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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빈곤층·양극화 확대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게 하는 게 최고 복지

중앙선데이 2015.06.14 01:04 431호 10면 지면보기
한국은 세계화를 통해 사회 양극화와 빈곤층 확대를 경험한 대표적인 사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 조건으로 자신들의 대안을 강요했다. 1998년 2월 7일 IMF는 사회 위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구제금융 양해각서에 포함시켰다. 그렇게 99년 7월 고용보험의 확대 실시와 99년 9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실시됐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실업자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책이었다.

IMF 체제의 그늘 치유하려면

 IMF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대량 실업과 빈곤층을 양산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충격을 줄여야만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고용보험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97년 12월 5일 예비 협약안에도 삽입했다. 그리고 98년 2월 7일 최종 합의안에 고용보험기금을 7000억원에서 2조원으로 늘리고, 빈곤층 소득 지원을 포함한 공적 부조를 전년도에 비해 13% 늘리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시켰다.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도 대폭 완화했다. 그런 점에서 99년과 2000년에 도입된 복지제도는 IMF가 주도하는 경제개혁의 성공을 위한 방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업자 보호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고, 빈곤율은 최상위권에 속하며, 비정규직과 정규직 격차도 최고 수준에 달하게 됐다.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로 근로 빈곤층도 늘어났다.

 9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새롭게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단순한 정책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합적인 정책이 하나의 패키지로 제시돼야 한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세계화가 가져온 쓰라린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효과를 신중하게 고려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정책 대안은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지속 가능성을 지녀야 한다. 사회적인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경제 정책도 지속 가능하지 않고, 경제적인 효과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 정책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의도한,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파급효과를 다각도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먼저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발생하는 실업이나 불안정한 고용으로 인한 위험으로부터 포괄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실업이나 비정규직 증가로 인한 빈곤 문제를 국가가 복지제도를 통해 해결한다면 노동시장의 불안정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을 원천적으로 없애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 국가가 정규직-비정규직 차별을 없애는 대신 비정규직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정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덴마크나 네덜란드에서 실시하고 있는 유연안전모형이 대표적인 예다. 국가가 실업자의 생활보장을 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실업자들이 다시 일자리를 얻도록 하는 고용 활성화 정책을 동시에 펴고 있다.

 두 번째는 맞벌이 부부를 가족 모형으로 하는 가족 정책이다. 가족 정책의 핵심은 자녀를 둔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출산·보육·탁아와 관련한 복지 서비스를 국가가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은 여성이 일을 안 하거나 못하고 아이도 안 낳는 국가다. 정반대의 경우가 출산율도 높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도 높은 북유럽 국가들이다.

 세 번째,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년 연령을 늦추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평균 53세 퇴직 연령을 적어도 60세까지 연장해 근로를 통한 소득 획득 기회를 늘려야 한다. 기업은 가능한 한 나이든 사람들을 기피한다. 기업도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빈곤층이 늘어나게 되면 수요 부족으로 불황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개별 기업은 여전히 단기적인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국가적인 수준에서 노사정 합의를 통한 정년 연장을 도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인이나 장애인 같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제도가 구비돼야 한다. 한국의 노인 복지지출은 복지 후진국 터키나 칠레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서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복지국가 체제를 완성했다. 일본과 한국은 1만 달러 소득시대에 복지제도를 제대로 구비하지 못했다. 다가올 미래를 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준비하지도 못했다. 복지의 핵심은 더 많은 사람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제도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면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는 길은 새로운 통합적인 정책 패키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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