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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우려 ‘24시간 이내 화장’… 임종도 못 하는 유족들

중앙일보 2015.06.12 02:24 종합 3면 지면보기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도 못 지켜드렸는데 곧바로 화장됐어요. 격리된 가족들은 아버님의 유골함조차 끌어안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요. 세상에 이런 불효가 또 있겠습니까.”


메르스 사망자, 당일에 화장
간병한 가족 대부분 격리돼
손녀 혼자 화장 지켜보기도
일부 장례식장은 빈소 거절
유족 “중세 페스트 환자 취급”

 지난 3일 대전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고 사망한 A씨(83)의 둘째 아들(57)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오열했다. 지난달 9일 만성신부전증으로 대전의 한 병원에 입원했던 A씨는 같은 달 28일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와 접촉했던 부인과 둘째 아들 부부, 셋째 아들 등 5명은 모두 자택과 병원에 격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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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는 가족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홀로 작은 병실에서 투병하다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폐렴으로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부인(80)만이 사망 직전 달려와 유리벽 너머로 남편의 임종을 지켜봤다. A씨의 시신은 보호장구를 착용한 보건당국 직원들에 의해 곧바로 더플백에 이중으로 담겨 밀봉됐다. A씨가 이용했던 침대, 화장실 등 병실 전체가 철저히 소독됐다.



이후 보건당국에선 A씨의 유족들에게 “시신으로 인한 감염 위험이 높아 24시간 이내에 화장을 해야 한다”고 동의를 구했다. 자택에 격리된 유족들은 감염 우려가 있다는 말에 화장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접촉이 없었던 장남(59)만이 외로이 화장장을 지켰다. 900도가 넘는 화로 속에서 시신은 무게 5㎏의 유골함으로 되돌아왔다.



 A씨의 유족들은 “병문안을 갔을때 ‘이 정도 병은 금방 낫는다. 다들 바쁜 데 뭣하러 여기까지 찾아왔느냐’고 하시던 모습이 선하다”며 “얼른 나을 테니 온 가족이 모여 식사나 하자고 하셨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 됐다”고 말했다. 유족은 13일에야 격리에서 해제된다. A씨가 세상을 떠난 지 10일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르게 된다.



 ‘메르스 장벽’이 고인과 그 가족들을 철저히 갈라놓고 있다. 가족들은 대부분 격리돼 임종은 물론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형편이다. 망자의 한을 달랠 새도 없이 사망자의 시신은 24시간 이내에 화장장으로 향한다.



 현행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사망한 지 24시간이 지난 후가 아니면 매장이나 화장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사건·사고 등에 연루된 시신일 가능성이 있고, 증거 인멸 가능성 등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신(감염병으로 사망한 시체 등)’은 예외다. 그 때문에 보건당국에선 메르스에 감염된 사망자의 시신은 24시간 이내에 신속히 화장하는 것을 지침으로 삼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0~20도에서 48시간가량 생존하기 때문에 사망자의 체액 등에 퍼진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피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메르스대책본부 관계자는 “사망자의 시신 전체에 메르스 바이러스가 퍼져 있는 상태에서 추가 감염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화장을 최대한 서두를 수밖에 없다”며 “유족들의 심정을 헤아려 상황을 충분히 설명한 뒤 화장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지 2주 만인 지난 4일 서울의 한 병실에서 사망한 B씨(74)의 임종도 쓸쓸했다. B씨의 가족 대부분이 자택에 격리돼 전화로 사망 소식을 들어야 했다. B씨의 시신은 사망 당일 곧바로 화장됐다.



격리대상에서 제외된 30대 손녀만이 눈물을 훔치며 보건소 직원들과 화장 장면을 지켜봤다. 충북의 첫 메르스 확진 환자로 판정받은 뒤 지난 10일 사망한 C씨(62)의 시신도 당일 서둘러 화장됐다. C씨의 유족들은 격리가 해제되는 21일 이후에나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유족들은 장례를 거부하는 일부 장례식장 때문에 두 번 상처를 받고 있다. 메르스 감염과 이용객들의 동요를 우려한 일부 장례식장에서 핑계를 대며 장례를 거절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면서다. 한 유족은 “마치 중세시대 페스트 환자처럼 취급받는 느낌”이라며 “어렵사리 격리에서 해제된 뒤에도 받아 주는 장례식장을 찾아 헤매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손국희·최종권·김민관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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