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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낙타가 고향 북미대륙 안 떠났으면 메르스 없었을까

중앙선데이 2015.06.14 00:52 431호 25면 지면보기
호주의 낙타는 짐을 나를 목적으로 인간이 이주시켰지만 철도의 발달로 야생화됐다. 지금은 관광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작가 백승엽]
낙타류 크기 비교
1. 단봉낙타 (아프리카·중동·호주) 2. 카멜로프스(멸종) 3. 티타노틸로푸스(멸종) 4. 아이피카멜루스(멸종) 5. 쌍봉낙타(아시아) 6. 라마 (남미) 7. 콰나코(남미) 8. 포에브로테이움(멸종) 9. 알파카(남미) 10. 비쿠냐(남미) 11. 스테노밀루스 (멸종)
‘동물의 왕국’ 하면 누구나 아프리카 동부 사바나의 풍경을 떠올린다. 작은 숲과 덤불이 듬성듬성 있는 드넓은 초원에 온갖 포유동물이 살아가는 곳이다. 지금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지만 2300만~600만 년 전의 신생대 마이오세(世)만 하더라도 온대와 열대 지방의 흔한 풍경이었다. 북아메리카의 그레이트 플레인즈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현대 아프리카 사바나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다만 전혀 다른 포유류가 살았을 뿐이다. 코끼리 대신 마스토돈트, 하마 대신 하마를 닮은 코뿔소, 기린 대신 목이 긴 낙타가 있었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28> 기구한 운명의 포유류


잠깐! 방금 낙타라고 했나? 북아메리카에 낙타가 있었다고? 그렇다. 낙타의 고향은 북아메리카다. 당시 낙타는 대부분 가젤을 닮았거나 다리가 짧았지만, 기린처럼 생긴 낙타도 있었다. 아이피카멜루스 기라피누스(Aepycamelus giraffinus, 1600만~1000만 년 전)는 어깨 높이가 3.5m였고 키가 6m나 돼 마치 아프리카의 기린처럼 나무의 맨 꼭대기에 있는 잎을 먹었다. 낙타의 특징은 등에 달린 거대한 혹이지만 북아메리카에 살던 옛 낙타들에게는 이 혹이 없었다. 마이오세가 지나고 플라이오세(533만~258만 년 전)가 되자 그레이트 플레인즈와 로키 산맥은 훨씬 더 건조해졌고, 나무가 없는 광활한 스텝 서식지가 형성됐다. 어깨 높이가 4m에 이르는 거대한 낙타 티타노틸로푸스(Titanotylopus)가 등장했다.

낙타의 고향은 북아메리카이지만 정작 지금 낙타는 북아메리카에는 살고 있지 않다. 낙타는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 산다. 어찌된 일일까? 그리고 등에 혹은 언제 생겼을까?

북아메리카 대륙이 고향인 낙타는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라마·알파카 같은 후손으로 진화했다. 아시아에서 이주한 포유류에 보금자리를 빼앗긴 뒤엔 베링해협을 건너 아시아 초원이나 아프리카 사막까지 밀려났다.
파나마 지협 연결돼 남아메리카로 진출
플라이오세 전기만 하더라도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는 떨어져 있는 대륙이었다. 두 대륙에는 다른 동물들이 살았다. 그런데 플라이오세 중기에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의 파나마 지협(地峽)이 연결되자 포유동물들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남아메리카에서는 땅늘보·아르마딜로·호저·주머니쥐 같은 소수의 포유류가 북쪽으로 이동한 반면, 북아메리카에서는 훨씬 더 많은 포유류가 남쪽으로 이동해서 고유의 포유류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마스토돈트·사슴·개·너구리·족제비와 함께 낙타류들이 들어왔다.

남아메리카로 넘어온 낙타는 가젤처럼 생긴 낙타의 후손으로 현재 과나코·라마·비쿠냐·알파카로 남아 있다. 키가 75cm~180cm에 불과한 이 낙타류들은 혈액 속에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고농도로 들어 있어 안데스 산맥의 높은 산악지역에서도 살 수 있다. 현재는 모직(毛織)의 주요자원으로 사육되고 있다.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로 넘어온 동물들은 남아메리카 고유종보다 경쟁에서 우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북아메리카를 지배했던 대형 포유류들은 정작 북아메리카에서는 멸종했지만 남아메리카에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강한 북아메리카 대형 포유류들이 정작 북아메리카에서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 역시 경쟁력 때문이다. 북아메리카에도 낯선 동물들이 진출한 것이다. 그들은 북아메리카 고유종보다 더 강력했다. 새로운 동물들은 아시아에서 왔다. 아시아의 포유류들이 어떻게 태평양을 건너서 북아메리카까지 왔을까?

북미 대륙에 등장한 엄니 7m 황제 매머드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칼 마르크스가 한 말이다. 북아메리카의 포유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한 번은 희극으로, 다른 한 번은 비극으로. 300만 년 전 파나마 지협이 연결되었을 때 남아메리카로 진출할 기회를 얻었던 북아메리카 포유류들은 190만 년 전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좁은 베링 해협이 연결되자 아시아 포유류들의 침입을 지켜봐야 했다.

가장 큰 충격은 황제매머드(Mammuthus imperator, Mammuthus columbi)의 등장이었다. 빙하시대에 살았던 가장 큰 장비류(長鼻類)였던 황제매머드는 어깨 높이가 4m가 넘었고, 길고 구붓한 엄니 길이가 5m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살았던 그 어떤 코끼리보다 몸집이 컸던 황제매머드는 거의 모든 식물을 짓이길 수 있는 거대한 어금니로 숲은 물론이고 평원과 심지어 북극권의 스텝 지대까지 장악했다. 황제매머드와 여우, 재규어와 검치호(劍齒虎)인 스밀로돈 같은 육식 포유류들도 함께 들어왔다.

남아메리카에서 이주한 일부 포유류들도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거대한 나무늘보인 에레모테리움(Eremotherium)은 몸길이가 7m이고 몸무게도 3t이 넘었다. 코끼리만 한 크기였다. 거대한 아르마딜로인 홀메시나(Holmesina)는 코뿔소만 한 크기의 몸통을 단단한 갑옷이 감싸고 있었다.

플라이스토세(258만~1만 년 전)에는 아메리카 대륙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에서도 동물이 거대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많은 거대동물이 주로 추운 기후에 살았다는 사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몸집이 크고 게다가 두터운 털로 덮여 있으면 체온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작은 낙타류는 남아메리카로 건너가 자리를 차지하고 살았지만 커다란 낙타류는 고향을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동물들이 침입했다. 살아남으려면 자신도 덩치를 키워야 했지만 실패했다. 이제 남은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 몸집을 줄여서 작은 육식동물의 눈치를 보며 살든지 아니면 미련 없이 보금자리를 떠나든지.

낙타는 점차 추운 지방으로 밀려났다. 여기에 맞추어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두터운 털이 몸을 덮으면서 체온을 유지해주었고 발바닥에는 푹신하고 넓적한 패드가 생겨서 눈에 잘 빠지지 않았다. 등에는 혹 모양의 거대한 기름주머니가 생겨서 먹이와 물을 구할 수 없는 시기를 견디게 해 주었다. 혹은 양분뿐만 아니라 물도 제공했다. 왜냐하면 혹 속의 지방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면 물이 부산물로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일부 낙타가 모험을 감행했다. 침입자들이 건너온 베링 해협을 반대 방향으로 건넌 것이다. 자신을 쫓아낸 침입자들의 고향으로 진출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옳은 선택이었다. 빙하기가 끝난 후 북아메리카에는 단 한 마리의 낙타도 살아 남지 않았다. 오로지 고향을 떠난 낙타만이 살아남았다.

사막 열기와 밤의 한기 막는 낙타 털
하지만 시베리아도 낙타에게는 결코 녹록한 곳이 아니었다. 일부는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에 정착했다. 거기서도 낙타는 먹이를 두고 다툴 경쟁자가 없고 포식자들이 더 이상 추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곳까지 밀려났다. 그곳은 바로 사막이었다. 현재의 단봉낙타들이 그들이다. 일부는 아시아의 초원과 사막에 남아서 쌍봉낙타로 진화했다.

낙타가 사막이라는 극단적인 기후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던 까닭은 북아메리카에서 밀려나기 전에 추운 지방에 적응한 결과다. 추운 숲에 적응한 몸은 사막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추위를 막아주던 두꺼운 털은 사막에서는 햇빛을 반사하고 뜨거운 사막 모래에서 올라오는 열을 차단했으며 땀으로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아줬다. 밤에는 다시 체온을 지켜주었다. 눈에 빠지지 않도록 적응했던 넓고 평평한 발바닥은 모래 속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등에 솟아오른 혹은 사막에서도 양분과 물의 저장고 역할을 했다.

새로운 변화도 일어났다. 눈썹은 이중으로 달려서 강한 햇빛과 바람에 날리는 모래나 작은 돌로부터 눈을 보호하며 눈을 깜빡일 때 날아가는 눈물과 같은 귀한 수분이 증발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윗입술에는 콧구멍으로 이어진 틈이 생겨서 콧물이 입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허투루 버리지 않게 하였다. 콧구멍도 여닫을 수 있어서 모래를 차단했다.

단봉낙타, 150㎏ 지고 하루 30~50㎞ 이동
현재 단봉낙타는 모두 가축으로 사육된다. 150㎏ 이상의 짐을 등에 지고 하루에 30~50㎞를 이동하는 짐꾼이 되었다. 아시아의 쌍봉낙타도 가축으로 키워져서 젖과 고기를 제공한다. 야생상태로는 700마리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단봉낙타가 야생상태로 살고 있는 곳은 놀랍게도 호주다. 호주에는 자그마치 100만 마리의 야생낙타가 살고 있다. 단봉낙타는 어떻게 인도양을 건너서 호주로 갔을까? 인도양이 베링해협처럼 얼어서 육로가 열린 적은 없다.

1840년 24마리의 낙타가 인도에서 호주로 배에 실려 왔다. 짐을 나르는 용도였다. 당나귀보다 물을 조금 먹으면서 현지 식물도 잘 먹고 무엇보다도 무거운 짐을 잘 날랐다. 이후 19세기 말까지 많은 낙타들이 호주로 수입되었다. 하지만 20세기에 철도가 깔리자 낙타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사람 손아귀를 벗어난 낙타는 호주의 사막에서 번성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 몰라라 했다.

그런데 2000년대 초 큰 가뭄이 들자 사람들은 비로소 낙타에 주목했다. 단봉낙타는 물을 찾으면 3분에 180ℓ의 물을 마시는 능력이 있다. (쌍봉낙타는 10분에 100ℓ의 물을 마실 수 있다.) 호주의 광활한 붉은 사막에서 낙타처럼 잘 살 수 있는 동물은 없다. 낙타 떼가 한 번 지나가면 가축이 마실 물과 먹을 풀이 사라졌다. 호주 당국은 2009년부터 낙타 도살 사업을 벌이고 있다.

낙타는 우리나라에서도 수난을 겪었다. 우리나라에 낙타가 처음 들어온 것은 932년의 일이다. 왕건은 고려 건국 직후 요나라 태종이 선물로 보낸 낙타 50마리를 개성 만부교 다리에 묶어 놓고 굶겨 죽였다. 외교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낙타는 까닭도 모르고 굶어 죽은 것이다. 지난 6월 초 서울대공원의 단봉낙타와 쌍봉낙타가 4일 동안 격리되기도 했다. 낙타가 메르스의 원흉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북아메리카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와 한국에 이르기까지 낙타의 자연사는 참으로 기구하다. 그래서인지 낙타의 눈망울은 유독 슬프게 보인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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