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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의 한국인은 왜] 메르스에게 배워야 할 것들

중앙일보 2015.06.15 00:56 종합 28면 지면보기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멸균하지 않은 낙타유를 마시면 위험하다는 걸 몰랐다. 기압차를 이용해 외부 감염을 막는 음압(陰壓)병상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기침을 할 땐 팔꿈치로 막아야 민폐가 아니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게 많다는 것만 알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라는 귀에 선 단어를 들었을 때만 해도, 지하철 안에서 재채기를 했다는 이유로 옆자리 아저씨가 나를 째려볼 줄은 상상 못했다. 다리를 쩍 벌린 채 ‘쓰읍쓰읍’ 괴음을 내면서 젊은 여성 승객을 끈적하게 훑어보는 아저씨들을 째려보는 건 내 몫이었는데. 메르스 전후의 지하철 풍경 속에서 왠지 조금 억울하다. 하지만 내 억울함은 명함도 못 내민다. 메르스 쓰나미로 관광객이 절반 이상 줄었다며 울상인 인사동 식당 주인 아주머니나, “사람들이 밖에 안 나오니 차가 뻥 뚫리는 건 좋은데 손님이 30% 떨어져 힘들다”며 한숨 쉬는 택시기사님만 하랴. 이 땅에서 자랐는데도 낙타라는 이유만으로 격리당했던 서울대공원 낙타는 또 어떠랴.



 모두가 모두를 못 믿고, 미워하고, 의심한다. 메르스보다 이게 더 무섭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건 독일 여성과 20세 연하 모로코 청년의 관계를 다룬 1974년작 독일 영화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 전역에서 불안은 나와 내 옆자리 승객, 뒷자리 손님의 영혼까지 좀먹고 있다. 메르스라는 씨앗이 불안을 거름 삼아 적대감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는 듯하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불안의 철학’이라는 게 있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1813~55)는 불안을 중요한 철학적 문제로 인식했다고 한다. 키르케고르 식 불안의 철학엔 희망의 싹이 있다. 그는 “인간은 불안의 교화(敎化)를 받아 화해를 이루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불안’이라는 감정을 똑바로 마주함으로써 자기와 타인 간의 화해를 이룰 수 있다고 받아들이면 지나친 해석인 걸까. 메르스발(發) 불안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메르스에게 뭘 배웠다고 해야 할까. 서로를 미워하는 법, 째려보는 법만 배우면 왠지 몽골 낙타만큼은 아니어도 억울하지 않은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단골 북카페의 직원이 힌트를 줬다. 메르스 사태 이후 ‘침 튐 방지 플라스틱 보호대’를 하고 주문을 받는 그는 “불편하겠다”는 인사치레에 싱긋 웃으며 답했다. “손도 더 잘 씻게 되고, 더 깨끗한 카페를 만들 수 있어 좋은 걸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만들어내는 이곳. 평생 단골 할 생각이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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