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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마케팅] 소비 침체의 시대 … ‘시니어 시프트’가 기업 살린다

중앙선데이 2015.06.14 02:22 431호 20면 지면보기
1 일본 최대 유통업체 이온이 지난해 활동적인 고령자들을 위한 축제인 ‘GG 컬렉션’을 개최하면서 만든 홍보 포스터. 2, 3, 4 미국 비영리기관 로드 스칼라가 50대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교육·여행 프로그램. 세계 각지의 시장, 박물관을 둘러보거나 손자들과 함께 세대통합 여행을 떠날 수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손주 며느리 보셔야죠”가 겉치레 인사가 아닌 세상이다. 지금의 시니어들은 이전 세대보다 지갑이 두둑할 뿐 아니라 돈 쓸 시간과 체력, 적극적인 소비성향까지 갖춘 수퍼 소비자들이다. 돈벌이나 출세를 포기한 20대 ‘달관 세대’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한 기업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시장이기도 하다.

⑮ 위대한 소비자, 시니어

세계 최고령 국가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품과 서비스, 구매 환경을 고령자 친화적으로 개선하는 데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 제품을 1~2인용으로 소형화하고 글자 크기를 키우는 것은 기본이다. 매장 내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늦추고 선반과 계산대는 낮게, 쇼핑카트는 가볍게 만든다.

선두기업들은 여기서 한발 앞서 시니어 시장을 중심으로 중장기 전략을 재편하는 모습이다. 시니어를 더 이상 주변적, 선택적 시장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 이온(AEON)은 2011년 ‘시니어 시프트(Senior Shift)’전략을 선포했다. 핵심 타깃을 50세 이상 시니어 고객으로 전환하고 투자를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2013년에는 도쿄 카사이점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한 ‘그랜드 제너레이션(Grand Generation, G.G)’몰을 오픈했다. 활동적인 고령자를 일컫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에서 나아가 사회의 ‘최정상급 계층’으로 존경받아야 하는 ‘위대한 세대’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인생 최고의 순간을 지나고 있는 세대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G.G 전용 공간인 쇼핑센터 4층에는 문화센터, 카페, 피트니스 센터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문화센터에서는 수공예·악기·사진 등 창의적인 여가생활을 지원하는 150여개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카페에는 노인들이 자식처럼 여기는 반려동물과의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

미국 패션 브랜드 케이트 스페이드가 93세 패셔니스타 아이리스 아펠(오른쪽 두번째)을 모델로 찍은 광고.
세븐일레븐, 50대 고객 비중 3배 급증
자회사 이온펫(AEONPet)을 통해 애완견 전문 요양시설도 오픈했다. 사육 환경, 의료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반려동물의 수명까지 길어지자 나이든 개를 돌보는 데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노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요양시설에는 의료설비는 물론 수영장, 체육관이 갖춰져 24시간 케어 서비스가 제공된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견은 2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주기도 한다. 월 이용 요금이 100만 원을 넘지만 대기자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반려동물을 마지막까지 돌봐주고 싶지만 여력이 안 되는 노인들의 심리를 꿰뚫어 본 결과다.

이온은 치바시에 G.G 몰 2호점을 열고 G.G 고객용 제품, 서비스를 전시하는 ‘그랜드 제너레이션 콜렉션’을 연례행사로 개최한다. 2014년에는 데이팅 서비스가 포함되어 싱글 시니어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학생이나 20대를 주 타깃으로 삼던 편의점도 고령 소비자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1989년 63%에 달하던 29세 이하 고객 비중이 2013년 29%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50세 이상 고객의 비중은 9%에서 30%로 늘어났다고 한다.

주요 업체들은 젊은이들의 입맛과 경제사정에 맞춘 인스턴트식을 줄이고 고령충이 먹기 좋은 소포장 신선 식품, 유기농·치료식 도시락 라인을 확대했다. 편의점 주먹밥, 도시락은 집에서 먹는 바깥 음식, 집밥과 외식의 중간이라는 의미로 ‘나카쇼쿠(中食)’라 불리며 편의점 업계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매장에 혈압계, 안마의자를 설치하고 건강 상담사가 상시 대기하는 생활 지원 서비스, 직원이 직접 집으로 찾아가 물건과 전단지를 보여주고 판매하는 이동 서비스도 제공한다.

신체적 불편함, 정서적 결핍을 해결하는 데서 나아가 자기효능, 자아실현 등 상위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고차원적 접근도 필요하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이상 인구 중 전문대 이상 학력자는 45.5%에 달해 이전 세대의 16.1%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지적 호기심이 풍부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시니어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이들은 여행을 가더라도 인솔자를 따라다니기보다 스스로 계획하고 독립적으로 이동하기를 선호한다. 여행지의 설명문구 하나하나를 탐독하는 ‘꽃보다 할배’의 ‘이순재형’ 시니어도 많다.

학력수준 높아 지적 욕구도 높아
미국에서는 학구파 시니어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서비스가 등장한지 오래다. 1975년 설립된 비영리기관 로드 스칼라(Road Scholar)는 50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교육과 여행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며 강의를 듣는 ‘아트 러버(Art Lovers)’프로그램부터 기차를 타고 역사적 유물을 찾아가는 ‘트레인 저니(Train Journeys)’, 미국의 작은 마을을 방문해 숨겨진 역사·문화를 학습하는 ‘마이 홈타운(My Hometown)’프로그램까지 매년 4600번의 여행에 10만 명의 시니어들이 참여하고 있다. 참여자의 대부분이 대졸 이상의 학력을 지니고 평균 연령은 72세라고 한다.

올해부터 새로 시작된 ‘리빙 앤 러닝(Living and Learning)’은 파리·하바나 등 매력적인 도시에서 4~6주간 아파트에 거주하며 현지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낯선 곳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현지 언어·문화에 적응해가는 해외여행의 고급판인 셈이다.

시니어와 젊은 세대를 연결하는 크로스 제너레이션(cross-generation) 전략으로 젊은층과 고령층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도 있다. 최근 미국 패션 브랜드 케이트 스페이드(Kate Spade)는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93세 디자이너 아이리스 아펠을, 프랑스 명품 브랜드 셀린느(Celine)는 패션잡지 보그의 에디터로 활동했던 80세 작가 조앤 디디언을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멋지고 우아한 인생에 대한 젊은이들의 동경심을 자극하고 시니어 소비자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효과가 기대된다.

로드 스칼라에는 시니어와 대학생 손주가 함께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 ‘썸머 세션(Summer Session)’이 있다. 여행을 다녀온 손주들은 ‘지적이면서도 쿨한 할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애정을 표현하곤 한다. 브라질의 CNA 어학원은 영어를 배우고 싶은 브라질 청년과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미국의 은퇴한 시니어를 매칭해 화상으로 대화하도록 하는 ‘스피킹 익스체인지(Speaking Exchange)’클래스를 개발했다. 문화적 배경, 연령대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많고 서로 의지하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젊은 마케터들이 시니어 소비자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부모가 사춘기 자녀의 마음을 읽는 것만큼 어렵다. 스마트 기기를 서툴게 사용하고 최신 유행에 뒤처진 노인이 등장하는 광고나 드라마는 시니어 고객들의 원성을 사기 쉽다. 미국에서 70대 이상 노인들을 조사했더니 60%가 매체에서 보이는 노인의 모습이 비현실적이라고 응답했고 절반 이상은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다정한 은발 커플이 등장하는 흔한 광고는 싱글 시니어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다. 또 노인이 홀로 있는 장면은 외로운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더 심난해진다.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시니어의 모습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익숙하지 않고 까다로운 시장인 만큼 기존 상식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관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기업의 변화 속도는 그에 못 미치는 듯하다. 애플과 IBM은 일본에서 65세 이상 노인 500만 명에게 노인 전용 앱이 장착된 아이패드를 보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애플 충성도가 높은 일본 시장에 대한 팬 서비스인 동시에 미래 사업의 방향과 가능성을 타진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고령화 빠른데 기업 변신 느려
한국 시니어의 IT 활용 능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60대 이상 연령층의 스마트폰 보급률만 보더라도 일본은 10%에 못 미치지만 한국은 20% 수준이다. 첨단기기 사용에 익숙하고 학습 욕구도 높은 한국 시니어 시장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다. 이 시장을 주력시장으로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 대한노인회가 노인의 기준 연령을 상향 조정하도록 공론화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실현 여부를 떠나 다음 세대의 짐을 덜어주자는 어른들의 결정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내리사랑 뿌리가 깊은 한국에서 힘들어하는 후세대를 나 몰라라 할 어른은 없다. 최근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도 50, 60대 부모의 64.8%가 성인 자녀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도와줄 것이라고 답했다.

시니어 소비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 기업과 브랜드에게 깊은 애정을 보이고 응원해 줄 든든한 지원군이다. 철새 같은 중국 관광객들이 사라진다고 아쉬워하기보다 집안을 지켜줄 진정한 충성고객, 위대한 소비자부터 챙겨야 한다.



최순화 소비자학을 공부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 국내외 소비시장 트렌드 분석, 브랜드 관리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반감고객들』(2014), 『I Love 브랜드』(공저, 201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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