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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난민신청 치솟는데 바닥 기는 난민인정률

중앙일보 2015.06.19 00:49 종합 29면 지면보기


백민정
사회부문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태어난 한국은 동성애로 박해받는 나를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성애자인 알제리 남성 A씨가 5년 전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행(行)을 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하지만 한국에 입국한 그는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살아야 했다. 2013년 청주의 외국인보호소에 난민신청을 했으나 결과는 ‘불인정’이었다. 법무부에 낸 이의신청도 기각됐다.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A씨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알제리에서 동성애자란 이유만으로 핍박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동성 친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경찰에게도 뜨거운 물세례를 받았고….”



 청주지법은 지난달 28일 “A씨가 알제리로 돌아갈 경우 박해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법무부의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올 들어 4월까지 난민으로 인정된 19명 중 한 명이다. 같은 기간 1221명이 난민신청을 했다. 대다수가 계속 숨어 지내거나 출국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1993년 ‘유엔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한국은 2013년 7월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난민 신청은 급증했다. 2010년 423명이던 난민 신청자는 2013년 1574명, 2014년엔 2896명에 달했다. 반면 난민 인정률은 2010년 11.1%에서 2012년 5.2%, 2014년 3.2%로 떨어지고 있다. 난민법 시행 후 오히려 난민으로 인정받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 원인은 뭘까. 우선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난민신청을 하면서 난민 심사가 까다로워졌다. 법무법인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불법 체류 노동자들이 난민신청을 하는 건 법무부 심사·행정소송을 거치며 최소 2~3년은 한국에 더 머물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 결과 난민신청 자체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심사 인력 부족도 문제다.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난민신청 건수는 느는 데 법무부 난민심사관 수는 그대로여서 심사가 1년 넘게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난민신청자는 생계비·취업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으나 예산 부족으로 전체의 10% 정도만 혜택을 보고 있다.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다. 인종, 종교, 정치적 견해에 따른 박해를 피해 지금도 누군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을 것이다. 두 번 박해받는 난민이 생기지 않도록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할 때다.



백민정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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