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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출신 '김치 마니아' 이완, 투르 드 코리아 제패

중앙일보 2015.06.14 16:53
투르 드 코리아 개인 종합 우승자 케일럽 이완(가운데)이 14일 열린 시상식에서 상위권 입상자들과 함께 시상대에 올라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년은 아버지한테 자전거를 배우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초등학생 시절 일찌감치 사이클 선수로 진로를 정했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꿈을 꿨다. 어른이 된 소년은 목표에도 성큼 다가섰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던 엄마의 나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김치의 나라 한국이 '사이클 신데렐라'의 무대가 됐다.



21살 호주 사이클 유망주 케일럽 이완(오리카 그린에지)이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이클 대회 '투르 드 코리아(Tour de Korea) 2015'의 주인공이 됐다. 이완은 14일 서울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8구간 65km 구간에서 1시간22분10초로 5위를 기록했지만, 1~8라운드 기록을 합산한 종합 전적에서 29시간53분28초로 1위에 올랐다. 대회기간 내내 이완과 접전을 펼친 패트릭 베빈(아반티)이 4초 뒤진 29시간53분32초로 준우승했다. 이완의 팀 동료 애덤 블라이디는 29시간54분12초로 3위를 차지했다.



이완은 베스트 영 라이더(23세 미만 선수 대상) 부문과 스프린트 포인트(구간별 배점) 합계에서도 1위에 올라 3관왕에 올랐다. 대회 종료 직후 열린 시상식은 이완의 독무대였다. 베스트 영 라이더 수상자를 위한 흰색 재킷과 스프린트 포인트 1위를 의미하는 하늘색 재킷, 종합 우승자에게 주는 노랑 재킷을 연이어 갈아입고 세 차례 수상대에 섰다.



이완은 사이클 강국 호주가 주목하는 샛별이다. 아마추어 신분이던 지난해 호주 23세 이하 내셔널챔피언십에서 우승해 이름을 알렸다. 호주의 월드클래스 사이클팀 오리카 그린에지(국제사이클연맹 랭킹 5위)에 입단한 올해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출전한 '투르 드 랑카위'에서 스프린트 포인트 부문 정상에 올랐다. 프로 전향 이후 개인종합우승을 이룬 건 '투르 드 코리아'가 처음이다.



케일럽 이완이 13일 투르 드 코리아 7구간 우승을 확정지은 직후 어머니 노은미 씨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완은 한국인의 피가 섞인 '하프 코리안'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호주인 아버지(마크 이완)와 한국인 어머니(노은미)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노 씨는 세 자녀(아들 둘, 딸 하나)에게 김치, 밥 등 한국 음식을 먹이며 키웠다. 이완은 그 중에서도 한국 음식을 유난히 좋아했다.



국제대회에 나갈 때 김치를 반드시 싸갈 정도다. 시상식을 앞두고 만난 노은미 씨는 "이번에도 아들이 대회 기간 내내 김치와 밥을 챙겨 먹고 힘든 레이스를 버텨냈다"고 말했다. 내성적인 성격탓에 친구가 많지 않고, 오직 운동 밖에 모르는 이완에게 음식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한국을 방문한 건 16년 만이다. 5살 무렵 어렴풋이 한국을 다녀간 기억이 있다. 이완은 "내게 한국은 '어머니의 고향'이면서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되는 나라였다. 김치 뿐만 아니라 불고기, 명란젓, 장조림을 좋아한다"면서 "이번 대회에서 레이스하는 동안 한국의 농촌 풍경부터 고층 빌딩이 즐비한 대도시까지 다양한 경치를 즐길 수 있었다. 팬들도 사인을 받거나 함께 사진찍기를 요청하며 나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고 말했다.



사이클을 시작한 이후 이완의 시선은 오직 '올림픽 금메달'에 고정돼 있다. 맘 같아선 내년 리우올림픽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싶지만, 출전 여부와 상관 없이 길게 보며 준비할 생각이다. 이완은 "스프린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약점이 많다"면서 "전성기는 5년 뒤쯤으로 본다.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는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소속팀 오리카 그린에지의 데이비드 맥팔랜드(35) 감독도 "이완은 잠재력이 엄청난 유망주지만, 산악 부문 기록이 아직 모자란다. 체격이 작아 뒷바람이 불 때 가속도를 제대로 이용하지도 못한다"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이완은 성실하고 의욕적이라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악코스 기록으로 승부를 가리는 '킹 오브 마운틴' 부문에서는 장경구(코레일)가 1위를 기록해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팀 부문에서도 호주의 아반티 레이싱 팀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 연속 웃었다.



투르 드 코리아 2015는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시작으로 구미·무주·여수·강진·군산·대전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는 총연장 1249km 코스로 8일간 열렸다. 수준 높은 대회 진행과 시민들의 성숙한 참여의식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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