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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맺어준 귀한 인연

중앙선데이 2015.06.14 04:01 431호 31면 지면보기
당초 내가 순회 전시를 구상한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다른 국가와 교류하는 것, 그리고 자선바자회를 진행해 기금을 모으는 것. 지난해 11월 12일 57번째 생일을 맞은 나는 그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생일 당일 말레이시아에서 자선 전시회 ‘로드 쇼 57’을 열었고, 한국으로 이어져 지난 4월 24~26일 사흘간 켄싱턴제주호텔에서 개인전을 가질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열린 전시의 주제는 ‘인연(因緣)·음연(音緣)’이었다. 1976년 영화 ‘사랑의 스잔나’의 삽입곡이었던 ‘원 서머 나이트(One Summer Night)’가 지난 40년간 한국과 나의 인연을 깊게 했기 때문이다. 음악은 ‘근원(源)’이 됐고, ‘인연(緣)’을 가져왔다. 그렇게 시작된 첫 해외 전시를 앞두고 공부를 많이 했다. 한국인들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채색화와 수묵화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가정에 예술품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은지 등등. 어떤 작품을 선정하고 무슨 주제로 전시를 기획해야 하는지 모든 부분을 직접 고민하고 결정해야 했다. 다행히 전시를 주최한 이랜드 그룹은 예술적 분위기가 충만한 켄싱턴제주호텔을 장소로 제공해 주었고, 전문 컨설턴트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전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많은 자문을 해 주었다.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전시 개막식에 참석해 축사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부터 그를 만나면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사실 예전 가수 시절에는 훨씬 간단했다. 최신 앨범을 골라 친필 사인을 해서 보내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최근에 낸 앨범은 이미 10년 전인 2006년. 시의적으로 적절치 못해 보였다. 전시회를 찾는 주빈이니 그림을 선물하면 될 일이지만 또 무엇을 그린단 말인가. 공항에 가기 30분 전,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 제주도의 특산물인 한라봉 두 개가 서로 나란히 있는 모습을 그리면 어떨까. 양국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기에도 적합했다. 나는 황급히 도화지 위에 선명한 오렌지빛을 수놓고 조심조심 그림을 후송했다.

전시회 당일 이랜드그룹 박성경 부회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만나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평소 만나던 한국 친구는 모두 기업인이나 팬들이어서 정치인은 처음이라 적잖이 긴장이 됐다. 하지만 그는 온화한 태도로 우릴 맞았고 무사히 선물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한라봉 그림을 펼쳐본 원 지사는 매우 흡족한 듯 보였다. 나 역시 그가 선물한 한라봉 초콜릿을 빨리 맛보고 싶어 군침이 돌았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같은 종류의 선물을 준비하다니. 역시 영웅의 생각은 비슷한 걸까, 아니면 서로 텔레파시라도 통한 걸까.

두 시간 동안 두 개의 행사가 거행됐다. 첫번째는 제주도와 내가 주석으로 있는 라이언팍슨 백화점이 양해각서(MOU)를 맺는 행사였다. 양측은 제주도 특산물을 백화점에서 전시 판매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맛볼 수 있다니 중국 소비자들에게도 희소식일 뿐더러 제주도 농민들에게도 기쁜 일 아니겠는가.

서명이 끝나고 전시의 막이 올랐다. 나는 현장에서 붓을 들어 이번 전시의 주제인 ‘인연·음연’ 네 글자를 한글과 중국어로 적었다. 원 지사는 축사 도중 ‘원 서머 나이트’의 한 소절을 불렀고, 나 역시 다음 소절로 화답했다. 박 부회장은 한발 더 나가 주최사와 나의 명의로 5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들의 지지에 부응하기 위해 나는 한국어로 ‘인연’을 불렀다. 2주밖에 연습 시간이 없어 서툴긴 했지만 내가 이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건 진심밖에 없으니 말이다.

노래 한 곡의 인연을 통해 열린 전시에서 나는 많은 진귀한 경험을 했고, 새로운 친구들을 얻게 됐다. 다시 한번 한국에서 전시를 해도 좋을 것 같다. 과연 서울이 될 수 있을까. ‘원 윈터 나이트(One Winter Night)’가 탄생할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


천추샤(陳秋霞·진추하)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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