㏄로 다운사이징한 터보 모델을 출시한다. 1985년 출시한 이래 1600㏄ 엔진을 단 쏘나타는 처음이다. 기아차 K5도 다음달 중 1600㏄ 모델을 선보인다. 한국GM은 지난해 준중형차인 크루즈에, 올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트랙스에 각각 1400㏄ 엔진을 얹었다.



 수입차 브랜드 중에선 폭스바겐이 대표주자다. 2006년부터 준중형차 골프에 TSI란 이름의 터보 엔진을 적용했다. 이 엔진은 ‘터보차저’(엔진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재활용해 터빈을 돌리고 새로 흡입한 공기를 압축시켜 연소실로 보내 더 많은 연료를 쓸수 있도록 하는 장치)와 ‘수퍼차저’(엔진에서 공급받은 동력으로 공기를 압축해 엔진에 공급)를 동시에 활용한다. 2400rpm 이하에선 수퍼차저만, 2400~3500rpm에선 터보·수퍼차저를 동시에, 그 이상에선 터보차저만 구동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높였다.



 아우디는 1989년 2461㏄ 직렬 5기통 엔진을 달고 최고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27㎏·m을 내는 아우디 100(아우디 A6의 전신)을 첫 출시한 이래 다운사이징에 주력해 왔다. 그 결과 지난달 국내 출시한 모델이 뉴 아우디 A6 35 TDI다. 1968㏄ 직렬 4기통 엔진으로 다이어트했지만 190마력, 40.8㎏·m 토크 성능을 낸다. 2967㏄ 6기통 엔진을 얹은 뉴 아우디 a6 40 TDI 모델은 218마력, 51㎏·m 토크 성능을 갖췄다.



 BMW도 중형 세단인 5시리즈 엔진을 3000㏄에서 2000㏄대로 줄였다. 대형 세단인 7시리즈의 경우 10년간 배기량만 1400㏄를 다이어트했다. 소형차급인 3시리즈 후속 모델엔 1400㏄ 엔진을 얹을 계획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고성능 차량인 AMG 63 모델의 엔진을 6000㏄에서 5000㏄로 줄였다. 향후 AMG 전 모델에 다운사이징 엔진을 적용할 계획이다.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주력하는 토요타도 다운사이징엔 예외가 아니다. 2017년 적용을 목표로 현재 20~30% 수준인 열효율을 40%까지 끌어올린 3종의 신형 다운사이징 엔진을 개발중이다. 올해 출시 예정인 중형 세단 캠리에도 기존 6기통 엔진 대신 4기통 터보 엔진을 얹는다. 혼다는 터보차저 연구개발·생산에 연말까지 3억4000만달러(약 3800억원)를 투자한다. 올해 출시할 준중형차 시빅에 기존 1800㏄ 엔진 대신 1500㏄ 엔진을 적용한다. 미국차 브랜드인 포드도 전체 차종의 80% 이상에 다운사이징 엔진인 ‘에코부스트’를 도입할 계획이다.



 과거 다운사이징이 배기량을 ‘다운’시키기보다 같은 배기량을 내는 엔진의 출력을 높이는데 집중했다면 최근엔 대형 엔진의 높은 성능을 소형 엔진을 통해 구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직분사(Direct injection·고압 연료를 연소실 내에 직접 분사해 연소실 내부 공기와 연료를 잘 섞이도록 해 효율을 높이는 방식) 엔진과 터보차저가 최근 다운사이징의 핵심 기술이다. 여기에 각 업체별 기술력을 얹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는 정보기술(IT) 강점을 활용한 전자식 컨트롤 시스템을 적용해 일정 압력 이상의 공기가 연소실로 흡입하는 것을 막는 직분사 엔진을 쓴다. 연소실 배기통로를 2개로 나눈 ‘트윈 스크롤 터보차저’도 적용했다. 이렇게 하면 실린더간 배기 간섭을 줄일 수 있다. 토요타는 직분사 엔진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감속할 땐 연료를 간접 분사하고, 속도를 낼 땐 연료를 직접 분사하는 기술을 적용한 엔진을 개발 중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터보차저를 단 차에서 가속 지연 현상이 일어나거나, 배기 라인이 과열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하지만 기술 개발로 이같은 단점을 극복했다. 최근엔 양산 엔진에 터보차저만 얹는 방식이 아니라 엔진 개발 초기부터 터보차저를 적용해 하나의 유닛으로 만드는 추세다.





같은 용량 엔진서 힘 키우던 ‘시즌1’ 끝나



 다운사이징이 만능은 아니다. 소형 엔진에서 높은 출력을 내는 데 따른 엔진의 내구성 문제, 자동차 업계가 다운사이징에만 치중하고 튼튼한 차체 개발에 소홀하다는 문제가 지적된다. 막대한 연구 개발비를 투자해야 하는 하이브리드차·전기차 개발 대신 상대적으로 쉬운 다운사이징 기술 개발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우명호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자동차는 균형이다. 엔진 성능뿐 아니라 변속기·트랜스미션 같은 장치의 성능을 높이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힘을 쥐어짜내는’ 다운사이징 소형 엔진에서 느낄 수 없는 넉넉한 힘의 대배기량 엔진을 고수하는 브랜드도 있다. 다운사이징이 따라잡을 수 없는 ‘주행감성’이나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중시하는 스포츠카·하이엔드차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최근 출시한 포르쉐 911 GT3 RS 모델 경우 911 시리즈 사상 가장 큰 3996㏄ 엔진을 탑재했다. 차값이 3억4000만원에 이르는 벤틀리 뮬산도 6752㏄ ‘빅사이즈’ 엔진을 고수하고 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