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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무심에 이르는 길

중앙선데이 2015.06.14 03:36 431호 27면 지면보기
어릴 적 어머니는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로 시작하는 노래를 가끔 부르셨다. 1920년대 유행했다는 ‘희망가’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노래다. 원곡은 미국의 작곡가 제레미아 잉갈스(Jeremiah Ingalls)의 찬송가 ‘When we arrive at home’인데, 풍진 세상에서 우리 말로 부르던 노래답게 가사만큼은 구구절절하다.

 사실 어릴 땐 ‘풍진 세상’이니, ‘부귀영화’니 하는 말도 어려웠고 당연히 노래의 의미를 몰랐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노래를 따라 덩달아 흥얼거리곤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잊고 있던 것을 다시 찾아봤다. ‘희망가’는 이렇게 노래한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몰하여/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억척스러운 이들에게 노래는 묻고 답한다. 부귀영화를 누리면 희망이 족하겠느냐고. 달밤에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초여름인지 한여름인지 분간할 수 없이 후덥지근했던 지난주, 가까운 친척 한 분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젊은 시절부터 그의 모습과 생활을 훤히 알고 있다. 시골에서 아등바등하며 열심히 살았다. 몇 년 전부터 얼굴색이 조금씩 검어지더니 눈빛도 노랗게 변했다. 술 때문이었다. 만날 때마다 “술 좀 그만 먹어. 그렇지 않고는 희망이 없네”라고 말했다. 그러면 느릿한 충청도 억양의 말이 되돌아왔다.

 “형님 걱정 말아요. 괜찮아요.”

 주고받은 인사가 엊그제 같은데, 그가 한 줌의 재로 변했다.

 “무모한 사람 같으니라고, 자식 새끼 넷이나 남겨두고 저리 좋다 가버리다니.”

 납골당에서 돌아오는 길, 중얼거리면서도 한편으론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던 그에게는 술이 낭만이고 잠깐이나마 기대는 희망이 아니었나 싶다.

 ‘떠났다’거나 ‘돌아갔다’는 말을 언젠가부터 곰곰이 되새기게 된다. 죽음을 태어나기 전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여겨 이곳을 떠나, 돌아갔다고 하는 것일 터다. 인간 삶이라는 것이 커다란 주기(週期)에 속해 돌고도는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걱정 말라고, 괜찮다던 그 역시 마음을 훌훌 털고 자신이 온 곳으로 돌아간 것일까.

 『논어(論語)』에서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 不如樂之者: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했지만, 그를 보자니 ‘낙지자 불여무심자’(樂之者 不如無心者:즐기는 자도 마음을 비우는 자만 못하다)라는 말을 쓰고 싶다.

 ‘문사간 무사전(文死諫 武死戰)’. 문신은 윗사람에게 잘못을 고치라고 간언하다 삶을 마감해야 하고, 군인은 전쟁터에서 죽어야 한다더니 이 양반은 ‘주사락(酒死樂)’이다. 술을 즐기다가 떠나갔으니 말이다.

  ‘희망가’의 가사대로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고, 세상의 일들은 쉽게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마음을 비워내는 무심(無心)에 이른다면 그제서야 희망이 족하지 않을까.



정은광 원광대 박물관 학예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수행과 선그림(禪畵)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마음을 소유하지 마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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