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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주총서 합병안 통과돼도 계속 물고늘어질 듯

중앙선데이 2015.06.14 02:24 431호 21면 지면보기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대단히 싸움을 좋아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다. 펀드 설립자인 폴 싱어는 목표물을 한 번 정하면 꽉 잡고 놓지 않으며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다.’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금융정보 제공업체 ‘기관투자가(Institutional Investor)’ 는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변호사 출신인 폴 싱어(71·사진)가 이끄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지금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둘러싸고 삼성물산과 한 판 대결을 벌이고 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제동 건 행동주의 펀드

전투는 법적 대응과 우호세력 확보라는 두 전선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삼성물산은 12일엔 ‘통합 삼성물산’의 주식(DR)을 런던증시에 상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엘리엇과 무관하다”고 하지만 시장에선 해외 소송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본다.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가 확정된 11일 이후엔 우호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다. 삼성물산은 최치훈·김신 사장이 직접 국내외 IR(기업설명회)에 참가해 주주 설득에 나섰다. 엘리엇도 주요 주주들에게 합병반대를 요청하고 있다.

국민연금·외국인 표심이 관건
현재의 지분율 구도로는 다음달 1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의 계획대로 합병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주총에서 합병안건이 통과하려면 의결권 있는 주식의 3분의 1 이상이 참석하고, 참석주주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11일 현재 삼성 우호지분은 19.78%(보통주 기준)다. 삼성SDI·삼성화재 등 계열사, 특수 관계인 지분 13.82%와 백기사인 KCC가 가진 지분 5.96%다. 합병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시했거나 공식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합병비율에 불만을 표시한 지분은 9.95% 수준이다. 엘리엇(7.12%), 네덜란드 연기금(0.35%), 소액주주(0.43%)와 일성신약(2.05%) 등이다.

문제는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은 지분이 70%에 달한다는 점이다. 양측이 우호 세력 확보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특히 단일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과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은 외국투자가(약 26%)에게 영향력이 큰 의결권 자문사 ISS(기관투자가 서비스)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 관계자는 “사안이 중대한 만큼 신중히 결정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어 방침을 정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위는 정부·사용자·연구기관 추천위원 9인으로 구성된다. 전문위 위원인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국민연금에 중요한 건 수익성인데 합병에 반대하면 삼성물산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 우리 기업이 외국인의 투기적 공격에 노출돼 경영 안정성이 위협받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엇이 낸 가처분 신청도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5항)은 상장사끼리의 합병 비율은 합병결의 직전 최근 1개월 평균 종가, 1주일 평균종가, 합병 결의 전일 종가를 산술 평균해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의 합병비율은 이 기준을 따른 것으로 제일모직(15만9294원), 삼성물산(5만5767원)이 1대0.35다. 엘리엇과 일부 소액주주들은 ‘물산의 가치가 턱없이 낮게 평가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연구실 최성현 팀장은 “규정을 따르지 않는 게 문제지 규정대로 한 걸 문제삼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규정대로 했다지만 문제는 합병비율에 대한 불만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합병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합병비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연기금, 일성신약이 불만을 표시했고, 일부 소액주주들도 네이버에 ‘삼성물산 소액주주연대’를 만들어 반대에 나섰다.

주주이익 앞세우나 속내는 삼성전자 지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삼성과 엘리엇의 싸움의 중심엔 삼성전자가 있다. 양측 모두 ‘주주이익’을 합병이유이자, 반대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삼성전자 지분 때문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삼성물산은 전자 지분 4.1%(약 8조원)을 가지고 있다. 이 지분을 빼면 삼성 사주 일가와 계열사의 전자 지분은 13.2%다. 삼성으로선 그룹의 핵심인 전자 지배를 위해선 물산의 전자지분이 필요하다. 삼성이 물산의 경영권 없이 전자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8조원의 자금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엘리엇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는 전자 주식 등을 현물로 배당하라는 주주제안서를 제출하며 속내를 드러냈다. 한국투자증권 윤태호 애널리스트는 “전자주식의 현물배당 등 삼성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주주를 무시한다’며 삼성을 공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애초 ‘먹튀’가능성이 언급되던 엘리엇의 공격이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엘리엇이 주총에서 패할 경우 삼성과 계속 싸우려면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을 3% 이상은 가져야 한다. 상법상 3% 이상을 보유해야 주주총회소집 청구, 이사해임건의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3% 이상 가지려면 엘리엇은 물산 지분을 현재의 7.12%에서 10.41%로 늘려야 한다. 12일 종가(6만8400원)를 기준으로 약 3500억원 수준이다.

저금리·저성장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뉴 노멀(New Normal) 환경 속에서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자산 규모는 빠르게 늘고 있다. 엘리엇의 삼성물산 공격도 행동주의의 세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행동주의 펀드의 운용자산은 2009년 362억 달러에서 2014년에는 이미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수익률도 높다. 2014년 4월 기준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1년, 5년 누적 수익률은 각각 11.82%, 12.73%로 전체 헤지펀드 수익률 7.88%, 11.74%를 넘어서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목표기업도 산업·지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김예구 연구위원은 “행동주의 펀드에 대응하기 위해선 선제 사업구조조정과 함께 무엇보다 주주의 요구를 신속 면밀히 파악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행동주의 투자(activist investment) 경영에 어려움을 겪거나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에 투자해 의결권을 확보한 뒤 기업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선, 경영진 교체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투자기법. 이런 투자에 집중하는 헤지펀드가 ‘행동주의 펀드’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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