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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樂] 다채로운 악기의 푸가, 근엄 대신 자유 발산

중앙선데이 2015.06.14 03:34 431호 27면 지면보기
존 루이스가 재즈 스타일로 연주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음반.
바흐의 핵심은 시대착오적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이다. 그는 뛰어난 탈식민주의 비평가이자 음악평론가였다. 사이드가 말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시대착오성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자면, 바흐가 18세기에 태동한 시대정신이 추구했던 음악적 합리성을 종합하면서도 스스로 자신이 형성한 하나의 경향을 부정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존 루이스의 바흐 ‘평균율’

 그는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작은 사진)에서 예술사에서 흔히 발견되는 시대와의 불화 또는 내부적 이율배반을 날것 그대로 견뎌내는 것을 ‘말년성’(Lateness)이라는 단어로 정의한다. 서로 대립되는 힘을 봉합하지 않고 통약불가능성 그 자체의 힘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이드는 모차르트의 몇몇 오페라, 베토벤의 후기 작품들, 그리고 작가 장 주네, 영화감독 루치오 비스콘티 등의 작품 속에서 이러한 성격들을 찾아낸다.

 바흐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와의 유사성 속에서 언급된다. 글렌 굴드가 찾아낸 것처럼 바흐의 음악은 음악가들에게 무수한 영감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시대를 건너 재발견되는 대상이다. 바흐가 작곡했던 ‘인벤션’의 라틴어 어원 inventio가 ‘재발견’의 의미를 갖는 것처럼 매 시대는 바흐를 새롭게 갱신한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음악이 담고 있는 시대착오적 위대성의 증표인 셈이다. 또한 바흐로부터의 영감은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들었던 명인들의 수첩을 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다. 베니 굿맨, 앙드레 프레빈, 클로드 볼링, 키스 자렛, 윈튼 마셜리스 등등등. 이 수첩의 앞장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모던 재즈 콰르텟(MJQ)의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으로 처음 피아노와 인연을 맺었고 맨해튼 음대에서 학위를 받기도 했다. 재즈피아니스트 계보에서 지성파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다. 모던 재즈 콰르텟은 기본적으로 비밥 스타일을 추구하는 팀이다. 여기에 존 루이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소양이 다른 재즈팀들과는 격이 다른 크로스오버를 가능케 했다. 대표적으로 1966년 아카펠라 그룹인 스윙글 싱어즈와의 협연은 클래식과 재즈 그리고 성악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재즈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클래식을 버리지 않았던 존 루이스. 그가 모던 재즈 콰르텟의 해체 이후 8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바흐에 손을 댄다. 바로 ‘평균율 클라이비어곡집’ 1권이다. 바흐가 1721년과 1741년에 쓴 ‘평균율 클라이비어곡집’ 1,2권은 현대음악의 시조라고 하는 쇤베르크는 물론이고 쇼팽, 쇼스타코비치 등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이 곡은 C장조부터 시작해서 반음씩 변화를 주면서 b단조까지 이어진다. 모든 곡이 전주곡과 푸가로 이루어지는데 모두 24곡이다. 피아니스트들의 구약성서라고도 일컬어지는 곡이다보니 고수급 피아니스트들은 녹음을 남겼다. 에드빈 피셔, 로잘린 투렉, 글렌 굴드,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프리드리히 굴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등의 연주를 애호가들이 꾸준히 찾는다. 재즈 피아니스트로서는 키스 자렛의 음반도 있다.

 존 루이스는 평균율을 이채롭게 구성한다. 전주곡은 원곡에 맞춰 피아노 독주로 연주한 반면 푸가는 대위법의 다양한 실험과 변화 가능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번 다른 악기를 편성한다. 재즈 기타나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가 존 루이스의 피아노와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존 루이스식의 바흐 해석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역시 스윙감이다. ‘스윙이 없으면 재즈가 아니다’는 오래된 재즈계의 격언을 의식한 듯 비밥 피아니스트로서의 본연에 충실하다. 그러나 그의 스윙은 급진적인 스타일은 아니다. 이 점이 그의 연주에서 빛을 발한다. 퓨전의 이름으로 장르만의 결합이나 멜로디 차용 정도로 끝내고 마는 급조된 음악적 통섭과는 격이 다르다. 존 루이스는 자신이 서 있는 재즈라는 위치 안에서 바흐를 새롭게 한다.

 먼저 전주곡 마단조 10번을 예로 들어보자. 서정적인 곡이다. 존 루이스는 왼손으로 가볍게 스타카토를 주면서 경쾌한 리듬감을 만든다. 타건은 산들바람처럼 경쾌하다. 템포는 스윙감을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몇몇 클래식 연주자들보다 여유롭기까지 하다. 오른손의 애상적인 멜로디 라인 역시 조금씩 스카타토가 섞인다. 그러다 이내 즉흥연주로 넘어간다. 바흐의 선율이 현대로 훌쩍 도약한다. 하나 둘 불이 켜지는 저녁 무렵의 도로 위로, 정겨운 사람이 있을 것 같아 한번쯤 들어가 보고 싶은 심야식당의 불빛 속으로, 수 백년을 건너 뛰어 대도시 속으로 들어온다.

 다채로운 악기 편성으로 빛나는 푸가는 어떤가. 밝은 올림 다장조 3번은 3성 푸가이다. 재즈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현악의 대화가 시작된다. 스윙시대의 기타 리듬 아래 피아노는 화창한 봄날 공원을 산책한다. 심각하고 근엄한 바흐는 사라지고 시냇물처럼 재잘거리는 바흐가 등장한다. 피아노와 기타, 현악의 정겨운 대화가 한번 끝나고 본격적인 즉흥연주를 준비하는 이행부가 등장한다. 매혹적이다. 스윙은 반 걸음씩 속도를 더하고 즉흥성은 반 스푼씩 짙어진다. 6월의 잔디밭을 밟아 간질간질 웃음을 참고 있는 바흐다.

 철학자 아도르노는 바흐 음악의 핵심을 연주를 통해 드러내는 자유로움과 풍요로움 속에서 찾았다. 비록 재즈를 혐오한 아도르노였지만 존 루이스의 피아노가 빚어낸 바흐를 만났다면 조금은 너그러워지지 않았을까?


엄상준 KNN방송 PD 90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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