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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더 늦었더라면 우리 딸도 저랬을까

중앙일보 2015.06.16 00:02 종합 31면 지면보기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천재 소녀 명문대학 허위 입학 소동’을 보며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문제의 발단은 피아노 선생님이 던진 ‘음악에 소질이 있으니 잘 키워 보세요’. 이 말 한마디. 내 꿈이 딸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만 해도 벅찼다. 곧바로 프로젝트 돌입. 초등학교 2학년부터 근 6년간 모든 걸 바쳐 딸에게 ‘올인’했다. 그 덕(?)에 큰딸과 남편은 늘 외로워했고, 수입의 대부분은 레슨비, 협연 등으로 지출됐으니 여가 즐기기는 언감생심. 하지만 다들 참아내야 했다. 집안에 정명훈 같은 피아니스트가 나온다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협연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무대의상에 하나하나 구슬을 붙이는 내게 쏟아놓은 작은딸의 폭탄 선언. ‘엄마는 재밌어? 근데… 난 아무래도 피아니스트는 좀 힘들 것 같아. 나 다른 거 하면 안 돼?’ ‘너 소질 있다잖아 좀만 참아. 커서 엄마한테 고마워할 거다’.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엄마를 좌절시키고 싶진 않고, 피아노 치기는 싫어도 피아니스트 되고는 싶어 밀리고 밀려 일단 여기까지는 왔건만, 현실은 되고 싶다고 또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가문의 영광이 될 피아니스트만을 기대하며 이제껏 희생한 온 식구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고’. 울면서 털어놓은 딸의 하소연이다.



 피아니스트는 내 딸 것이 아닌 나의 꿈이란 걸 잊었다. 그 협연을 마지막으로 딸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지금도 즐겁게 잘살고 있다. 허황된 꿈 내려놓기를 조금만 늦게 했더라면. 끔찍하다. ‘농담 같은 거짓말’로 엄마 기쁘게 하는 걸 시작했다가 차츰차츰 그 천재 소녀같이 됐을지도.



 미국 텍사스 모 대학 유학 시절. 유학생 한 명이 한 학기 끝내고는 생을 마감했다. 예일대 입학 허가도 받았지만 학비가 비싸 포기해 놓고선 미련이 남아 한 학기 끝나면 그곳으로 편입하려 했는데 성적이 엉망이라 자살했단다. 포털 인물사전. 이름 넣자마자 곧바로 학력이 따라 나온다. 명문 출신이면 일단 한 수 먹고 들어간다. 이런 것이 우리 스스로에게 학력으로 먼저 평가하도록 부추기는 건 아닌지.



 ‘천재 소녀 명문대학 허위 입학 소동’. 우리나라의 이 ‘미친 교육열’을 그들은 아마 상상도 못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 알겠지 싶다. 모든 정성 다 바쳐 자식 교육에 ‘올인’하는 진정한 이유는 뭘까. 자식의 행복? 부모 착각일지 모른다. 예전 나같이 말이다. 이참에 어디든지 학력 먼저 기재하는 습관(?)부터 바꿔 보면 어떨까.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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