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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 <271> 중견국 외교

중앙일보 2015.06.15 00:04 경제 8면 지면보기
유지혜 기자
요새 외교가에서는 ‘중견국 외교’가 화두 중 하나입니다. ‘고래’로 비유되곤 하는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한국이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주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중견국 외교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외교정책의 주요 기둥이자 꾸준히 추진해야 할 방향이라는 측면에서 중견국 외교에 대한 이해는 중요합니다. 중견국 외교를 잘 하는 나라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캐나다 ‘인간 안보’ 북유럽 ‘개발 원조’… 특화된 중견국 외교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한국이 주도하는 중견국 협의체 ‘믹타’(MIKTA·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의 영문 국명 앞글자) 국가 외교장관들이 지난달 말 서울에 모였다. 하지만 ‘중견국 외교’는 아직 많은 국민에게 생소한 개념이다. 중견국 외교에 나오는 ‘중견국’의 정의는 뭘까. 사실 중견국을 정의하는 공식적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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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이후 ‘중견국’ 개념 등장



 중견국(middle power)이라는 개념이 처음 체계적으로 사용된 것은 근대 외교조약의 효시로 불리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다. 중견국의 역할이 현실화한 것은 19세기 유럽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전후 처리 협상을 위해 열린 비엔나회의(1814~15)와 8국위원회에서 영국·프랑스·프로이센·러시아·오스트리아 등 5대 강국은 스페인·스웨덴·포르투갈 등 3국에 중견국가(intermediate state)의 지위를 부여했다. 물론 중요안건은 프랑스를 제외한 4강 전승국이 결정했고 후속회의에서는 중견국가들이 배제됐지만, 국제무대에 중견국이 공식 등장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열린 파리강화회의(1919년)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 창설 과정에서도 국가들의 상대적 지위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며 중견국의 개념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냉전 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호주와 캐나다를 중심으로 중견국의 정의를 정교화하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미국과 옛 소련이 대립하는 양강구도에서 자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적 위치 선점이었다.



 오늘날 쓰이는 중견국의 개념은 이런 과정을 거쳐 정립된 것이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2013년 중견국 외교와 관련한 라운드테이블에서 중견국의 기준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상당한 규모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국력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국제문제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는 외교정책을 보유해야 중견국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 봤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12년 펴낸 『중견국과 주요 20국(G20) 거버넌스』에서 G20 국가 가운데 중견 7개국(Middle 7)을 주목했다. ‘전통의 강호’인 캐나다와 호주, 새로 등장한 한국, 점점 영향력을 확장하는 인도네시아·멕시코·터키, 그리고 중견국으로서의 면모를 일부 보여주는 아르헨티나 등 7개국이다.



 G20 중 주요 7국(G7,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등 서방 선진 7개국)과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국)가 형성하는 대결구도 속에서 중견 7개국이 G20의 양극화를 막고, 중간자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중견국들의 공통적 특징은 외교적 활동을 통해 잘 드러난다. 국제사회에서 다자적·타협적인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재자나 촉진자 역할을 하곤 한다. 주요 중견국들의 ‘외교 브랜드’를 살펴보자.





캐나다, 유엔 평화유지 임무 50여 건 수행



 캐나다는 지속적으로 중견국 외교를 표방해온 대표국가다. 특히 전통적 국가 안보 개념을 확대해 ‘인간 안보’라는 개념을 추구한다. 인간 안보는 인간의 권리와 안전이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면 인류에게 영구적 안보란 있을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캐나다 자국의 안보와 번영이 전 세계 인류의 안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신념이 반영된 것이다.



 캐나다는 실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를 구현했다. 캐나다는 유엔 평화유지 임무에 정기적으로 인력을 보내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1949년 이후 50여 건의 임무 수행을 위해 10만여 명을 파견했다. 2000년 7월 국제전범재판소 창설에도 적극적 역할을 했다.



 캐나다가 주도한 ‘오타와 협약’도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오타와 협약은 1997년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121개국이 서명, 채택한 대인지뢰금지협약이다. 대인지뢰의 사용·개발·생산·비축·이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캐나다는 중동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노력을 해왔다. 아랍권뿐 아니라 이스라엘 등 모든 중동 지역 지도자들과 긴밀하게 접촉하며 평화를 위한 여러 주도적 제안을 하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생활 지위 향상을 위해 힘을 쏟았다.



캐나다와 함께 국제사회에서 중견국의 선봉장처럼 인식되고 있는 나라는 호주다. 호주의 중견국 외교는 냉전의 출발과도 궤를 같이 한다.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자국의 외교정책 기조를 중견국가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선언했다.



 냉전 종식 이후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점에서 호주의 확고한 중견국 외교 이니셔티브는 빛을 발했다. 1986년에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농산물 교역 자유화를 주장하는 국가들과 함께 ‘케언즈 그룹’을 만들었다. 농산물 수출에 정부 보조를 거의 하지 않는 국가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이들은 ‘예외없는 관세화’를 추진하던 우루과이라운드 막바지 협상에 반기를 들었다. 그 중심에 호주가 있었다.



 1984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된 사실이 확인되자 호주는 이듬해 화학·생물학 무기 수출 통제 조치를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15개국이 이에 동참해 ‘호주그룹’이 결성됐다.



 이처럼 호주는 다자주의적이고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중견국 외교를 추구해왔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값어치와 영향력을 높였다. 2007년 출범한 케빈 러드 정부는 ‘창조적 중견국가’를 외교정책 기조로 삼았다. 이후 특히 아시아 지역에 대한 포괄적 관여를 중시하고 있다.



덴마크·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개발협력 분야에 있어 국제 규범을 선도하는 중견국 집단이다. 이념적·정책적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는 북유럽 국가들은 냉전 구조가 가속화하던 1960년대부터 개발협력 외교를 적극적으로 실행했다. 냉전 시대의 북유럽은 상대적으로 미국 대 소련이라는 대립적 구도의 직접적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동시에 역량 발휘도 제한돼 있었다. 이에 선택한 틈새 전략이 개발협력이다. 하드파워 발휘에 한계가 있는 현재에 묶여 있을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익을 증대하면서도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수립한 ‘노르딕 원조 모델’은 국제사회에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최빈국들에 대한 중점 지원, 높은 수준의 증여율, 높은 국민총소득(GNI) 대비 원조 비율 등 개발협력 분야에선 압도적으로 앞서는 모범생들이다. 올 초 미국 싱크탱크 세계개발센터가 발표한 2014년 개발공헌지수 순위에서 상위 5개국 중 4개(덴마크·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가 북유럽 국가들이었다.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중견국 집단이 도덕적 우위를 기반으로 특정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는 좋은 예다.





‘믹타’ 회의 다음 날 북한선 비난 쏟아내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부터 중견국 외교를 3대 외교정책 이니셔티브(구상)의 하나로 정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 이니셔티브도 국제사회에서 중견국으로서 한국의 격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한국 정부가 중견국 외교를 공식 기조로 표방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중견국 외교를 구체화한 대표적 수단이 바로 믹타다. 믹타 다섯 국가는 G20 국가들 중에서도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2013년 9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제안으로 출발한 믹타는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만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장관회의를 열었다. 특히 이번 서울회의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가교 역할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에 있어 촉매제 혹은 촉진자 역할 ▶글로벌 무대에서 의제 설정자 역할 등 지역간 협의체로서 기능하겠다는 비전 문서를 채택했다. 올해 중 정상회의 개최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2월 차관보급이 참여하는 고위급회의 개최에 이어 점점 협의체로서의 공식적 모양새를 갖춰가는 모습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인도네시아가 참여한 가운데 믹타가 “북핵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길 희망한다”며 한국 정부의 대화 노력을 평가한 것은 의미가 크다는 것이 외교부의 반응이다. 실제로 북한은 믹타 회의 바로 다음 날인 23일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팔삭둥이 협의체” “거짓광고” 등의 원색적 비난을 쏟아내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믹타는 한 수단일 뿐, 아직 중견국 외교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 개념 정립이나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 지난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펴낸 『국가안보전략』에서도 중견국 외교의 핵심을 ▶세계평화와 인권 증진 ▶개발협력 외교라고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다.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전재성 교수는 외교부 연구용역보고서(‘중추적 중견국가로서 한국의 외교전략’)에서 “한국이 미·중과 중·일 사이,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중견국의 위치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모든 것을 국익으로 귀결시키려는 협소한 현실주의적 접근을 넘어 국익 자체를 보다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포괄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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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난 4월9일자 B8면에 게재된 뉴스클립 ‘국가간 협의체’와 함께 보시면 더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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