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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의 시대공감] ‘메르스 경제대책’마저 뒷북 땐 재앙

중앙선데이 2015.06.14 03:58 431호 31면 지면보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때문에 한국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수천 개 학교가 휴업하고 영화관, 백화점, 놀이공원 입장객 등이 40~70%씩이나 급감했다. 곳곳에서 작년 세월호 사고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고 아우성이다. 세월호 충격으로 소비 여력이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는데 또 대형악재가 터졌다. 메르스 사태의 경제충격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한목소리로 ‘공포와의 전쟁’을 강조한다. 메르스 자체와의 전쟁도 전쟁이지만 공포를 더 우려하는 모습이다. ‘과도한 공포’를 몰아내고 ‘너무 불안해하지는 말자’고 했다. 공포를 유발하는 유언비어도 엄단하겠다고 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말을 들먹이지만 대공황의 공포를 잠재운 것은 정치 슬로건이 아니라 ‘뉴딜(New Deal)’ 아니었던가. 메르스 공포가 문제라면 그 공포가 발생하는 근본원인, 즉 정부와 병원의 질병 예방 관리능력의 결함을 파악하고 그것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행동을 즉각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뜬금없는 공포나 유언비어만 강조하다 보니 어이없어 하는 국민이 많다.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의 어떤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 “아직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 신용카드 사용액, 백화점·할인마트 매출액, 놀이공원·극장 입장객 수 등의 자료를 몇 주 정도 받아봐야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약간 우려되는 부분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지표가) 어떻게 될지는 판단이 안 서 서비스나 소비 등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아니다. 메르스 사태의 경제적 충격은 매우 즉각적이고 클 것이다. 두고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른 의도가 있거나 경제를 모르거나 둘 중에 하나다. 만약 자료를 보고 판단해 대책을 세운다면 또다시 타이밍을 놓치는 뒷북정책이 될 것이다. 세월호 충격을 대비해 보면 알 수 있다. 세월호 경제충격은 다음 달인 5월부터 나타났다. 메르스 사태의 경제충격도 즉각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메르스 사태는 서울·경기·인천·대전이라는 대한민국 경제 중심부에서 발생했으므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세월호 때에는 국제적으로 경계를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한국을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세월호 때의 경제충격이 자의식적 소비억제 때문이었다면 메르스 사태는 휴업, 격리, 출입제한 등으로 훨씬 충격이 큰 강박적 경제활동 억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구 2500만 명인 서울·경기·인천·대전의 지역 총생산은 전국의 51%(2013년 기준)에 달하고 소비지출은 국가 전체의 54%(2013년 기준)나 된다. 세월호 참사 때 민간소비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1년 만에 3.8%에서 2.0%로 1.8%포인트 하락해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을 0.9%포인트 떨어뜨렸다.

이 정도의 민간 소비 둔화는 서울·경기·인천·대전 지역의 민간소비지출이 3.4% 하락한 것과 같고,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인 오락문화·숙박음식·교통부문 지출이 10%포인트 떨어지는 것과 맞먹는 셈이 된다. 메르스 사태로 인한 이 지역의 세 분야 소비지출 감소폭(전년 동기 대비)은 10%포인트 이상 될 게 거의 확실하다. 2003년 사스 사태 때 홍콩의 숙박 및 음식점업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5.1% 줄었다. 당시 도소매업 매출도 10.4% 감소했고, 운송·보관업 매출은 10% 줄었다.

만약 메르스 확산 사태가 6월 안에 잡히지 않으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 지역의 오락문화·숙박음식·교통부문 소비가 예컨대 20% 감소한다면 세월호 참사 때 경제적 충격의 배가 되는 셈이다. 외국인 관광객 감소효과를 더하면 충격은 더 커진다.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가 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면서 선제 맞춤형 대책을 지시한 것은 백번 옳다. 그러나 “아직까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단계는 아니며 불안심리 확산이 경제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 점검해 ‘필요시’ 추가적인 경기보완 방안 마련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정책 현장에서는 통계수치를 본 뒤 판단하겠다고 한다. 자료를 보고나서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나오는 대책은 선제 대책이 아니다. 사망자 14명에 3차 감염자까지 발생한 상황에서 메르스에 대해 ‘알아보고’ ‘파악하고’ ‘논의한 뒤’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메르스 검사를 보고 나서 접촉자를 격리시키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현장의 경제충격에 대한 실사는 벌써 끝나야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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